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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과 경이 위엄 그 이상인 경외감
by
무량화
Sep 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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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개인 아침, 사우스 레익에서 시작하는 트레일에 나섰다.
하늘빛 반사로 물빛 역시도 사뭇 푸르른 호수.
모처럼 쾌청한 날씨 덕에 호수빛 한껏 청청했다.
고개 들어 장엄 설산 마주하며 한갓지게 산길을 올랐다.
콘빅트 레익 감싼 모리슨 산 바라보며 참 잘 생겼다는 애정 어린 찬사를 터뜨렸다면
사우스 레익 둘러선 봉우리들은 신께 향하듯 한 오롯한 경외감으로 우러르게 만들었다.
그렇다, 물색없이 촐랑거리며 감히 나서서 잘 났니 어쩌니 수다 떨기조차 외경스럽다.
다만 경건히 침묵에 잠겨 들게 하는, 범접키 어려운 위용에 번번 압도당하게 되는 하이 시에라 연봉들.
생로병사 파도 헤쳐가며 살아가는, 희로애락 제각각인 인간사 층층마다 달라 천차만별.
그러하듯 자연 또한 천태만상 이룬 채 늘 한결같지 않아 절기와 일기에 따라서 원 모습 변해버리기 일쑤다.
특히나 산간 날씨는 종잡을 수 없어 걸핏하면 시시때때로 표정을 바꾼다.
이날도 티 한점 없이 해맑다가 구름장 금세 떼거리로 몰려들었다.
나무 그림자 짙어지면서 거칠어진 바람결에 야생화 하염없이 흔들거렸다.
스프링클러 일제히 치솟듯 시원하게 바람 넘나들어 상쾌 청쾌한 대기.
그러나 스치는 바람에서 심상치 않은 낌새가 느껴졌다.
기류 불안정해지며 성난 듯 구름장 획획 마구잡이로 떠밀려갔다.
동녘 멀리에 선 심술궂은 우렛소리가 으름장 놓았다.
목적했던 보물 호수까지 이르려면 아직 가파른 바위 등성이 두어 번 더 올라야 했다.
그보다는 오던 길 되짚어보니 깊고 얕은 계류 여럿 건넜던 생각이 났다.
갑작스레 기상이변이라도 생겨 광풍에 실린 장대비 집중적으로 몰아치면 속수무책으로 길이 끊길 수도 있으므로 미련 두지 말고 이쯤에서 돌아서는 게 옳았다.
산을 내려오는데 언제 흐렸더냐 싶게 하늘이 말갛게 틔여왔으나 모른척하고 내처 걸었다.
그래도 발길에 아쉬움 매달려 가끔씩 멈춰 서서 뒤돌아보면 의연스러운 청산은 저만치서 하냥 묵묵할 뿐이다.
나 여기서 언제까지나 그대 기다려줄 테니 마음 놓고 떠나라는 듯 영봉마다 손사래질 쳐준다 .
숨바꼭질하듯 숲 새새로 언뜻언뜻 터키석 같은 호수가 저 아랫짬에서 나타나곤 했다.
속다짐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욕심 접고 하산하다 보니 어느새 다다른 분기점.
비숍 패스로 올라가는 길과 보물 호수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레인저 둘이서 길 안내를 해주고 있었는데 그들은 끄떡없는 암벽처럼 날씨 아랑곳 않고 앉아만 있다.
여전스레 사람 좋은 친절한 미소 띤 채로.
혹시나, 하고 내려오는 길에 다시 찾은 사브리나.
사브리나 호수는 몇 번이나 발걸음 했지만 끝내 상냥스러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여태껏 본 중에서 가장 풍부한 저수량을 드러내 마음만은 흐뭇했다.
지난해 여름 찍은 사진에서는 낮아진 수위로 물속 바위 볼품없이 드러나 있었는데 위쪽 암청색 물빛이 나타내듯 수심 깊어진 호수...
기운차게 제방 아래 수로로 곤두박질 치는 하얀 물줄기는 계류 따라 흘러 흘러 끝 모를 여정길 치달리고 있었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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