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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에서 백로 사이

by 무량화

급하기도 하지. 간밤에 비바람 잠시 거칠더니 뜨락 여기저기 때 이른 낙엽이 누워있다. 더러 누런 잎새도 섞이긴 했으나 거의가 강풍에 생짜배기로 떨궈진 진녹색 뽕잎들이다. 잔디 위에 나뒹구는 이파리들은 갈퀴까지 동원할 정도가 아니라서 일일이 손으로 주웠다. 그늘진 담장 아래쪽에 누운 잎새를 집어 들자 무언가가 후드득 떨어진다. 허리를 굽혀보니 콩(공) 벌레들이 오물오물하다. 누에처럼 녀석들도 뽕잎을 갉는지 잎사귀 가장자리가 들쑥날쑥해졌다. 생김새야 꼭 쥐며느리 같으나 콩벌레는 지렁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익충이라서 모른 척 지나친다.



바야흐로 곤충들의 계절이다. 풀숲에선 흙 메뚜기도 튀고 방아깨비도 난다. 제법 큰 사마귀 한 마리 역삼각형 눈으로 가만히 날 꼬나보며 요지부동이다. 덤빌 테면 덤벼라, 식으로 방어도 공격도 아닌 겁 없는 자세다. 허~짜식 제법 웃기네, 싶다. 뒤란 담쟁이 잎이 군데군데 붉어가기도 하고 가로수 너른 잎새가 누르스름 변해가고는 있지만 아직은 여름의 끝자락. 늦더위 칭칭 감아대며 매미가 한낮 내내 목청 돋운다. 가는 여름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나 매미 소리는 이미 풀기 가신 모시옷처럼 후줄근하다.



하나하나 일깨워주지 않아도 때맞춰 고추잠자리 나타나고 여치의 가을 노래가 청량하게 들린다. 여치뿐이랴. 가게 안 화분 틈새에서 귀뚜라미도 곡조를 가다듬는다. 가끔 외출 나와 슬슬 돌아다니는 녀석이라 수인사 튼 지는 꽤 됐다. 건조한 실내에서 무얼 먹고 사는지 처음엔 개미만 하던 녀석이 그새 짝을 부르는 청년으로 자라나 통통한 몸피가 땅강아지와도 흡사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목청이 틔질 않아 어설프던 녀석의 노래가 이젠 영글 대로 영글어 아주 근사해졌다. 또르르 또르르~영롱한 선율에 귀 기울이던 한 손님이 아하! 크리켓~손뼉까지 치며 자연의 심포니를 반겼다.



어느새 절기는 처서에서 백로 사이에 닿아있다. 조석으로 느끼는 소슬한 기운. 천지간이 쓸쓸해지기 시작한다는 처서 지나 얼마 후면 이름도 고운 백로다. 하얀 이슬이 내리는 이때를 일러 옛사람들은 제비 떠나고 기러기가 날아오는 길목이라고 하였다. 봄소식을 물고 왔던 제비가 가족 일궈 강남으로 날아가고 대신 가을을 알리는 기러기가 달빛에 나래 적시며 찾아온다는 백로다. 지금의 내 나이가 24 절기의 백로쯤, 하여 마음이 유달리 살갑게 끌리는 걸까. 착각은 자유, 어쩌면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는 추분 지나 이미 한로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덥고 추운 것도 춘분에서 추분까지라 했다. 감정 더 메말라가기 전, 글다운 글이나 써 볼 것을.



하지만 아직은 전송해 보낸 계절이 아닌 여름. 인디언 서머가 기다리기도 할뿐더러 그보다는 해가 설핏해지며 극성부리는 늦모기의 발호로 봐서 여름이 아주 간 것은 아닌듯하다. 눈에도 잘 띄질 않게 꼭 각다귀만 한 것이 슬그머니 접근해 와 무차별 공격을 해대는 통에 요즘 들어 모기향까지 동원했다. 그 독종은 슬쩍 스쳐간 듯싶어도 어느새 고약한 흔적을 새기는 데다 며칠 두고두고 계속되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을 남겨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점만큼 쪼끄만 녀석이니 먹은들 얼마나 먹으랴, 웬만하면 먹거리를 나눠줄 만도 한데 염치도 없이 꼭 뒤탈을 남기는 까닭에 눈총을 받는다. 엊그제 스커트 차림을 했다가 종아리에 북두칠성좌처럼 일곱 군데나 녀석에게 물렸다.




고개 돌려 약을 바르다 우연히 시선이 닿은 곳, 구석짬의 작은 거미줄에 모기가 걸려 파득거리고 있다. 옳거니, 쌤통이다. 얼마 전 근처 거미줄에 걸린 아기 귀뚜라미는 얼른 구해주었는데 이번엔 어림도 없다. 그러고 보니 설핏 짚이는 데가 있다. 하루 열 시간 가까이 생활하는 한정된 공간에 박하향 같은 생기를 불어넣어주던 노랫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때의 귀뚜라미? 머릿속까지 화해지는 맑은 방울소리를 들으며 내심 짐작하길 묵묵히 일하는 내게 자연이 보내준 선물이구나, 여겨왔는데 홀연 그때 일에 생각이 가닿는다.




아, 그러나 보은의 노래이듯 이어지는 가을 탄주곡에 도취되어 나 홀로 선경을 거닐기만 했지 뭔가. 녀석을 위한 배려라고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던 셈. 귀뚜라미는 저리 절절히 짝을 불러대건만 무슨 수로 실내에 갇힌 채 배필을 만나랴, 차라리 드넓은 자연으로 내보내줄까. 하지만 싸늘하니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혹여 좋은 취지의 방생이 거친 바깥세상으로의 방출이 되는 건 아닐지. 분다운 마음을 알아챈 양 뒷문에 매어 단 풍경이 댕그랑거리며 들려주는 한마디. 모든 건 그분 섭리에 맡기고 그저 그냥 그렇게…… 2007 미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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