찡그린 얼굴이 아니라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특별공로자에 대하여 초등학교 5학년 심성 고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삶을 선택할 기회가 있어야 하고 마땅히 결과에 대해 책임질 준비도 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어린이 동화 '책과 노니는 집'을 읽고 토론하던 중이었다. 천주교 박해로 죽임을 당한 조선 후기 평민들과 순교자들에 대하여 역사적 맥락을 토론하다가 특별 공로자로 오게 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종교적 이야기로 화제가 옮아갔다.
"여자들이랑 아이들을 죽인다던데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왔던데.. 신분제도 때문인가요, 종교 때문인가요?"
여성과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아이들에게는 납득되지 않는 어리둥절한 사건이다. 아이들 생각에 종교란 어떤 좋은 믿음을 주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왜 종교가 차별을 하는지 , 일제 강점기처럼 나라를 빼앗긴 것도 아닌데 자기 나라에서 왜 쫓겨나듯 혹은 도망치듯 다른 나라로 떠나와야 하는 지도 이해불가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의 입국을 두고 왜 찬성한다 혹은 반대한다는 등의 말이 나오는지...... 모든 게 어리둥절이다.
아이들은 뉴스에서 많은 걸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은 연관 단어를 이야기했다.
"난민" "테러" "위험"
특별공로자나 인권이란 단어들보다 부정적 단어를 더 강하게 인지한 것 같다. 우리는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 이곳에 도착한 -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이들의 '마음 헤아려 보기'가 토론의 주요 맥락이었다.
보상적 개념이 담긴 공로자라는 단어에 연연하며 독립유공자를 모욕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인권과 신의의 개념을 이해하면서 토론하기를 바랐다. 태어난 나라를 도망치듯 떠나야 하는 일이 기꺼운 사람이 누가 있을까? 기꺼이 반겨준다해도 내 나라 내 집에서 살고 싶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만주로 중국으로 하와이로 떠돌아야 했던 선조들의 후손으로서 '마음 헤아려 보기'를 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세계 평화라는 기치 아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누군가의 가족과 친구였던, 유엔군들이 희생으로 지켜낸 나라에서 살고 있다. 6.25 전쟁 당시, 여러 나라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해서 왔던 어리고 어렸던 유엔 참전군을 기억한다면 되돌려 누군가에게 갚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여전히 휴전 상태인 우리는 또 언제 누구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른다. 세상 일은 모르는 일이다.
위험과 두려움은 모두 느끼는 바이겠으나 거부만이 상책은 아닐 것이다. 비겁한 일이다. 쉽지 않음도 이해한다. 많은 대비가 필요할 것이지만 뛰어넘을 준비는 해야 한다. 값을줄 알아야 한다.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사회 문화 경제 정치 모든 것이 국가 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만 문을 닫아걸고 지낼 수도 없다. 시대가 그렇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있었던가? 거부하려 했지만 오히려 더 부러지고 망가진 시대사를 만들어버린 하나의 동기가 되지 않았던가?
아이들은 부디 찬성과 반대가 아니라 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어른들은 더더욱 그런 마음이길 바란다. 그들의 두려움이 더 클 것이다. 비틀린 마음을 가진 누군가로 인해 마음을 다치고 힘들 일도 생길 것이다. 부디 못난 대한민국이 되지 않길 바란다. 차가운 대한민국도 되지 않길 바란다.
뉴스에서 아이들이 버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던 얼굴을 보았다.
얼굴이 찡그린 얼굴이 아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