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을 찾아서 - (1) Prologue

격동의 시간을 뒤로하고 공유오피스에서 보낼 시간들을 계획했던 이유

by D for M


2025년 폭염이 지속되던 여름, 사가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봄부터 예상하던 바였지만 실제로 이사를 가기 위해 이사 박스를 옮기고 테이프 소리를 크게 내며 뜯어 붙이고, 이사와 관련된 팀원들의 일을 처리하다 보니 마음의 준비를 했던 시간이 무색해졌다. 루에 열두 번도 "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을 버릇처럼 했다. 당시 사무실 구조, 색깔, 줄곧 같은 자리에 있던 물건들... 후일담처럼 이렇게 적다 보니 미화되는 것일까? 생각보다 정이 들었던 공간으로 착각을 하게 되는 건지 무엇인지, 아련한 감정이 든다.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를 한,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혼란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팀 구분 없이 층별로 모여 한 테이블을 네 명이 공유했다. 나의 자리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출근 후 원하는 자리에 앉는 규칙도 생겼다. 사람들끼리 그전 회사의 입지보다 나아졌다며 전보다 출근하기도 좋고 주변 맛집도 많아졌다고 웃기도 했다. 사람들끼리 돈독해졌다. 얼렁뚱땅 여름이 지나고 은행나무가 노란 옷을 입어가는 가을의 초입, 이직자와 퇴사자들이 여럿 생겨났다.


금발 여신 같은 은행나무


이즈음엔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실감이 계속 나지 않다가 입관할 때 죄송함과 황망함이 폭발했다. 천주교인들만 묻히는 묘역의 한쪽에 조성된 가족묘에 유골함이 되어 안장되는 마지막 순간이 떠오른다. 지금도 외갓집에 가면 침대에 외할머니가 누워서 간식을 드시고 있으실 것 같으면서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흉부를 묵직하게 짓누르는 느낌도 든다. 사람의 생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회사와 관련된 것들이 전부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복귀를 하고 나니 위태로운 직장의 2026년에 대해서 희망적인 태도를 취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극단적으로는 2025년이 가기 전에 회사가 소멸할 것 같았다. 긍정적인 편인데 꽤 비관적으로 생각했다. 가끔 내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사무실에서 뭐 해?'라고 물었다. 그 질문들에 거의 대답을 명확하게 하지 못했다. 가까이 보면 하루하루를 유익하게 보내려고 노력한 모습들이 이어졌겠지만, 크게 보면 직장이 흔들리니 개개인이 제대로 성과다운 성과를 내지는 못하는 시간들이 이어진 모습이기도 했다.


그 시간 속에서 '이곳을 나가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거의 매일 했다. 조금 더 근사하게 표현하면, '이 나이에, 이 젊은 날에 내가 몰입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그토록 찾으라고 했던 '몰입'의 순간을 선사해 줄 일이 나에겐 무엇일까?'라는 내용을 계속 고민했다. 삶의 질을 연구하는 미하이가 일컫는 몰입의 순간은 일명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민 끝에, 나는 각종 문화예술 콘텐츠를 직접 경험하고, 나누고,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 그리고 나만이 생산해 낼 수 있는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활동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2025년 12월 초, 엄마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니, 삼촌한테 들었어? 엄마 암이라고..."라고 동생이 말한 순간, 오감을 비롯한 정보를 처리하는 신체의 시스템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중력이 몇 배로 작용하여 나를 아래로 잡아 끌어내렸다고 해야 할까..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야말로 충격을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정확히 어떤 암인지, 언제 어디서 진단받은 것인지.. 세세하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 엄마는 11월 말에 진단받아놓고 며칠이 지나도록 말하지 않셨다. 우리도 엄마가 말하기 전까진 가만히 있었다. 기분전환을 하고 싶어 리움미술관으로 향했다. 새로운 것을 마주하기 좋아하는 엄마의 기분을 한껏 살려주기 위함이었다. 현대미술 소장품 전과 작가 이불의 전시가 하고 있었다.


이우환 <선으로부터> 리움미술관


관람 후 식사도 분위기 좋은 곳에서 먹었다. 근사한 시간을 보낸 뒤, 엄마는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그 뒤로 조금씩 우셨다. 나는 딸로서 엄마의 심신을 굳건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 큰 병원에 가서 정밀하게 검사해 보자. 검사하기 전이라 불명확하기 때문에 가장 두려울 수 있는데, 섣부르게 생각하지 말자"라는 식으로 다독였던 것 같다. 그리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2월 중순, 복잡다단한 일들이 지나 결과적으로 회사는 청산을 앞두게 되었다. 설립 목적과 기능을 상실했고 회복될 가능성은 없게 되었다. 그렇게 직자의 대다수가 희망퇴직원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 비관적인 편이었지만 정규직 자리를 이런 식으로 잃어야 한다는 것이 황당했다. 시점에 무직이 되는 것이 싫었기에 계속 마음 한편에는 그래도 끝까지 남아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더랬다. 그러나 엄마의 암 진단 이후 생각이 아예 바뀌어 엄마의 치료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이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권고사직이나 다름없는 황 속에서 희망하지도 않는 희망퇴직원을 작성하는 순간엔 어쩔 수 없이 강력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이 선택 이후에 내가 어떤 시간들로 채우느냐에 따라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에 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 다독이다가도 큰 한숨이 튀어나왔다. 떤 한 가지 감정과 의견이 주를 이뤘다고 할 수 없었고 이는 모두가 그랬다. 어느 순간, 고민하는 자체가 바보처럼 느껴져 빠른 결단을 내고 싶어졌다. 계획보다 3일 전에 희망퇴직원을 제출했다. 늘 잘 살펴주셨던 상사분과 친하게 지냈던 몇 분들에게 상황을 공유했다.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는 감사한 모습에 나는 이 직장에 이 분들을 만나기 위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더 같이 근무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책임을 느꼈으면 하는 대상들에게 야속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엄마는 많은 검사들을 약 3주 동안 해냈다. 다행히도 계속 동행할 수 있었다. "어머님 치료하는 거 잘 도우라고 일이 이렇게 된 것 같으니 무직이라고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어머님 잘 보필해 드려요"라고 했던 상사분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마지막 근무일이 왔고 미련 없이 나왔다. 그러면서 한 가지 계획을 세웠던 것, 바로 집 근처에 공유오피스를 구해 동생과 나의 서재처럼 만드는 것을 실행했다. 엄마의 치료에 전념하면서도 서로의 생활이 무너지지 않는 장치로서 조그마한 공유오피스를 구했다. 엄마는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할 때가 있고, 동생과 나 역시 집중하여 다음 스텝을 준비할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맞아떨어졌다.


공유오피스 벽면에 붙인 내셔널지오그래픽 세계지도


그렇게 12월 30일부터 나만의 공간으로 매일은 아니더라도 틈틈이 출퇴근을 하고 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감각을 잃지 않고 싶고, 나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스트레스를 해소할만한 장치를 두기 위해서다. 일단 마음 편히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고 새로운 공간이 생기자 엄마도 흥미로워하셨다. 공유오피스에서 퇴사 이후 진행할 개인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을 글과 사진, 드로잉과 함께 정리하면서 기록해나가고 은 생각도 덩달아 들었다.


언젠가 어떤 출판 관련 책에서 공개적인 곳에 글을 쓰거나 출판하는 것, 혼자 보는 일기장이 아닌 사람들이 읽는 글을 쓸 때,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할애하여 그 글을 왜 읽어야 하는지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이 문장이 가진 맥락은 학예 인력으로서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운영해야 할 때 관람객들이 굳이 편안한 집밖으로 나와 이 전시를 왜 봐야 하는지, 관람객들이 좋은 책을 읽어도 되고 교훈적인 영화를 봐도 되는데 왜 이 교육에 참여하러 와야 하는지, 관성에 이끌려 사업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문구였다. 지금도 저 문구를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이곳에 정리된 기록을 쌓아가는 가장 주된 이유는 멀쩡히 문제없이 다닐 수 있었던 직장이 국가 정책이나 사회적 상황 등으로 인해 설립, 운영 취지가 무효화되고 해체에 가까운 난관에 봉착하였음에도 구성원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정확히는 하지 못했던 그 갑갑하고도 특이한 경험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작성하여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은 이유이다. 궁극적으로는, 엄청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 나의 지금을 생생히 기록하는 행위에서 감정과 정보를 정돈시켜 결국 훗날의 푸른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가장 큰 목표이 첫 번째 목표는 엄마의 완치이다. 그리고 다음 목표로 내가 진정으로 몰입할 수 있는 것을 더 늦기 전에 찾는 것이다. 글쓰기와 드로잉을 통해 기록하며 내게 주어진 시간들에 감사하고, 스스로 피드백을 주면서 꾸준히 다독여주고 싶다. 훗날 백발 할머니가 되어 인생을 돌아봤을 때, '그때 참 어려운 일을 겪었으나 그래도 젊은 날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잘 버텼다'라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한 번뿐인 이 삶에 이 시간들이 양분이 가득한 시간으로 채워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격동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이곳 공유오피스를 우선은 '연구소'라고 명명하며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3평~4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타이밍 좋게 차지하게 된 감사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읽고, 그리고, 기록하는 몰입의 순간들을 성실하게 채워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