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노숙기

by 무량화

'뉴욕의 가을'도 아니고 '뉴욕의 멋'도 아닌 뉴욕 노숙기라며 어울리지 않게 웬 꽃? 꽃은 역설이다. 그 상황에 알맞은 별도의 사진이 없기에, 저 꽃 색깔처럼 시퍼렇게 얼고 말았기에....



토요일, 필라에서 친구 딸이 주연을 맡았다는 뮤지컬 구경도 마다한 채다. 만사 제치고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것까진 좋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콘서트 보며 실컷 웃고 손바닥에 불나도록 박수도 힘껏 쳐주었는데 종당엔 뉴욕 노숙자 돼 봤다.



사연인즉, 2007년 초봄 뉴욕 중앙일보사에서 7080 추억의 포크 콘서트 티켓 두 장을 부쳐주었다. 예전 청춘시절 당시 잘 나가던 통기타의 주인공들이 한국으로부터 맨해튼에 온다는 것. 뉴욕에 공연 보러 간다니까 오페라냐 뉴욕 필이냐, 주변에서들 물었지만 쑥스러워 얼버무렸다.



한국 카수 그것도 대중가수 보러 뉴욕까지 가냐, 스스로도 좀 멋쩍었다. 이미자 디너쇼를 보고자 거금 던지는 사람들을 속으로 웃었던 만치 한국에서라면 어림없는 일일 테지만. 한촌에 사는 지금으로야 품종 불문, 무엇이든 문화활동에 심히 고픈 상태였다. 더구나 고국에서 온 동시대 카수들이다.



아무튼, 한 시대를 풍미한 가객 윤형주 김세환도 그렇지만 낭만에 대하여,를 부른 최백호가 궁금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그 쓸쓸한
음색을 직접 라이브로 듣고 싶었다. 허옇게 센 머리에 적당히 주름진 얼굴이 진솔해 보여 왠지 친근감도 들었다.



동부엔 그 전날 때아닌 봄눈이 제법 쌓인 터라 영하의 추운 날씨였다. 차를 몰고 가기엔 빙판길도 염려되고 지리도 잘 모르는 데다 주차난도 고려해야 했다. 해서 이웃에 가까이 있는 그러나 첨으로 타보는 그레이화운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오후 다섯 시 토요일 일과를 마친 다음 서둘러 터미널로 갔다.



버스는 두 시간도 안돼서 사뿐히 목적지인 도심 한복판 버스 터미널에 닿게 해 줬다. 콘서트장까지는 쏜살같이 노란 캡이 데려다줬다. 택시비는 팁까지 12불이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차례로 카수들이 나와 추억 속의 노래 그리운 노래를 불러주었고 막간의 재치 있는 토크로 활활 열기를 지폈다. 잠시동안이나마 완전히 나는 딴 세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전국 방방곡곡에 노래방이 보급된 후 다들 가수 뺨치게 노랠 잘한다고 해도 아무나 카수하나. 역시 특별한 달란트는 달란트다. 중후하게 나이 들어가는 환갑의 윤형주 그가 장식하는 마지막 무대는 막차 시간에 쫓겨 첫곡만 겨우 듣고 얼른 빠져나왔다. 그래도 비쩍 마른 그래서 동병상련의 동류의식마저 갖게 하는 최백호의 낭만... 을 들은 것은 그날의 여러모로 무리였던 뉴욕행을 보상해 줬다.



다시 붐비는 맨해튼의 늦은 밤거리를 기듯이 가는 택시에 실려 조마조마하게 터미널로..... 오히려 초저녁보다 더 북적이는 인파에 으리번쩍 골목골목 왁자하니 흥청대는 거리를 골목골목 누볐다. 택시는 빠른 지름길로 그러나 더디게 달렸다. 고층건물 사이로 저만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실루엣도 보였다.



촌닭의 상경기를 쓸만하겠구나 내심 흐뭇하니 오랜만의 나들이를 정리하려는 흡족한 기분이 드는 순간. 분명 11시 막차를 타려고 미리미리 대비, 10시 반도 안돼서 터미널에 도착해 줄을 선 우리다. 헌데 그 막차는 앞의 몇 명만 태우고는 달랑 출발하는 게 아닌가. 뭔 이유인지도 모르며 닭 쫓던 멍이처럼 어벙하니 버스 뒤꽁무니만 바라봤다.



틀림없이 다음 차가 대기되어 있겠지, 이 많은 사람이 열을 지어 기다리는데 응당 예비차가 있으려니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도 느긋이 기다렸다.
12시가 되어갔다. 그러나 터미널 측에선 아무런 기척이 없는 거다, 무슨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코빼기도 안 보인다. 더 가관인 것은 줄을 선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자약하니 마냥 기다리고만 서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그래서 시곗바늘이 1시를 지나고 있는데도 다들 미동도 않는다. 흐트러짐 없이 줄을 지탱한 채로 말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들. 내 앞의 점잖아 뵈는 큰 키의 백인은 아까부터 책을 꺼내 들고 읽는 중이다. 그 앞의 중국인 중년 부부는 커플재킷 차림으로 서로 어깨를 기댄 채 눈을 감고만 있다. 내 뒤의 인도 젊은이들은 패거리들끼리 무에 그리 신이 나는지 시시덕거리느라 바쁘다. 그 뒤쪽 청춘의 흑인 남녀는 자리건 이목이건 가리지 않고 애무에 빠져 정신이 없다.



한참 뒤쪽엔 크로바 스티커를 얼굴에 붙인 아이리쉬 학생 한 무리가 서있다. 더러는 목에 초록색 레이를 걸기도 했으며 스코틀랜드 고유의 주름치마를 입은 학생도 있다. 운두가 높은 녹색 모자를 쓰거나 크로버로 장식된 헐렁한 셔츠를 입기도 했다. 성 패트릭스 데이를 기념하는 아이리쉬들이 뉴욕 시가지에서 대규모 퍼레이드를 펼쳤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3월 17일 즈음인데 때아닌 폭설에 한파라니.



에스커레이터 입구에는 아까부터 통화 중인 한국 여학생 하나. 한국말로 끝없이 수다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생머리를 늘어뜨린 유학생 풍의 그녀는 혼자다. 그 시각에 무슨 일로 터미널에 홀로 서성거리며 한 시간 넘도록 전화질인지. 혼자 손짓해 대며 신이 나서 킬킬대는 모습이 보기에 영 안 좋다. 그렇게 씰데없이 줄줄 새나가는 한국의 외화가 아깝지 않을 수 없어서리.



곁을 스치며 연신 들고나는 사람들, 아니 인파들이라야 맞는 말이다. 물결마냥 몰려와서 줄을 섰다가는 사라지는 행렬 그리고 다시 긴 행렬. 야심한 시각에도 뉴욕은 깨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대합실 여기저기 진을 친 노숙자들, 허름한 옷가지며 끌고 다니는 짐꾸러미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그 시간에도 뉴욕은 대도시답게 연방 사람들이 밀려다닌다. 지구촌 곳곳의 잡다한 인종들이 다 모여있고 별별 인생들이 다 섞여 들었겠다. 갖가지 야채가 다 들어간 샐러드볼이자 온갖 광석이 다 녹는 용광로인 뉴욕이다. 오가는 사람 구경만으로도 이제 시간 흐름을 묶어놓은 듯 답답하지도 지겹지만도 않다.



여전히 우리 줄은 삼삼오오 얘기에 빠지거나 묵묵히 서있기만 하는 사람들 줄이 기다랗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도무지 누구 하나 불평하거나 성토하는 이도 없으려니와 답답히 여기는 이도 없다. 화가 나서 안달 부리며 초조해하는 이는 우리뿐, 목마른 사람이 먼저 샘 판다고 어설픈 영어로(미국인들은 그 유창한 말로 들 왜 따져 묻지도 못하고 장승처럼 서만 있는지) 안내 창구에 가서 물으니 3시 30분에 다음 차가 있단다.



줄 선 사람들에게 그 말을 통보하니 뭐 당연하다는 듯 다들 눈만 꿈뻑이며 이제 좀 더 기다리면 되겠구나, 하는 표정들이다. 우리 또한 별수 없이 아니 하릴없이 죽치고 기다릴 밖엔... 여지껏도 기다렸는데 체념하고 그냥저냥 버텨보나 춥기도 매우 춥거니와 슬슬 다리마저 묵지그레해진다. 생전 괜찮던 허리도 뻐근
하다.



철야 용맹정진하는 수도승 한번 되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좌선하듯 차가운 바닥에 손수건 깔고 앉아 새우잠을 청해 본다. (이미 대합실 의자는 노숙자 차지라 그나마 앉을자리도 없었다.) 3시가 넘어 4시가 다되자 안내방송은 거두절미하고 필라 체리힐 행 버스는 6시 반에 있노라고 알린다. 어쩌겠나, 남들처럼 조용히 기다릴 밖에.



그래도 그렇지 내참 기가 막혀서.... 빌어먹을 그레이하운드, 이름 그대로 진짜 개 같네. 씨부렁거리며 그러나 별수 없다, 여지껏도 기다렸는데... 이제 두 시간 정도만 참으면 되겠구나. 스스로를 토닥토닥 달래 본다. 다들 그렇게 자위하는지 별 동요도 없이 여전한 침묵을 지키는 긴 줄. 대단한 인내심들이다.



문이 열릴 때마다 허옇게 쌓인 눈바람이 대합실에 밀려들어 춥기는 왜 그리 뼛속까지 춥던지... 손 발도 시렸지만 도리 없었다. 완전 생동태가 될 판이다. 더구나 오래도록 한 자세를 유지하자니 다리며 허리며 사지가 온통 꼬여 생난리를 친다. 이 무슨 주책에 웬 청승인가. 한심스럽다. 나잇값 못하고 설치더니만 오지게 걸렸네. 이 꼬라지가 대체 뭔꼴이고....ㅉㅉ



하는 수 없다, 벽면수행이 따로 없으며 눕지 않고 앉아서 버티는 장좌불와(長坐不臥)가 바로 이것, 고행정진을 이번 기회에 한번 제대로 경험해 보는 거다. 우린 그렇다 치고 줄지어 선 뉴요커들, 거대 시스템의 한낱 부속물처럼 조용히 순응하는 그들이 희한하다 못해 별세계 인종처럼 여겨졌다,



거친 항의나 고성이 들릴법한데 침착하다 못해 무섭도록 고요하기만 하다.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못해 두려운 사람들이다. 우리네 정서나 우리네 냄비기질
로는 어림없는 일, 한 시간만 이러고 대책 없이 시간 낭비하며 서있으라면 애진작에 난리법석이 벌어졌음직하다. 자정 넘도록 이런 일 계속된다면 안내창구 유리창이 난동으로 박살 나고도
남을 일이다.



어느 미국인 형제는 필라로 비행기를 타러 가는데 9시에 대어서 가기 힘들겠다며 다만 한마디 구시렁. 알고 보니 어제 내린 폭설로 케네디 공항이나 뉴왁 공항이 제 기능을 못해 결항 편이 속출했다고. 그 바람에 터미널이고 기차역이고 교통대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 하니 다들 느긋하게 맘먹고 그저 기다릴 밖에.



우리만 혼자 당하는 불편도 아니건만 이건 횡포라며 여전히 투덜투덜, 얼굴에 '심히 기분 나쁨'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건 우리 부부뿐. 그렇다고 알아 모실 여건이야 전혀 아니다. 드디어 6시, 헌데 차를 탈 수 있는 자격은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 행 손님에게만 한정시킨다. 다시 우린 예외다.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꽤 많다.



밤새며 차를 기다린 수많은 사람들(한 150여 명)이 그때사 동요되기 시작, 줄이 약간 흐트러져 버린다. 다음차를 기약하기 힘든 상황이라 너도나도 무조건 타고 보려 아우성이 일 법도 하다. 그러나 결단코 깨어지지 않는 질서의식, 쓰나미에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섬뜩하도록 잘 훈련된 공공질서준수가 떠오른다.



저마다 밤을 새웠으니 짜증도 날 테고 다들 나름대로의 시간에 맞춰야 할 급한 용무도 있으련만 정녕 놀랍다. 필사적으로 올라타 보겠다며 죽기 살기로 엉겨붙지도 않는다. 줄 밖으로 이탈하는 사람도 생기지 않는다. 참말로 이 나라 사람들 침착하고 느긋하기도 하다. 잘못된 제도에 대한 도전이나 반발보다는 말없이 순응하는 그들.



악법도 법이라며 따른 소크라테스가 생각난다. 우리가 뭘 어쩌겠는가, 피해를 입거나 어떤 손실이 있더라도 우리는 기계의 작은 부속물, 그저 묵묵히 따를 따름. 그들의 태도로부터 '빨리빨리'에 익어 있는 조급한 성미의 우리로서는 배운 바, 느낀 점이 많을 밖에... 모든 것이 풍요로운 까닭인가, 여유만만 기다릴 줄 아는, 기다림에 익숙한 그들이야말로 과연 어른답고 신사답다.



일요일 아침 10시 미사전례에 맡은 소임이 있는 터라 택시라도 타고 가려고 밖에 나와보니 휑하니 텅 빈 도시. 택시 잡기도 어렵지만 대절비가 4백 불이란다. 뉴욕 노숙자까지 되어본 터에 그 거금 들여가며 부랴사랴 내려가겠단 말이 안 나온다. 혹시나 하고 다시 터미널로 내려와 보니 어머나! 7시 필라델피아, 체리힐 행 차가 눈앞에 터억 대기 중이다. 화장실에 들어간 요셉을 소리 질러 불러냈다. 심봤다! 아닌 차 왔다! 다급히 외치며...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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