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비보

어디쯤 가고 있니?(장화홍련ost 연주: 필자)

by 무지카

2021. 12. 20일

너는 내 하나밖에 없는 동생


1982년 4월 00일

1983년 12월 00일

너와 나는 연년생으로 oo시의 어느 한 병원에서 태어났지.

날짜는 다르지만 우린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어.

나는 분홍팔찌를, 너는 파란팔찌를 차고...


하지만 우린 커가면서 엄청난 원수가 되었지.

나는 네가 왜 내 동생이 되었는지, 하필이면 왜 내 동생인지, 싸움도 많이 하고 원망도 많이 하고, 때로는 네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

여느 남매들처럼, 우리는 어마무시하게 싸웠지...

근데 그때 그 미움은 정말이어서 나는 매정하고 무정하게 네게 편지를 썼어. 난 너를 앞으로 절대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너 같이 말을 잘 안 듣는 동생은 필요 없다고...


어린아이의 장난이라기에 지금 내가 생각해도 참 모진 말이었어. 네가 내 편지에 엄청 상처받았다는 것을 난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넌 그만큼 여린 아이였는데, 그저 덩치가 나보다 크고 늠름하다는 이유만으로 난 널 매우 강인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우주와 지구와 너와 나


출처: 글그램

사진 정말 멋지지?

너도 알다시피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주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구 밖의 우주. 그 깊이와 너비를 알 수 없는 광활한 우주 속에서 아주 작은 점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지. 근데 그 지구 안에서도 인구는 또 얼마나 많은지 60억이 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해. 죽어간 사람까지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를 거쳐갔을까?


그런데 있지.

그 점 같은 지구 안에 세계지도에서도 구석이 제일 안 보이는 조그마한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그것도 같은 엄마의 배를 빌어 혈연으로 태어난 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내 동생... 하나밖에 없는, 나와 같은 피를 지닌 내 동생...

그래, 그건 절대 우연이 아니야. 이건 필연인 거야. 너와 나는 남매가 되기 위한 필연이었던 거야.


그런데 내 동생아...

너의 죽음이 나에게 특별한 것은 말이야, 이 지구가 너의 죽음을 바라봐서도 아니고, 네 죽음이 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서도 아니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보다 의미가 있었고 그런 너의 죽음이 '이 세상에서 네가 과연 살았던 것인지도 의심할 정도로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는 거야. 참 야속하게도 말이야.


그래... 이 지구는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하지. 우주야 말해 뭐 하겠어. 그리고 그 지구는 오랜 시간 살면서 수많은 생명이 나고 죽는 것을 봐 왔겠지.


지구에게 너의 죽음과 나의 죽음은 정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거야. 그저, 사람이 나서 일생을 다 하고 죽은 거니까 그 수많은 사람 중 하나지.


하지만 내 동생아...

비록 어릴 적 그렇게 많이 싸우고 미워했어도 말이야, 너는 나에게 있어 우주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었어. 너는 나와 유일하게 부모님 다음으로 피가 이어져 있는 내 동생이었어. 그것만으로도 지구의 그 누구보다도 너는 내게 특별했어. 넌 그렇게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의미 있는 내 동생...


너... 그리고 죽음

그런데 내 동생아. 그거 아니?

그날... 네가 죽던 날...

나는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 기분이 좋았던 것도 같아. 네가 죽은 줄도 모르고 등신같이 말이야.


그런데 그 타이밍에 전화가 울리더라. 엄마였어. 전화를 받자마자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속 울어만 대는 엄마의 울음에 나는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어. 대답도 못하는 엄마에게 막 화를 내면서 왜 그래? 왜 그러냐고? 그렇게...


하지만 그 순간 참 이상하지. 인간의 감이라는 게... 나는 오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이 세상을 떠났다고 더듬거리며 말하는 엄마의 말을 끝으로 나는 길거리에서 미친년처럼 엉엉 울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서 있었어.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니. 너의 죽음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걸...


엄마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니고, 아니 아니, 그런 걸로 거짓말할 사람이 어딨겠어.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제발 거짓말이라도, 농담이라도 좋으니까 누가 장난친 거라고 얘기해줬으면 했어.


하지만 겨우 신랑과 함께 부랴부랴 친정에 도착했을 땐, 모든 것이 사실임을 알아버렸지. 정말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넋 나간 표정의 엄마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조용히 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경찰관, 밖에 대기하고 있는 구급차... 그리고 굳게 닫혀있는 너의 방문...

아...

아...

누가 거짓말이라고 좀...

누가 거짓말이라고 제발 말해주세요.


경찰은 너의 마지막 모습을 못 보게 했어. 그리고 한참 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흰 천으로 덮인 네가 천천히 구급차로 들어가더라. 다들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어. 서둘지를... 않더라고...


정말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뭐가 잘못되었을까?

네가 왜 죽어야 했을까?

도대체 왜 네가 꽃다운 나이에 쓸쓸하게 방구석에서 홀로 가야만 했을까?


그것도 엄마하고 누나한테 아무 말 없이 혼자 그 외로움을 다 지고... 왜 그 외로움을 지고 가? 네가 왜?


'엄마 못난 아들이어서 죄송하다'라고, '엄마 사랑한다'라고 유서만 쓰고 가면 우리의 슬픔은 없어지는 거였니? 네가 없으면 우리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질 거란 생각은 안 했던 거야?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 같구나. 네가 태어나고 내 동생이 된 후 잘해준 게 하나도 없는데...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잘해주긴커녕 미워했던 기억밖에 없는데... 네 사진도 목소리도 비디오도 어떻게 이렇게 남은 게 하나도 없는지...


부끄러움에 내가 너에게 못되게 했다고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널 추억할만한 건, 앞으로도 많이 있을 거라고, 많이 생길 거라고,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했던 나의 작은 이기심이 이렇게 내 가슴을 찢어놓을 줄이야.


동생아... 사랑하는 내 동생...

잃고 나서야... 내가 정말 널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마지막 대화도 '누나가 알아보고 다음에 얘기해 줄게'였는데...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그렇게 쉽게 집으로 돌아가진 않았을 거야.


네 장례식장에서... 작은아버지도, 고모들도, 이모부도, 이모들도... 하나같이 네 영정사진 앞에서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더구나. 그 어떤 미동도 없이... 믿기지 않는 놀란 표정으로...



너의 마지막 길...

마지막 네 모습은 평온한 얼굴로 큰 덩치에 늠름하게 누워있어서 죽어있는 사람 같지 않았어. '일어나!'하고 외치면 네가 당장이라도 '어 누나 왔어?' 하면서 일어날 것 같았지. 하지만 넌 미동도 안 하더라. 너의 얼굴을 만질 때마다, 따뜻한 온기가 아닌 차가움이 느껴져서 정말 네가 살아있지 않다는 것만 확인하게 되었어. 특히 어릴 때 내가 네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어 난 흉터가 눈에 보여 더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네가 원하는 대로 네 육신은 화장을 했다. 네 이름이 나오고 화장 중이라는 단어가 뜨니 참을 수 없는 슬픔이 터져 나오더라.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연신 속상하다며 우셨어. 우리 아버지가 일평생 아프셔서 아빠 돌아가실 때까지 그렇게 고생을 하셨는데, 자식까지 가슴에 묻어야 하다니...


우리 엄마 속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니. 그 누가 엄마 속을 알 수 있겠어.

나쁜 자식아. 엄마를 정말 사랑했다면 유서가 아니라 네 삶으로 표현했어야지. 나쁜 놈아...


하지만... 누난 네가 죽어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멀리멀리 날아가거라. 이 세상 아팠던 거, 슬펐던 거, 미련 남았던 거, 전부 남기고 홀로 멀리멀리 날아가서 행복해라. 얼마나 이 세상이 지옥이고 견디기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니.

그러니 지금 내 마음이 아픈 건 좀 견뎌볼게.

훗날 천국에서 너 만났을 때 해줄 많은 얘깃거리 가지고 그렇게 가 볼게. 같이 얘기할 때까지 우리 엄마 꼭 지켜봐 줘.


남아있는 우리... 그리고 너에게 보내는 연주...


이제 곧 네 생일이 다가오는구나. 매년 너의 생일엔 커피와 조각케이크를 선물했었는데 이제 그걸 받을 네가 없구나.

오늘은 네가 죽은 지 꼭 한 달 하고 하루가 지난날이야.

한 달이... 어떻게 이렇게 금방 갔는지...


두 주는 정말이지 너무 멀쩡해서 이상했고, 셋째 주부터는 눈물이 너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 그리고 한 달 하고도 며칠이 조금 지난 지금은... 조금은 웃기도 하다가 문득 눈물이 터져 나와. 그러면 정말 울어버리지. 엉엉거리며 아기처럼 말이야.


정말 보고 싶다 내 동생아.

네 목소리도...

네 얼굴도...

같이 만나서 우스갯소리하며 실실거리던 추억도...

앞으로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장화홍련 ost. 연주: 필자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니?

아님 벌써 천국이란 곳에 도착했을까?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라 네 무게가 감히 상상도 안되지만

거기선 마음이 좀 가벼울까

거기선 웃고 있을까...


너를 위한 곡을 보내본다.

언젠가, 네가 좋아했던 쇼팽 에튀드 op.25 no.11번 겨울바람을 꼭 연습해서 가져올게.


손이 굳어서 빠른 시간 안에 쉽게 가져오진 못하겠지만 꼭 연습해 올게.

네가 살았을 때 들려달라고 했던 곡을... 그때 들려주지 못해 너무 아쉽다. 네가 살았을 때 네가 좋다고 했던 곡들 많이 많이 들려줄 것을...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더니... 지금이 딱 그 짝이구나.

사랑한다.

또 만나러 오마.



2023. 6


금 아프다면... 남은 사람들을 한 번만 돌아봐주세요.

제발...

그런데 자신이 아무리 쓸모없고 하잘 것 없고 이 우주의 찌꺼기 같이 보여도, 그저 살아 숨 쉬는 쓰레기 같이 보여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는 사람이 분명 있습니다.

제발 살아만 있어 주세요.

그래서 눈 감기 전, 내가 죽을 때 슬프게 울 그 사람을 떠 올려주세요. 떠올리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고요? 아뇨, 이 글을 쓰는 제가 울 겁니다.

그러니 제발 아프다고 죽지 마세요. 남은 사람이 너무 아픕니다. 2년이 다 되어가지만 글을 쓰는 지금도 너무 아파 눈물이 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남습니다. 그러니 남은 사람들을 꼭 생각해 주세요... 저도 아프지만 힘내고 있습니다. 이겨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