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을 찾아서 (3) - 가다듬기

by D for M



KakaoTalk_20260207_141613994_15.jpg 'Le zele'은 프랑스어로 '열정'이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학교의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왔다. 몇 주 만에 다시 간 곳에는 목재로 된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고 거기에 A2정도 되는 크기의 종이들에 드로잉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강력한 훈풍이 공간을 가득 채워서 추위에 얼어 더욱 긴장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나보다 먼저 와있는 분이 있었고 이내 대화를 나누었다. 잠깐이었지만 순둥한 성정이 느껴져 앞으로 이곳에서 함께할 착한 동료를 보내주신 신께 감사함을 느꼈다. 나를 포함해 신입생은 두 명이었다. 오리엔테이션용 유인물에는 서양철학사, 미술사, 릴케, 히치콕 등 입학 전에 읽어야 할 것, 봐야 할 것들이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있었다. 흥미로운 마음이 그 글씨들을 읽을 때마다 뭉게뭉게 커졌다. 그 순간 전 직장에서 쓸데없다 여겨졌던 자료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에 시간을 쓸 시간에 이 책들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헛헛한 상상이 스쳤다.


개강을 하면 내가 적은 나이가 아니니 제일 맏언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7살에 처음 그림을 시작한 고흐, 44살에 모델일을 시작한 어떤 시니어 모델, 50대에 일본 유학을 다녀와 작가의 길을 걷는 사회학자... 나이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몰입의 시간을 보낸 선례들이 있기에 그 에너지를 나도 뿜어내기를 기대하며 도전 지점에 서있다. 게다가 이렇게 도전하는 모습을 엄마가 몹시도 좋아하신다. 지난 9년간 학예사로서 고생했던 시간들을 거의 알고 있는 엄마는 이제 박물관, 미술관 가지 말고 너의 작품을 멋지게 해 보라고 해주셨다.


항암 투병 중인 엄마의 식단에 맞추어 최대한 매끼 건강식으로 준비하고 있다.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단백질, 채소 위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준비해드리고 있기 때문에 겸사겸사 식단 조절을 하기에 용이하여 나의 체중 감량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식비는 줄고 자존감은 높아지는 가치 있는 일... 체중 감량을 위해 하루에 1시간 이상, 만 보이상 걷기를 매일 하고 있다. 예전 코로나 때 직장 다니면서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여 8kg 정도 감량했던 경험이 있다. 이번엔 15kg 이상 빼고 싶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에서 아카자가 본인에게 날린 그 펀치들을 내 몸에 두들기고 싶은 심정을 참으며 (실제로 몇 번 못 참음) 매일 꾸준히 감량도 열심히 하고 있다. 쿠팡으로 산 러닝 마스크가 효과가 좋아서 피부 냉기도 걱정 없다. 언젠가 한 번 동상 아래 단계인 동창에 걸린 적이 있어서 찬바람 속 운동이 살짝 겁났었는데 어떤 천재분께서 만드셨을 러닝 마스크로 두려울 게 없어졌다.


계속 계속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무아지경이 된다. 다리가 알아서 걷고 생각은 편안히 흘러가는 순간이 온다. 어느 순간, 문득 '어쩌면 나는 회사 체질이 아닌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장 생활하면서 큰 문제도 없었고 성과를 낼 때마다 보람도 느꼈지만, 이상하게도 공허한 마음이 늘 쫓아다녔다. 같이 걷던 동생에게 말했더니 "그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라고 해서 어찌나 웃었는지.


엄마의 항암이 어느새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손으로 만져보아도 종양이 작아진 것이 느껴진다. 다만, 잘 빠지지 않는 듯했던 머리는 어느새 숭덩숭덩 빠졌고 그럴 때마다 "올 것이 왔다, 엄마"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마음이 따끔거렸다. 머리숱 많은 게 자랑 중 하나였던 엄마의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걸 보면 엄마가 보기 전에 청소기로 전부 없애버렸다. 이윽고 엄마에게 가발 맞추자는 시점이 왔고, 이왕 맞추는 거 금발도 하나 맞추고 빨간 머리도 맞추고 장발도 맞추고 여러 개 맞춰서 기분 따라 쓰자고 농담도 던졌다. 홍대 근처 리뷰가 좋은 가발 가게를 예약 후 방문하여 무료 쉐이빙 서비스를 받았다. 다른 미용실과 달리 거울이 없었다. 섬세한 배려였다. 뒤에서 엄마 머리가 살색으로 변하는 걸 보면서 절대 울지 않기로 했는데 눈물이 속수무책으로 나왔다. 진짜 이게 무슨 일인 것인가, 나쁜 사람들은 다 멀쩡한데 왜 우리 엄마가 항암을 해야 하는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최소 10년은 다니겠다고 다짐했던 회사가 분해가 되고 손쓸 수 없는, 불가항력 속에서 어이없이 직장을 잃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엄마의 투병을 밀착 간호할 수 있게 된 아이러니함, 그리고 내내 미뤄두었던 꿈같은 그 학교에 다니게 된 것, 그리고 열심히 운동하면서 점점 체력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느끼는 것... 어느 한쪽 내려가지 않는 시소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엄마는 우는 날의 빈도 수가 높아지고 있다. 거울 속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고, 앞으로 여생을 항암을 하며 보낼 것 같아서 두렵다고도 했다. 그저 웃겨주고 위로해 주는 단계를 넘은 느낌이어서 전문가와의 심리상담을 추천했다. 어떤 분이 항암 기간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이 미술치료 상담이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전문가 분의 상담과 위로를 통해서 항암뿐 아니라 그간 엄마가 받았던 상처들이 잊히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연구소라고 명명하고 틈틈이 들락거리는 공유오피스에 앉아서 난방기 돌아가는 소리, 복도에 사람 다니는 소리, 창 밖 새소리 같은 생활 소음들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2인실이라 월 50만 원인데 결코 적은 돈은 아니고 완벽하게 꾸며놓은 것도 아직 아니지만 이런 공간이 있다는 자체가 큰 위안이 된다. 가끔 요즘 엄마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하는데 집에서 어떻게 엄마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고민 중이다. 가구 배치, 화구, 의자와 이젤 등 갖춰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먼저 떠올려본다.


지금 이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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