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 사마르칸트, 타슈켄트
수많은 나라를 여행한 나에게도 아직 가보지 않아 궁금한 곳들이 많다. 그 중 몇 개만 적어보자면, 노르웨이&아이슬란드, 티베트&인도 북부와 파키스탄 훈자, 아프리카 중남부 등등. 그런데 얼마전만 해도 이들보다 앞서 여행 우선 순위를 차지했던 나라들이 있었으니, 바로 중앙아시아의 ‘-탄’으로 끝나는 국가들이었다. 나의 수험 생활에 큰 동기부여가 되어 주었던 탄탄 국가들, 그 중 우리나라에서 직항이 있고 볼거리가 많다고 소문난 ‘우즈베키스탄’이 올해의 여행지로 낙점되었다. 이제 2023년 가을, 10일간의 우즈벡 여행을 4가지 키워드로 추억하면서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여행 전 이 나라에 대해 공부하면서, 중앙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언어가 터키어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구소련 5개국 중 페르시아계인 '타지키스탄' 제외) 그럼 도대체 얼만큼 비슷할까 구글을 검색해보니 익숙한 표현들이 조금 변형된 버전으로 적혀 있었고, 숫자는 터키어와 거의 일치해서 여행 중에 써봐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 택시 기사에게 처음으로 터키어 실험(?)을 해보았는데, 나름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져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후 현지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 혹시나 하고 내뱉은 터키어를 상대가 알아들었을 때의 그 쾌감이란! 터키어는 뜻밖에도 우즈벡 현지인들과 친밀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그들은 한국인이 터키어를 어떻게 아는지 궁금해했다. “온 베쉬 이을 왼제 벤 튀르키예데 오쿠둠 (15년 전에 터키에서 공부했었어요)” 생각해보니 벌써 15년 전의 이야기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1년을 다른 나라에서 살아봤던 경험은 터키가 유일하기에 그곳은 마치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의 음식과 노래, 길거리의 간판까지도 터키와 비슷해서 마치 스무 살 무렵 그 시절로 추억 여행을 온 듯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이 많았다. 내가 좋아했던 ‘돌마’(포도잎에 양고기와 쌀, 잣, 허브 등을 싸서 먹는 고기쌈 같은 음식)는 두 번이나 먹었고, 하루는 터키 음식점에 가서 본격적으로 포식을 하며 터키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다. 또한 길거리나 상점에서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왠지 익숙한 멜로디에 같이 흥얼거리곤 했는데, 특히 우즈벡 국민 가수인 듯한 ‘Nasiba Abdullayeva’의 ‘Samarqand’ 라는 노래가 좋아서 귀국 후에도,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듣고 있다. 멜로디가 선물해주는 달콤한 시간 여행중이다.
부하라의 황토빛 건물들로 이뤄진 미로 같은 골목길을 걸을 때였다. 불현듯 이십 대 여행의 추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는지 인도와 이집트, 터키에서 본 풍경이 모두 섞인 장면을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즈벡에는 130여 개의 인종이 살고 있는 만큼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얼굴들을 마주칠 수 있다. 터키, 러시아, 몽골, 그리고 그 중간 혹은 각각의 인종을 묘하게 섞은 듯한 얼굴까지. 과연 2천년 역사의 실크로드 중심지 답게 다양한 문화와 인종의 융합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우즈베키스탄이다.
단일민족 국가라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사람들의 다채로운 생김새에 눈길이 갔다. 그런데 최근 ‘The DNA Journey’라는 흥미로운 영상 한 편을 보았다. 내용은 이렇다. 사전 인터뷰에서 “전 OO 국가가 싫어요”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DNA 검사 2주 후 결과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바로 그들의 DNA 중 일부가 바로 자신들이 싫어하던 그 국가 민족의 것이었던 것. 사실 영겁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 시민 모두가 하나의 DNA를 갖고 있지만 말이다.
영상 속 내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주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했다. 또한 다양한 얼굴들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모습은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을 저출생의 대안으로 찾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우리 조상도 그 먼 옛날,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7시간이 넘게 걸리는 바로 이 곳에 다녀가셨다.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Afrasiab)’ 벽화 서벽 오른쪽 끝을 보면 아담하게 그려진 고구려 사신 두 명을 찾아볼 수 있는데, 7세기 무렵 소그드인을 다스린 바르후만 왕과 그를 알현하는 12명의 외국인 사신단 중 하나였다고 한다. 몇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모사도를 보고 꼭 한번 직접 보고싶던 곳이었기에 한 시간 넘게 머물며 눈과 마음 속에 담았다. 그리고 약 600년 전에는 본업인 정치보다 천문학과 수학에 관심이 더 많았던, 티무르의 손자 ‘울르그백’이 세종대왕과 동시대를 살아 서로 교류를 했다고 하니, 나 역시 0.xxx…% 정도는 우즈베키스탄 민족의 DNA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기여행을 할 때 조그마한 흰색 포스트 잇을 가지고 다니며, 기억하고 싶은 장소나 순간의 장면을 간단한 스케치로 담아내곤 했다. 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기에 처음엔 감도 안 잡히고 어려울 뿐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이 정도면 괜찮네 라고 어깨를 으쓱하는 날이 늘어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19년 2월, 미얀마 ‘바간’의 한 사원에서 스케치를 했던 순간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나 한동안 관광객이 오지 않아 탑과 오롯이 마주하던 시간, 스케치를 하면서 처음엔 그 탑과 교감을 하다가 어느덧 탑과 나를 감싸는 공기만이 남은 듯 무아지경의 상태에 이르렀던 그 순간이 여행의 농도를 더 짙게 하였기에, 이번 여행에서 다시 그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점찍어둔 장소는 론리플래닛 Central Asia 6th 에디션 표지모델로 등장하여 내게 중앙아시아 여행의 로망을 심어준 부하라의 ‘초르 미나렛 (Chor Minor)’이었다. 마침 내가 태어난 해에 제작된 특별한 엽서 한 장을 산 뒤, 그 뒷장에 대략적인 구도를 잡고 대상을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순간, 스케치가 아니었다면 사진 몇 장 찍고 길어봐야 10분 정도 보다가 지나갔을 이 순간이, 내 머릿속에 또렷이 각인될 ‘영원’이 되었다. ‘돔의 파란 색감이 정말 이쁘네, 저 섬세한 모자이크 문양 좀 봐. 오래전부터 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널 볼 수 있어서 참 좋구나’ 미나렛과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스케치를 하던 중 주변의 많은 관광객들이 관심을 보였는데, 그 중 미국인 단체 관광객 몇 명은 사진도 찍어 가서 얼굴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독일에서 온 한 미술 선생님(!)은 한 시간 전부터 내가 스케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자신도 이곳에서 특별한 에너지를 느껴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말을 걸었다. 내 작품에 대해선 음… Good 정도의 코멘트를 해 주셨지만. ‘POST-IT moment’ 라 이름 붙인 이 행위는 나와 작품의 대상뿐 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마법도 갖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추천하는 이유 3가지를 들자면, 바로 1. 맛있는 음식, 2. 저렴한 물가, 3.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현지인이다. 우선 맛있는 음식부터. 우즈벡은 멜론과 무화과와 같은 과일이 달콤하기로 유명하고 넓은 벌판에서 건강하게 뛰놀며 자란 양&소고기가 유명하다. 갓 구운 화덕에서 나와 불의 향기를 머금고 있었던 쫄깃한 사마르칸트의 논(빵), 얼큰한 짬뽕 라면 라그만, 눈에 보일때마다 사 먹었던 석류 착즙 주스, 메뉴판 몇 장을 차지할 만큼 다양한 종류의 샐러드도 어찌나 맛있던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가지 샐러드’인데, 지금 내가 먹는 것이 가지인가, 탕수육인가? 가지에서 고기의 식감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환상적인 음식이었다. 식당을 통째로 한국에 옮겨와서 다른 음식들도 다 맛보고 싶었던 적도 여러 번, 조식부터 신선한 음식들을 가득 담아와 포식하다 보면 오후가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음식을 맛보러 기어코 식당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두번째는 저렴한 물가다. 사실 다른 물가는 개발도상국에서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가장 감동을 받은 건 택시 요금이었다. 구소련권 국가에서의 우버라 할 수 있는 ‘얀덱스’를 이용하면 대략 1분에 100원이라는 놀라운 금액으로 택시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종 이 금액을 지불하는 게 미안해서 팁을 얹어줄 수밖에 없었고 이걸로 기름값은 될지, 그럼 도대체 인건비는 얼마인지 갸우뚱하곤 했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면 숙소비. 호텔 가격은 거의 한국과 비슷하다고 봐도 될 만큼 물가 대비 많이 높았고, 좋아하는 마사지도 그다지 저렴하지 않아 두 부분에서는 지출이 적지 않았다.
세 번째는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현지인. 처음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기사들에게 둘러싸였을 때부터 들었던 한국어는 이후 어딜 가든지 그것도 아주 유창한 발음으로 들리곤 했다. 심지어 관광지에서 다소 떨어진 현지인 거주 구역의 수퍼마켓에 갔을 때에도 부산이 그립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즈벡에는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현지인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그 기억이 좋았었는지 한국인에게도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 여행이 더 즐거울 수 있었다. 한번은 사마르칸트의 상징인 ‘레기스탄 광장’의 화려한 레이저 쇼를 구경한 후 호텔로 가려는 순간, 현지 청년들이 다가와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그들은 한국어를 전공하는 대학생들로 나와 한국어 연습을 하고 싶었던 것. 20분 정도 얘기했을까, 밤에 기온이 많이 떨어져 종종 걸음으로 떨고 있지만 않았어도 더 오랫동안 대화 상대가 되어줬을텐데. 미안하지만 너무 추워서 가봐야겠다고 인사를 하면서 현지인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은 추운 날씨가 미웠다.
그렇다, 이제 마이너스를 이야기할 차례다. 다소 주관적이긴 하지만 바로 날씨와 공기는 내 타입이 아니었다. 여행했던 10월은 날씨가 좋다는 성수기였음에도 일교차가 커서 (대략 5~25도 분포) 아침 저녁에는 경량 패딩만으로 추위를 막기에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이상 기후로 인해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고 여름에는 40도 이상 올라간다고 하니, 대략 5월이나 9월쯤 방문하는 게 가장 좋을 듯하다. 그리고… 한동안 여행의 즐거운 추억을 잊게 만들었던 나와 함께 귀국한 목감기. 무려 한 달 넘게 갔을 만큼 독한 감기를 달고 왔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마지막으로 방문한 수도 ‘타슈켄트’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 오염이 심한 도시였던 게 주 원인이었던 듯하다. 부하라와 사마르칸트의 공기는 매우 청정하니 마음껏 마셔도 되지만, 타슈켄트를 여행할 때 마스크는 필수로 챙겨가시길ㅠㅠ
마지막으로 마이너스를 가장한 플러스를 말해보자면, 우즈베키스탄은 시간이 많다면 모를까 푹 쉬며 진정한 휴가를 즐기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여행 전까지 한국에서 여러 일정이 많아 지쳐 있었기에 좀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볼 거리가 많아서 매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으니까. 다음에 다시 이곳을 방문한다면, 이번 짧은 일정에선 방문하지 못한 고대 도시 ‘히바’, 아랄해의 눈물을 볼 수 있는 ‘무이냑’과 티무르의 고향인 ‘샤르히샵스’도 가보고 싶다.
“우즈베키스탄? 거기 뭐가 볼 게 있어?” 코로나 이후 여행 수요가 폭발한 올해, 다들 누구나 알만 한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 떠나고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생소한 나라를 여행한다는 내게 주변에서 흔히 보인 반응이었다. 그때 난 담담히 말했다. 비취색 돔으로 대표되는 이국적인 중앙아시아 모스크의 웅장한 모습을 직접 보고 싶고, 좋아하는 양고기도 실컷 먹고 싶다고. 그러나 가슴 속에 담아둔 진짜 이유는 조금은 아껴 말했다. 탄탄 국가들이 나의 수험 생활에 큰 원동력이 되어준 고마운 존재였기에 그를 직접 만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1년이라는 시한을 두었기에 끝은 알 수 있었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어 답답했던 책상 앞에서 ‘Central Asia travel’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영상으로 랜선 여행을 하던 그 시절. 지리부도 속 지도를 펼쳐 놓고 여행 동선을 짜며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했던 그 시간이 있었기에 이번 우즈베키스탄 여행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여행만은 아니었다고. 고마운 나의 우즈베키스탄! 언젠가 다른 탄탄 국가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또다른 여행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