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만족 치앙마이 여행기
나의 브런치 글쓰기의 시작을 알린 ‘퇴근길 여행’ 시리즈의 초안은 2019년 1월 ‘발리’에서 한 달 정도 체류하면서 작성했던 것이다. 발리는 약 2년 간의 세계여행을 마친 직후이자, 인생의 1/3 정도 살아온 시점에서 나를 지금까지 성장시켜준 여행들을 돌아보게 한 소중한 장소였다.
그러나 이 ‘글쓰기 여행’의 후보지는 사실 발리가 아닌 ‘치앙마이’였는데, 겨울의 치앙마이 미세먼지가 심각하다는 정보를 뒤늦게 접하고 급히 목적지를 변경했던 것이다. 그때의 아쉬움이 남아서 언젠가 일주일 살기라도 하러 가겠다고 가슴 한 켠에 담아두었던 치앙마이. 그러나 주변에 얘기하면 거기 이미 가본 거 아니었냐는 말을 여러 번 들었을 만큼 이 뻔하고 흔한 여행지를 2024년 11월 말, 브런치 필명에 맞게 다채롭게 즐기고 왔다. 이제 경험주의자가 ‘오감(五感)’ 만족하며 열심히 경험한 치앙마이를 하나씩 살펴보자 :)
시각(視)- 전통복 입고 사진 찍기
여행 가기 전 구글에서 항상 찾아보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그 나라의 전통복을 입고 사진 찍을 수 있는 'Photo studio'! 사진관이 없는 나라야 거의 없겠지만 외국인들이 전통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치앙마이에서는 이미 흔한 트렌드였는지 원하는 곳을 금세 찾을 수 있었고, 심지어 방문할 당시 다른 한국인 손님 두 명도 있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사진관에 도착한 뒤 우선 화보집을 보면서 직접 입을 전통 의상을 골랐다. 다음 옷에 맞추어 묵직한 가채를 머리에 쓴 뒤 귀와 목에 큰 액세사리를 달고 오랜만에 진한 메이크업을 받았다. 나의 새로운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도 빨리 사진 찍고 이 무거운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메이크업과 착장을 모두 완료한 뒤 약 10분 정도 사진사가 안내하는 여러 동작들을 따라하면서 찰칵 찰칵 몇 컷을 찍으면 촬영이 완료된다. 원본은 에어드롭을 통해 바로 휴대폰으로 전송해주고 10장 정도는 보정해서 2~3일 후 메일로 보내주었다.
귀국 후 친구들에게 치앙마이 여행 사진을 보여줬을 때 가장 반응이 좋았고 큰 웃음을 이끌어냈던 나의 전통복 사진. 도대체 왜 굳이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거냐는, 그들의 결코 농담같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았다. 우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양한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익숙한 나 자신을 다르게 보는 재미를 느끼게 위해, 그리고 그 나라를 여행한 추억을 가장 선명하게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서! 할머니가 되어서도 난 여전히 세상 어딘가의 카메라 앞에서 재미난 포즈를 잡고 있을 것 같다.
@ Nakara Chiangmai Studio
청각(聽)- 전통 공연 보면서 집밥 먹기
여행 전 사진관과 함께 검색해보는 키워드는 그 나라의 ‘전통 공연’이다. 관광 대국 태국의 치앙마이답게 이 역시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깐똑 디너쇼’였다. ‘깐똑’이란 동그란 밥상 위에 밥과 여러가지 반찬을 내어 한 상 차려 먹는 북부의 가정식을 뜻하므로, 집밥을 먹으며 눈호강 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음식으로는 치킨, 소시지, 튀긴 돼지껍질과 채소 등이 나왔는데 재료 그대로의 자연적 속성이 살아있는 건강식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네팔이나 부탄 음식과도 비슷했으나 그보다는 향신료가 조금 강하고 양도 많은 편이었다. 그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돼지고기 커리인 ‘깽항레’! 마치 고추 참치 맛이 나서 한국인이라면 좋아하겠다 싶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화려한 전통복을 입은 사람들이 북부의 전통 악기를 연주하거나 칼춤같이 다소 역동적인 춤을 추는 등 각 5분 정도의 다양한 쇼를 펼치며 진행되었다. 비록 란나식(좌식) 의자에 앉아 두 시간 동안 앉아 있는 게 살짝 불편하기는 했지만 맛있는 밥상 앞에 앉아 이국적이고 신나는 리듬에 어깨를 들썩이며 흥에 취했다. 음식과 공연 둘 다 마음에 들었고 기분 좋은 날씨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주는 듯 치앙마이의 포근한 밤 풍경이 마음을 더욱 들뜨게 했다.
@ Old Chiangmai cultural center
후각(嗅)- 태국 요리 배워 보기
음식을 맛있게 하시며 딸들의 부엌 출입을 반기지 않으셨던 우리 엄마 덕분에, 이 나이를 먹기까지 요리를 거의 해보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2024년 봄,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아보며 이것저것 따라해보니 요리가 생각보다 재미있고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험 정신을 발휘하여 이 재료를 넣어볼까, 이 양념을 넣어볼까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그 결과물이 나름 성공적이었을 때는, 요리도 글쓰기나 그림처럼 무언가를 창조하는 예술같다고 느껴졌다.
13년 전 발리에서 쿠킹클래스에 참여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오직 ‘사테’(꼬치 구이)가 참 맛있었다는 것 뿐. 그러나 이번 치앙마이 쿠킹클래스에는 ‘요리를 경험해 본 여자’라는 완전히 새로운 자격으로 참가하게 되었으니 분명 그 즐거움은 다를 것 같았다. 수업은 아침 9시쯤 한 로컬 마켓에서 선생님과 수강생들이 만나 재료를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동안 궁금했던 이국적인 채소나 과일, 향신료에 대해 질문할 수 있었고 태국 요리의 3대 기본 재료가 ‘Kafir lime’, ‘lemongrass’ ‘galangal’ 이라는 지식 등도 쌓으며, 내가 만들 요리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 지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요리는 한 가정집의 야외 테라스 같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1. Appetizer 2. Stir fry 3. Soup 4. Curry 5. Dessert 중 망고밥으로 통일되어 나오는 디저트 외 각 4개의 파트에서 한가지 요리를 선택해 만들 수 있다. 이후 재료를 준비하는 구역과 불을 사용해서 조리하는 구역을 8명이 한 조로 번갈아 이동하며, 각자 고른 요리를 만들고 완성 후 모여 앉아 맛있게 먹으면 된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요리는 내가 ‘appetizer’ 파트에서 고른 ‘쏨땀(파파야샐러드)’이었는데, 그린파파야가 생각보다 너무 딱딱해서 잘 썰리지 않아 계속 진땀을 뺐고 결국엔 선생님께서 거의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칼질과 재료 손질, 조리까지 허둥지둥 따라하기 바빴지만… 어쨌든 나와 선생님과 가끔 옆 사람들의 노동력까지 더해진 이 맛있는 태국 음식들을 먹으면서 요리와 좀 더 친해졌다는 데 의의를 두어야지.
@ Passionfood Thai cooking school
미각(味)- 창의적인 요리 맛보기
치앙마이는 입이 즐거운 곳이다. 우선 미슐랭 맛집 도장깨기의 재미가 있다. 미슐랭이라고 격식을 갖춰 차려 입고 주머니를 무겁게 채워서 가는 곳이 아니라, 합리적 가격의 ‘빕그루망’ 식당이 대부분이기에 작은 면 요리나 치킨 같은 음식들은 한화 만원 이하로도 먹을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식당은 다양한 옵션이 메뉴판 몇 장을 가득 채워 취향 100%로 창조할 수 있었던 신선한 샐러드 전문점과 두리안 러버로서 입에서 살살 녹는 두리안 밥을 만날 수 있었던 두리안 전문점이었다.
고산지대에 위치한 치앙마이는 커피 생산지로도 유명하며, 질 좋은 커피 원두를 기반으로 실험적인 메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중 ‘Graph’라는 카페에서는 마치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메뉴판에 생산자, 지역, 고도, 생산 방식 등 다양한 정보가 나열된 여러 종류의 커피 메뉴가 있어서 한 장 씩 넘기며 흥미롭게 읽어보았다. 레시피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에스프레소에 토마토, 소금, 미역 등을 섞은 것’이었는데 커피도 칵테일처럼 독특한 재료들을 사용해 만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비록 시그니처가 궁금했기에 실제 맛본 것은 ‘Best’ 표시가 된 장미수를 섞은 커피였지만, 범상치 않은 음식들은 언제나 나의 호기심과 아이디어와 침샘을 자극한다. 세계 3대 요리인 태국 요리는 결코 신선한 재료와 맛으로만 승부한 것이 아님을, 이러한 창의성과 다양성이 그 명성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Lim lao ngaw, Blue noodle, SP chicken, Salad concept, Homm wan, Graph cafe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