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파헤치기
37세 내 남편.
그는 3교대 근무를 하는 회사원으로 근무 일정이 6일 근무 2일 휴무로 계속 돌아간다.
그러니 야간근무를 하는 주만 빼면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
술을 매일 마시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늘 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항상 자기 주량을 넘어서는게 문제이며
혼자서 늦은 밤까지 술상을 벌려놓고 마시다가 그 자리에서 앉은 채로 잠이 든다거나
술상을 치우지도 않고 그대로 누워서 잠드는게 문제다.
남편이 술을 좋아한다는 것은 연애 때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것은 결혼한 후였다.
미리 알았다면 절대 결혼까지 안 했을 것 같은데 내 불찰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남편의 필름이 자주 끊긴다는 것이었다.
혀도 안 꼬였고 비틀거리지도 않았는데 다음날 얘기를 하다 보면 술 마시면서 했던 얘기들을 전부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주량을 넘어서도 좀처럼 술 마시기를 멈추지 못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른다거나 하지는 않는데 그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 걸까.
내 아이들은 아빠가 매일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고 있다.
이것도 남편이 술을 마시는게 싫은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부모의 음주 습관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가끔은 남편이 마시는 술의 양을 줄여보고자 나도 함께 마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남편은 집 앞 슈퍼에 가서 모자란 만큼의 술을 더 사 온다. 아니, 아예 처음부터 내가 먹어치울 몫의 술을 더 사다 놓는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 술을 마셔 없애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볼 때는 부모가 함께 매일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게 되는 꼴인데 그것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며 남편에게 알코올중독 자가진단 테스트 링크를 보냈다.
남편에게 객관적으로 솔직하게 답하라고 카톡을 보내 놓았는데 과연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술을 좋아할 수 있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좋아서라는 사람도 있고 술의 맛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우려할 정도의 음주는 더 이상 즐기는 것이 아니다.
엊그제 남편에게 술 마시다 잠들 만큼 마시지 마라, 매일 마시지 마라라고 강하게 얘기를 했는데
알겠다고 자제하겠다고 한지 이틀 만에 다시 술을 마시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 정말 알코올 중독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하다.
결혼 초기에 했던 우리 아빠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딸 앞으로 00이 술 마시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좀 받겠는데...."
미리 예견하신 듯하다.
남편의 알코올중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