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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미 Nov 02. 2024

걱정은 안개를 닮았다

어린이집 상담을 마치며

  "그 부분은 제가 아이와 어떻게 이야기 나눠야 할까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별거 아닌 듯 웃음 섞인 선생님 말투에 묘한 말의 뼈가 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물었어야 했다.

"말씀하신 부분은 단순 공유 차원인가요? 가정에서 지도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서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머뭇머뭇 내려앉을 데를 살피는 새처럼 어찌하지 못하고

 "고생하신다. 알겠다."는 식으로 둥글게 전화를 마무리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린이집 오전 간식 메뉴 중 아이가 싫어하는 것이 있다.

당근+두유 혹은 우유+오이 간식. 내가 봐도 갸웃한 조합이다. 섬유질이 많은 채소를 먹으면 좋지만

먹성 좋은 아이니 억지로 안 먹이셔도 된다고 선생님께 따로 말씀드렸었다.


어느 날 오이와 우유를 먹기 싫어하는 친구를 보고 아이는,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우리 엄마가 억지로 먹지 말랬어."

옆에 있던 선생님이 아이가 그렇게 말해서 난감했다고 한다.

사회성이 조금 부족한 아이로 생각하시는 건지 물었더니,

특유의 웃음을 곁들이며 살짝 그렇죠? 하신다.

아직 6살 아이인데, 이런 일로 사회성을 걱정하는 시기인지 좀 의문이 들었지만

뒤이어 여러 활동이나 학습태도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다고 포장을 하시는 통에

찜찜한 채로 전화를 끊었다.


별거 아닌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역시나 나와 결이 맞지 않네. 하고 지나쳐 버리고 싶지만

왜 그 상황에서 '정확하고도 단호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마음의 방이 여러 개면 좋으련만. 좁은 방에 근심이 자리 잡았다.

선생님에게 밉보여 좋을 것 없으니 그냥 웃으며 응대할 수밖에 없긴 하다.

나의 언행으로 인해 아이가 생활하는데 다소 불편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화살은 나에게로 와다닥 꽂혀버렸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이가 셔틀버스 타는 것을 힘들어했다. 보통은 30분 정도인데,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아파트 단지를 크게 도는 구조라 차를 타고 동네를 다 돌고 나서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통에 40-50분이 걸리기도 하는 것 같았다. 노선이 다른  버스로 바꿀 수 없는지 문의했더니 불가하고 정류장을 옮기는 것도 안된다고 했다.


아, 어쩌지... 조금만 참아보자 했다.

아이를 달래도 보고, 직접 등하원을 픽업해보기도 했다.  

차량비는 차량비대로 나가고, 나는 나대로 지쳤다.

멀미는 드문드문 한 학기 동안 계속됐고 이로 인해 아이는 주말에 차를 타는 것을 아예 거부했다.

그러다 등원시간보다 일찍 집 앞으로 지나가는 차량을 발견하고

다시 한번 물어봤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는데 방법이 아예 없는 거냐고.


 "기사님과 상의해 보니 등원 차량시간을 늦추고 반대편에서 타면 될 것 같은데...

  20분 정도밖에 단축이 안돼요.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감지덕지하며 그러겠노라 했다.

내가 정확하게 어필하지 않아서 그동안 아이가 힘들었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후 하원차량에서 다시 문제가 생겼다. 하원할 때 너무 끼어와서 답답하다고 했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아이를 안고 느릿느릿 달팽이처럼 집에 왔다. 아이는 피로에 지친 직장인처럼

몇 분씩 소파에 축 늘어져있었다.


아이에게 상황을 물어보니, 3명이 타는 좌석이 있는데 늘 중간에 끼어있다고 했다.

양옆의 아이가 좁다며 싫은 내색을 할 때는 바짝 몸을 웅크리고 와서 힘든 모양이었다.

고민이 됐다. 우리 아이만 넓은 자리를 줄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래도 말은 해야 했다.

"번거로우시겠지만(섭외할 때 늘 약자의 태도로 말하곤 했는데 아직도 버릇처럼 남아있다)

 버스 좌석을 번갈아 가면서 중간 자리에 앉거나

 멀미가 심하니 아이들이 내리고  앞쪽으로 당겨 앉을 수 있을까요?"


"어머님은 2명 자리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러면 다른 아이가 좁은 3자리를 앉아야 하니 그러면 불공평하겠죠?"

"아니에요 어머님, 바꿔드릴게요."


 좀 의아했다. 우리 아이만 예민한 건가?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불만을 표시해야만 개선이 되는 걸까.

내가 너무 이상적인 교육기관을 꿈꾸는 건가?

별일 아니라는 듯 아이는 두 자리가 앉는 좌석으로 옮겨졌고, 좀 편해졌다고 했다.


엄마가 하는 말이나 태도로 아이의 생활이, 때로는 불편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난다.

"엄마 오늘 아픈 날이야?"

아이가 걱정스러운 듯 묻는다.

동그랗고 말랑한 아이 배에 얼굴을 비비며 생각했다.

'엄마가 조금 느려서 미안해.'



“가만 보니까 걱정이 안개를 닮았더라고요.

코 앞에서 눈을 가리지만

한 발자국만 내딛어도 사라져요.

걱정거리가 있으면 없는 셈 치고 발걸음부터 떼세요.

걱정은 내 마음의 배신입니다.“


김창완 에세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_'걱정은 안개를 닮았습니다' 중에서



어떻게 말할까. 이러면 아이를 미워할까?

걱정의 안개로 질식하지 말 것.

발걸음을 뗄 것.

엄마모드로 용기 낼 때 필요한 마음을 챙겨두기로 한다.


살면서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까 졸지 말고 정확하게, 우아하게 말하자!


아이는 오늘도 잘 익은 복숭아처럼 사랑스럽고 빛난다.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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