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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Jun 14. 2024

[쓰밤발오80] 한 줄기 빛

내 인생의 암흑기는 고등학생 때다. 10대가 대체로 암흑기였으나 최악은 고등학생 때다. 입시라는 거대한 파도에 마주해야 하는 것도 벅찬데, 내가 탄 서핑보드는 가시로 만들어졌다. 매일 찔렸고 아팠다. 괴로움 그 자체인 서핑보드로 파도도 넘어야 내가 살 수 있다니 그 압박감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가시가 날 찌르는 건데, 내 탓을 했다. 이것도 못 이기냐고. 정신력이 약하다고. 나만 파도를 제대로 넘지 못할 것 같아 늘 불안했다. 그게 내 고등학교 3년이었다. 입시와 입시가 전부라고 말하는 학교의 콜라보.


오늘은 그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나 3년 내내 재미있게 잘 지내고 여전히 만나면 마냥 웃는 친구를 만났다. 20대 초반엔 생일에만 만나는 사이가 되지 말자고 했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생일에만 만나도 좋은 친구가 되었다. 전처럼 자주 만나진 않지만 만날 때마다 왕창 웃는다. 행복하다. 


15년 친구. 내 인생의 반 정도를 함께한 내 친구. 내가 백수가 되고 나서부터는 얘를 만날 때마다 돈을 써본 적이 없다. 커피도 못 사게 한다. 생색 한번 없이 부담 갖지 말라고 하며 밥을 사준다. 얘가 속초에 놀러 가면 우리 집에는 만석 닭강정이, 제주에 놀러 가면 귤이, 일본에 다녀오면 일본의 조각이 우리 집에 온다. 고마운 마음에 연말에 선물을 보냈더니 내 마음을 꿰뚫었는지 고맙지만 본인이 나에게 뭘 해주는 것에 절대 부담 갖지 말라고 너한테는 해주는 게 기쁨이라고 말해주는 내 친구. 


몇 년 전 여행을 가겠다고 아르바이트한 지 삼일째였나? 매니저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를 혼냈다. 아마 기강 잡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어이가 없고 속상해서 꺼이꺼이 울었다. 손님들한테도 직원들한테도 너무 창피했던 날. 눈이 퉁퉁 부었다. 집에 가는 길에 친구들이 있는 톡방에 털어놓았는데, 바로 얘한테 전화 왔다. 그 톡방에 있는 친구들 중에 제일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그랬는지 마음 많이 다치지 않았냐고 무슨 일이냐고 전화를 줬다. 그리고 그다음 주였던가. 케이크를 사들고 음식점에 찾아왔다. 직원들이랑 먹으라면서 건네줬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얘한테 고마웠던 순간은 밤새도록 말할 수 있는데 오늘은 이 장면이 떠올랐다. 


오늘 한참을 웃고 떠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얘랑 친구 할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가도 그 고등학교를 선택할 거다. 아마 내가 그 암흑기를 큰 문제없이 잘 보내고 졸업한 건, 얘가 내 옆에 함께 걸어주는 빛이었기 때문이겠지. 나도 얘에게 언제나 함께 걸어주는 빛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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