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꿈★은이루어진다

세이셸 신혼여행기

by 경험주의자


허니문, 세상에서 꿀처럼 가장 달콤한 여행. 사람들은 종종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신혼여행으로는 어디를 갈지 궁금해했었다. 그리고 대답을 하면 항상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 달라고, 근데 거기가 어디에 있냐고 되물어보았다. 그곳은 바로 나도 가끔은 발음하기 힘든 나라, 세.이.셸.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 근처’, ‘위험한 곳, 사파리 그런데 아니고 휴양지’라고 부연 설명을 해야 하는 이 나라를 처음 알게 된 건, 2013년 봄이었던 것 같다. 어디서 어떻게 접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매끈하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바위들과 에메랄드 빛 바다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에 한 눈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이토록 지구가 꼭꼭 숨겨놓은 천국 같은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면 더없이 로맨틱할 것 같았다.


isole-seychelles-panoramica_2.jpg.image.694.390.low.jpg 2013년 언젠가, 날 매혹시켰던 세이셸의 한 장면

당시에는 궁금한 분야가 생기면 책을 사 읽으면서 호기심을 해소하곤 했다. 마침 지금은 절판된 세이셸 관련 책, ‘세상 어디에도 없는 Seychelles’이 있어 구입 후 읽어보았다. 지금은 책을 사면 앞 장에 구매한 날짜 정도만 적지만, 몇 년 전만해도 그 책을 사게 된 이유와 읽기 전 기대감 등을 담은 작은 멘트를 같이 적곤 했다. 그 때 세이셸 책 앞 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2013. 4. 29. 나의 신혼여행지가 될 곳♥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할 것 같은 그곳을 함께 갈 미래의 연인과 같이 보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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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신혼여행을 주제로 얘기가 나올 때면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세이셸’을 외쳤고, 언제부터인가 ‘진짜 가고 싶다’보다는 ‘당연히 가야지’라는 마음이 되어 나의 신혼여행지는 불가침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현재의 남편이자 몇 년 전에는 남자친구였던 그에게도 연애 초반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 신혼여행지는 세이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정작 진짜 결혼할 때가 되자 그는 스위스와 같은 유럽을 가고 싶어했지만, 내가 저 책의 앞 장을 보여주며 세이셸을 향한 나의 오랜 기다림을 입증하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엄마께는 또 언제 말씀드렸는지, "거기 너가 맨날 얘기하던 세이셸? 진짜 가는 거야?"라고 신기해 하셔서 내가 알게 모르게 소문을 많이 내고 다녔음을 알게 되었다.


2024년 4월, 벚꽃이 만개하고 햇살이 환하게 빛나던 어느 봄 날 우리는 결혼을 했고, 그로부터 2개월 지난 6월 초, 약 2주 간 세이셸(+두바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공항이 있는 마헤섬에 도착해 렌터카를 타고 창밖에서 바라본 풍경, 아프리카 남쪽 국가로의 여행은 처음이었기에 생소한 아프리카의 문화와, 정확히 프랑스+아프리카가 융합된 세이셸의 크레올 문화를 접하니 호기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엇보다 결혼보다는 신혼여행을 더 기대했던 내가 드디어 10년 넘게 고대하던 장소에 왔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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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함’, 이 세 글자가 세이셸이 허니문 장소로서 매력적인 이유를 설명해준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나라지만 유럽 등 서양 국가에서는 유명한 휴양지였음에도 어딜 가든 사람이 적거나 아예 없어서 무인도에 떨어진 듯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매순간 이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온전히 향유하고 있다는 벅찬 감정으로 세이셸에서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마헤, 라디그, 프랄린 3개의 메인 섬을 배와 경비행기를 타고 드나들며 그 매력에 흠뻑 빠졌던 세이셸, 그 속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 TOP5를 뽑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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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 만난 앙수스다정 (Anse Source D’Argent)

‘CNN과 내셔널그래픽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우리에겐 ‘다정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앙수스다정은, 바로 날 세이셸로 이끈 2013년 우연히 만난 사진 한 장의 배경이다. 손으로 빚은 듯 매끈하면서도 굴곡진 산맥처럼 매력적인 세이셸의 화강암. 사실 에메랄드 빛 바다는 여느 휴양지에서도 볼 수 있기에, 이 독특한 바위덩어리들이야말로 세이셸을 상징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보고 싶었던 이 바위들과 다정이와의 첫 만남은 아쉬움만 남았다. 빨리 보고싶어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 그날 하필 소나기가 퍼부었고 하루 종일 구름에 덮여 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꿈꾸었던 장소에 왔으니 물 속에서 열심히 놀고 바위도 맘껏 만져보았지만 날씨만 맑으면 2013년 날 매혹시킨 사진 속의 풍경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을 텐데… 그 감동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아쉬움이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에 배를 타고 프랄린 섬으로 이동하는 일정이라 다시 오기 어려울 것 같아 더욱 속상했다.


그러나 미련이 남은 듯한 나를 본 남편은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날씨가 맑을 것 같으면 서둘러 한 시간 만이라도 보고 가자고 얘기하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전해졌는지 남편이 날씨가 좋은 것 같다며 깨웠고 아침 잠이 많은 나는 신나게 준비한 후 씩씩하게 걸어, 다시 한번 이번에는 환하고 말갛게 웃어준 다정이와 다시 만났다. 비록 이른 아침이라 그 사진과 똑같이 빛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떠나기 전 내 꿈의 장소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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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그 섬(La digue) 로지 앞 해변에서 놀기

세이셸 3대 섬은 공항이 있는 마헤섬, 두번째로 큰 프랄린섬, 그리고 가장 작지만 아름다운 라디그섬이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섬은 라디그 섬이었는데, 메인 교통수단이 자전거일만큼 때묻지 않은 태고적 자연과 가까운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묵은 로지 형태의 숙소에서는 몇 발자국만 나가면 한적한 프라이빗 해변이 펼쳐졌다.


마침 석양 즈음이라 주변이 노랗게 물들던 그때,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온몸으로 파도를 맞으며 모래 찜질을 하고, 바다에 뛰어들어가 놀면서 바라봤던, 석양을 머금은 오렌지 빛 바위들과 야자수의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이 풍경은 오직 세이셸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진짜 세이셸에 온 거 맞구나. 비현실적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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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그 섬(La digue)에서 자전거 타기

라디그는 자전거를 타고 해안을 따라 2~3시간이면 돌 수 있는 작은 섬으로, 섬에 도착한 첫날 북쪽 해안가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구경했다. 내가 좋아하는 제주도 해안 풍경과도 닮았지만 세이셸만의 독보적인 예술품인 화강암들이 여기저기 조각상처럼 놓여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중간에 세이셸의 유명한 화가 ‘George Camille’ 갤러리에 들러 구매한 세이셸의 해변을 담은 프린트화 한 장은 현재 우리집 안방에 자리잡아 매일 그곳을 추억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꿈꾸던 매끈한 바위들과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씽씽 달리며 바다 바람을 온 몸으로 느꼈던 자전거 라이딩은 세이셸이 나에게 보내는 포근한 환영 인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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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랄린 섬(Praslin) 리조트에서의 수영

막연히 물과 친하지 않고 물이 무섭다고 생각하며 그동안 번번히 실패했던 수영 배우기, 그러나 이번에는 ‘세이셸 수영장에서 별 보면서 수영하기’라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생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이셸행 티켓을 끊은 재작년 여름, 몇 차례의 개인 강습을 통해 풀부이의 도움을 받은 자유형까지 성공, 결혼식을 마치고 여행 한 달 전 다시 한번 강습을 받아 완벽한 자세는 아니지만 자유형과 배영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제 그 로망을 실현할 순간이 왔다.


프랄린 리조트 개인 수영장에서 밤이 오고 별이 뜨자, 조용히 물에 누워 발차기를 시작하는 순간 정지되었던 세이셸의 밤 하늘, 그 충만했던 적막감….


뜨거운 한낮에 아무도 없는 리조트의 메인 수영장에 누워서 바라본 세이셸의 새파란 하늘과 태양. 내 발이 만들어 낸 찰랑찰랑 물소리를 들으며 오롯이 세이셸의 눈부신 햇살과 바람을 느꼈던 그 황홀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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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스라지오(Anse Lazio)에서의 스노클링

앙수스다정과 함께 아름답기로 소문 난 프랄린 섬의 ‘앙스라지오’ 해변. 이날도 구름이 옅게 자리잡아 기대했던 풍경은 볼 수 없었으나, 이른 아침에 방문하여 무인도에 온 듯 신비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흐린 색감의 바다보다는 마치 예술가가 손수 배치한 것처럼 하나의 작품으로 놓여있던 노란빛 화강암을 보고 감탄사가 나왔다.


특히 그 바위 사이로 스노클링을 하러 들어가서 본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너무 예쁘고 신기했다. 수면 위로 살짝 얼굴을 내밀면 밋밋한 색의 잔잔한 바다일 뿐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이토록 다채로운 세계가 펼쳐 지다니! 문득 ‘내가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세이셸 프랄린섬의 앙스라지오 해변에 오고, 바다 속까지 들어와서 이렇게 너희들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다. 그때 만난 물고기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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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것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국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물가에 현지인들은 어떻게 살지 싶게 모든 것이 비쌌다. 한 가지 예로 적당한 로컬 식당에 들어가 대표 음식인 커리 요리 2개랑 코코넛 하나를 시키면 원화로 10만원 정도 나오는 수준. ‘허니문’이라는 마법의 단어 덕분에 아무렇지 않은 척 카드를 내밀었지만 시간이 지나고나서 보니 엥?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소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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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비싼 물가는 알고 간 거지만, 정말 아쉬웠던 건 날씨였다. 4월 식후 바로 신혼여행을 가지 않은 이유는 세이셸의 건기(6~9월)에 맞춰 가기 위해서 였다. 그래서 매일 새파란 하늘과 바다의 품에 안겨 멋진 인생 샷들을 만들겠다고 기대를 했으나, 그런 날은 모두 합해서 3일 정도 됐을까. 대부분은 흐리거나 애매하게 맑은 그런 날씨를 보여줬는데, 현지인의 말에 의하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최근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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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책장 한 켠에 꽂혀 있던 선명한 분홍빛의 세이셸 책, 방을 오가다 가끔씩 눈길을 주며 저기 언제 갈 수 있을까? (=언제 결혼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하고 살았는데… 드디어, 꿈★은 이루어졌다! 역시 여행도 오랫동안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구나.


무엇보다 세이셸 신혼여행을 실현시켜준 일등 공신은, 10여 년 전에 혼자서 신혼여행지를 정해버린 나의 뜻을 흔쾌히 따라 준 남편이다. 처음 만날 땐 ‘세상에 볼 것도 할 것도 많은데 우리 같이 하자’라는 ‘경험주의자’ 취향 저격 멘트를 날리더니, 결혼 후 지금까지도 새로운 이벤트를 계획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열정주의자’ 남편이 있기에, 세이셸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가서도 그와 함께라면 달달한 허니문이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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