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3주 이야기, 근데 드로잉을 곁들인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안국역, 경복궁역 일대를 좋아했던 것은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지금도 참 좋아하는 곳이지만 격동의 시기를 그곳에서 보내고 나니 근처를 지날 때면 마음 한편이 묵직해진다. 사무실 근처 동글동글 투박하게 다듬어진 돌, 그 위 기와들이 놓여있는 돌담길이 곧게 뻗어있던 풍경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고 있다. 퇴사 후 3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해가 바뀌어서 그런 걸까?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주변 갤러리, 박물관, 미술관들에 들어가 작품을 보고, 공간을 구경하곤 했던 시간들도 벌써 뭉뚱그려진다. 아니면 3주라는 기간 동안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나 벌써 장기 기억 대열로 밀려나서 멀어진듯한 느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2025년 연말, 2026년에 도전해 볼 일들 중 인생에 큰 변화를 이끌어내 주기를 기대하며 계획했던 일이 있다. 그림과 관련된 교육기관에서 전문가와 함께 나만의 조형 언어를 발굴해 내는 일이다. 1월 초, 지원을 하고 인상 깊은 면접을 봤다. 그리고 저번 주, 함께 해보자는 메일을 받았다. 그럼에도 3일, 4일 정도 더 고민한 끝에 등록금을 보냈다. 몇 년 전, 취업준비생이었던 기간에 일종의 심신 수련 방법으로 드로잉을 택했었다. 그즈음 전직을 꿈꾸며 그림과 관련된 일들을 살펴보았는데 포트폴리오 제출 필수 조건 공고가 많았다. 그 당시엔 제출할만한 드로잉이 없었다. 모두 아주 오래전에, 손 가는 대로 그린 그림들 뿐이었다. 포트폴리오용 그림, 프로크리에이트 적응과 훈련, 스톡이미지 만들기 등 여러 작은 목표들을 세운 뒤 거의 매일 평균 5시간 정도 그림을 그렸다. 그때 그렸던 드로잉들을 이번 지원에 함께 보내야 했던 포트폴리오에 활용했다. 드로잉을 그렸을 때 심정들이 떠올라서 여러 드로잉들을 넘겨보며 기분이 묘해졌다. 이렇게 활용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지원한 기관은 아주 예전부터 지켜봐 온 곳으로, 역사도 오래되고 커리큘럼도 독보적이라 줄곧 눈여겨보던 곳이었다. 잊을만하면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웃거리고 네이버나 구글에서 수강생, 졸업생들에 대해 검색해보곤 했다. 신중한 성격 탓에 시작을 앞두고 결정을 잘 못하는 편인데, 지금이 아니면 이곳의 커리큘럼을 경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공유오피스를 구하고, 새로운 학교에 몸을 던져보는 이 일을 메인으로 어쩌면 브런치 글 제목을 '몰입을 찾아서'라고 정했는지 모른다. 면접을 볼 때, 면접자께서 못과 망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못을 내려치려면 바가지가 아니라 망치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내가 이해하기론 적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잘하는 것을 찾아 하면 망치가 못을 박는 일처럼 간단하다. 못을 박고 싶은데 숟가락이나 도자기 그릇으로 내치는 사람은 없다. 이 말씀에 이전보다 더 이 학교에 기대가 되었다.
편의상 거리가 조금 멀지만 먼저 갔던 병원은 C, 비교적 가까운 병원이고 현재 치료 중인 병원을 S라고 하겠다. 엄마는 두 병원 중에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했다. 주변 분들의 강력한 추천들에 흔들렸다. 나는 무조건 빨리 검사가 되는 곳으로 먼저 가고, 그다음에 치료받을 병원을 결정하자고 했다. 엄마는 12월부터 1월 초까지 CT, MRI, PET-CT, 초음파, 혈액 검사, 뼈 스캔 등 15가지 정도 검사를 대부분 C 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했다. S 병원보다 각종 검사 예약일들이 빨리 잡혀 엄마를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C 병원의 교수님, 간호사 분들 모두 친절하셨고 꼼꼼하게 검사해 주셨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점을 고려했을 때 집에서 운전하여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인 C 병원은 오래 다니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때마침 S 병원에서 항암치료일을 빠르게 예약해 주면서 속행되었다. 거리도 운전해서 20~30분인 곳이기도 하고 암 병원으로 명성이 있는 곳이므로 항암치료는 S 병원으로 결정했다. 병원 치료에서 거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체감했다.
엄마는 항암 주사와 관련하여 쇄골 쪽에 케모포트 삽입술을 받았다. 마취할 때 너무 아파서 운 탓에 눈과 코가 빨개진 채 간호사 손을 잡고 나오는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케모포트를 통해 항암 약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혈관 통증, 주사 부위 상처를 통해 생길 수 있는 염증 등 각종 문제들을 방지한다고 한다. 이런 기술들이 있을 때 치료받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항암치료받을 일이 없어 끝까지 모르고 살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싶었다. 이후 동생과 나는 암환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에 가입하고 엄마의 병명으로 검색하여 각종 정보들을 수집했다. 항암치료 전에 스케일링을 하라는 의견들을 비롯하여 암 환자의 보호자로서 가족으로서 무엇을 준비하고 염두하면 좋을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글들 속에서 위로와 따뜻함을 느꼈다. 항암치료가 시작되면 뷔페도 가선 안 돼서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맛있는 뷔페 레스토랑으로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갔다. 항암치료 후기들을 읽으며 레몬 사탕, 담요, 식염수 등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고 새로운 베개, 새로운 이불 등 엄마가 바꾸고 싶은 침구류도 모두 바꿨다. 차 뒷좌석 평탄화 매트도 구매하여 항암치료 후 귀가할 때 뒷좌석에서 누워올 수 있도록 준비했다. 특히 엄마가 웃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새로 생긴 카페, 언젠가 같이 가야지 했던 예쁜 동네 카페도 가보고 새벽 1시까지 고스톱을 3시간이나 치기도 했다. 어찌나 많이 웃었는지 거의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고스톱 얘기를 하신다.
이제 엄마 치료 일정도 항암치료가 시작되면서 규칙성을 띠고 학교 지원도 일단락되면서 정리가 되었다. 힘내보자는 의미에서 우리은행 계좌로 새로운 청약도 시작했다. 작년 12월에 납입일자가 엉망진창인 청약을 해지하고 조금 후회했었다가 잊고 있었는데 불현듯 기분 전환을 위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중에 떠올랐다. 추가로 여기에 쓸 수 없는 개인적인 일도 새로운 국면을 기다리고 있다. 이 부분이 잘 해결되기를 또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저번주에 이 일과 관련해서도 인생을 건 고민을 했었고 직장에서 알고 지낸 자칭 이 분야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미리캔버스 디자인허브에 요소도 2개 올렸고 심사가 통과됐다. 아직 수익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지만 하나하나씩 하다 보면 고점에 도달하겠지 싶다.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10만 원 선을 돌파했으니 말이다. 실용적인 취미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주 내로 연구소 출퇴근 계획을 더 상세하게 세우고 채용 공고들과 학교 수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