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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사이 Jul 23. 2023

결혼, 꼭 지금 생각해야 하나요?

아홉수 이야기 4


요즘 부쩍 결혼 얘기를 하는 자리가 늘었다.

'결혼을 이야기 할 나이가 되었다'는 말부터

거부감이 느껴지지만, 확실히 빈도가 늘었다.


물론 흥미롭고, 나이대에 맞는 대화이고,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라 신기하긴 하다.

그리고 정말로 마음을 다해 축복하고 싶은,

주변 사람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할 나이' 라는 말에 현혹되어

방황한 시간들을 생각하면

이제는 현혹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스스로 판단해 보려 한다.

무엇무엇을 할 나이라는 말이

내가 닮고 싶은 말인가?

그렇게 살고 싶은가?


지속적인 질문은 지속적인 대답을 준다.

그 대답은 내가 하는 것이기에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누군가는 철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서른을 바라보면서 갓 졸업한 대학생들과

낄낄대며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나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나도 당연히 직급을 턱턱 다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뭘 해야하는 나이'는 

절대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서두는 이쯤 하고,

주변 사람들이 너는 결혼 생각 없어?

라고 물어볼 때마다 사실은,
내 대답이 너무 이상해 보일까봐,
아니 너무 이상적이라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까봐 그냥 어물쩡 넘겼다.


그런데 얼마 전에,

수학 강사로 유명한 정승제님이

결혼에 대해 이야기한 영상을 보았다.


이 영상으로 지금까지의 대답을,
그리고 앞으로의 대답을 정했다.


"결혼은, 사랑만 생각하면서 서로 의지하지 않을 정도가 돼야 된다고 나는 생각해. 서로 의지하니까, 손해, 플러스랑 마이너스랑 고민하는 것 같아요."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어렴풋이 느꼈던, 원했던 결혼의 조건은 이거구나.

나는 우스갯소리로 

내가 결혼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댈 수 있을 때

집도 내가 사고, 결혼 비용도 내가 댈 수 있을 때 하고싶다고 했었다.


한 명이 의지하는 역할을 자처하기 시작할 때. 

혹은 타의로 상대방의 의지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 사이에 생기는 균열이 얼마나 위태로워 보이는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기설기 쌓은 탑 같은지. 

스스로를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타인에게 얼마나 의지하게 되는지. 


여러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몸은 자세를 바로 하지 않으면 직립하기 어렵다.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세를 바로 하고 신경쓰지 않으면 직립, 바로 세울 수 없다. 


언젠가부터 깨달았다. '저 사람은 너무 의존적이야'라고 말하는 내 자신이 사실은 호크룩스처럼, 아니 이건 너무 잔인하니까 피자처럼 나를 나누어 주변 사람들에게, 가족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의존인지 공생인지 잘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은 할 수 있지만, '의존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결심했다.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지나친 의존은, 균열을 메우려는 노력보다는 비참함을 가져다 준다고. 의존하느라 놓쳤던 것, 의존을 감당하느라 놓쳤던 것들을 후회하게 한다고.


그래서 나를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내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 때, 

누가 의지하라고 곁을 내밀어도 불안에 떨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의지하라고 내 곁을 내어줄 수 있을 때가 오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오늘을 살아갈 힘을 준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 자신을 바로 세우려는 힘. 

나 자신을 위해,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힘.


이 글이 조금이라도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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