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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아 기자 Jul 30. 2020

[배우론] 박영수, 애처로운 얼굴

<미아 파밀리아>,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배우 박영수



뮤지컬 <미아 파밀리아>


박영수는 유쾌한 사람이다. 적어도 지금 공연 중인 <미아 파밀리아> 무대에서는 그렇다. 하나의 무대 위에 세 개의 공간이 등장하는 극중극 형태, 그리고 배우들이 선 공간 바깥의 관객들까지 상정하면 네 개의 선이 존재하는 곳. <미아 파밀리아>의 아폴로니아에 돈가방 하나 덜렁 들고 등장한 불청객은 곧 돈 때문에 환영받는 쓸쓸한 존재다. 그러나 리처드와 오스카 사이에서 '미아 파밀리아' 대본집을 함께 읽기 시작한 뒤, 스티비는 기분이 좋으면 오랫동안 발을 구르며 애교를 부릴 정도로 그들과 친근해지면서 서서히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간다. 그동안 박영수의 스티비는 바지가 찢어지는 일이 놀랍지 않을 정도로 열렬히 몸을 움직이면서 외로운 자신을 그저 무서운 마피아라고만 생각하는 두 사람에게 끊임없이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로 말을 건다. 나랑 친해지자, 나는 사실 외로워. 내 친구가 되어줘.


작은 무대 위에서 큰 키와 팔다리를 자유자재로 폈다가 접었다가, 박영수는 몸을 거침없이 내던지면서 외로운 스티비의 마음을 경쾌하고 명랑하게 드러낸다. 종종바보같고 미련해보이는 이 캐릭터는 박영수를 만나서 마피아의 자존심과 외로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년의 외피와 내피를 모두 얻는다.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그가 분한 고종 또한 마찬가지다. 소심하고 유약한 고종의 이미지에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왕의 얼굴과 휘청거리는 몸은 웃고 있지만 사실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외롭고 고독한 사람의 것이다. 고종의 히스테릭함은 박영수를 통해 책 속에만 존재하던 사람의 실사화에서 그치지 않고, 마치 우리 곁에 지금도 존재하는 수많은 나약함을 대변하는 것처럼 생생해진다. 그와 만나는 민자영 역의 차지연, 박혜나가 고종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쉽게 버리고 내팽개칠 수 없는 한 끗의 애처로움, 그 얼굴 안에 배우 박영수가 있다.


뮤지컬 <마리 퀴리>


곧 <마리 퀴리>에서 다시 피에르 퀴리로 만나게 될 그의 모습은 아마도 그 한 끗에 비치는 애처로움을 여전히 담고 있을 것이다. 여성이자 이방인인 마리의 성취를 훔친 것 같은 죄책감으로,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마리를 더욱 열렬히 지지하는 동반자로서의 책임감을 안고 사는 남자. 피에르 퀴리의 부드러움을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로서 그는 옥주현과 김소향이라는 캐릭터 강한 두 배우의 옆에 선다. 아마도 민자영이 그러했듯, 마리도 그의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할 것이다.


시놉시스와 극본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박영수라는 배우가 만들어내는 고유함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하는 또다른 순간을 기대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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