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 죽겠는데 서류는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해?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

by 무지카

2021. 12. 24


prologue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단 한 가지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죽음'일 것이다. 죽음이란 단어는 사실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 아니 그냥 단어를 생각하는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불쾌함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어떤 죽음을 맞아야 하는가?' 따위의 고민은 안중에도 없이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음을 한 번씩은 겪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때는 반드시 오며, 그 떠나감으로 말미암은 고통은 순전히 남은 자의 것이기에,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기보다 하루라도 대면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첫 화두를 시작하긴 했지만, 사실 이건 나한테 해당하는 얘기다. 나는 조금 더 죽음이란 것을 일찍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난 죽음을 언제나 외면했고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다가온 죽음 뒤엔 속수무책 K.O.



그런 나에게 이 죽음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물론 그 죽음에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내가 죽었다면 이 글을 쓰고 있진 않았겠지...

내가 이제까지 경험했던 죽음이라는 것은 친척들이 돌아가신 것이 전부였다. 친척들이 돌아가신 것은 여러 차례 있었고 그때는 그저 장례식에 들렀다 온 것밖에 없었기에 살아있던 사람이 없어진 것에 대한 묘한 생각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장례식에 다녀와서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정도? 엄청나게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슬퍼지기에 곧 머리를 휘저으며 다른 생각으로 죽음을 외면했다.


가족이 죽는다는 것

그러나 기어코 그때가 찾아왔다. 나에게 찾아올 것 같지 않았던 그때가...

친척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보를 전해주신건 작은아버지셨다. 작은 아버지의 우는 소리도 처음 들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고통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심장이 조이고, 슬픔이 뱃속에서부터 밀려 나왔다.


나는 난생처음 깊은 슬픔이라는 것을 겪어봤다. 그것은 마음이 아니라 창자에서부터 쏟아지는 슬픔이었다. 그동안은 남자 친구와 이별하는 것이 가장 큰 슬픔이었는데, 이 이별은 생살을 모조리 찢어놓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소리를 못 참고 엉엉 울었다. 그때 같이 타고 계셨던 분들에겐 지금까지도 죄송하다.


여하튼 장례를 지내고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았다. 아니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아버지가 아닌 차가워진 아버지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도 가끔 꿈을 꾸면 살아생전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셨던 모습으로 나온다. 아직도 나는 마지막 아버지 모습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만약 봤다면 11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괴로웠을 테니까...


또 다른 가족의 죽음

내가 겪어야 했던 가족의 죽음은 아버지가 끝이 아니었다. 이쯤 되면 어머니가 돌아가셨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빗나간 생각이다.


나는 동생을 잃었다.

동생...

사고사나 병사 같은 건 아니었다. 39세의 젊은 나이에 사고사나 병사로 죽었다면 차라리 덜 아프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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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정정하겠다. 아픔의 강도는 같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버지의 죽음과는 다른 고통이었다. 너무나 예상치 못했고, 너무나 젊었으며, 하물며 어머니까지 살아계신 마당에... 이건 운명이 장난하는 것 같았다.



동생과 나

우리는 사이좋은 남매는 아니었다.

사이가 좋다기보다 오히려 미운 동생이었다.

뭘 해도 그렇게 부모 속을 썩이는 아들이었으니 내가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주 유명한 말이 있잖는가?


모든 남자는 결혼하면 효자가 된다


내가 딱 그 짝이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고... 동생의 부재가 나를 이렇게 크나큰 슬픔으로 몰아넣을 줄은 몰랐다. 나쁜 녀석 나쁜 녀석 나쁜 녀석... 어떻게 끝까지 어머니께 불효를 하고 가!

말은 나쁜 녀석 하고 욕해도 나는 내가 못해주고 미워했던 것만 떠올라 그렇게 서러웠다. 엄마는 속상하다며 많이 우셨다. 그제야 나는 동생을 정말 사랑하는 사이좋은 남매가 되었다. 동생이 죽고 나서야...


그래서 뭘 얘기하고 싶은 건데?

내 가족사와 내 감정은 이만하고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겠다.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슬픔을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이 온전히 주어지기도 전에, 엄마와 나는 동생이 남긴 것들을 전부 처리해야만 했다.

사실 사망 후 6개월 안에만 처리하면 된다고 하지만 사람이 그게 되나? 쓰던 물건, 아끼던 물건, 남아있는 옷들, 차, 담배, 컴퓨터...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어떻게 그것들을 그냥 둘 수가 있겠는가?

참 신기하다. 그렇게 아꼈던 것들도 죽을 땐 하나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게 이럴 때 실감이 난다.

어쨌든 그런 물건들은 볼 때마다 눈물이 나는데 도저히 나중에 처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함께 사셨던 엄마가 같은 방구조를 견디기 힘들어하셔서 전부 방구조도 바꾸었다.

그리고 엄마보다는 그래도 내가 더 괜찮으니까 서류처리들은 내가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나마 자식을 가슴에 묻은 엄마보다는 내가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서류처리들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나도 상속자여서 서류 등의 처리가 수월했는데 동생의 죽음엔 나는 모든 것에서 열외였다. 누나임에도 내 동생의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도 내 이름이 나오지 않았고, 동생은 결혼도 안 했기에 엄마만이 유일한 상속자로 나왔다. 게다가 사망신고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상속자가 해야 수월한 구조였다. 그래도 난 엄마의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 엄마의 신분증 등 필요한 서류들을 뽑고 사망신고부터 하였다. 엄마가 더 슬프지 않길 바라서다.

그런데 이게 기본증명서가 나오기까지 또 일주일에서 열흘이 걸린단다.

모든 것은 기본증명서가 기본인데 이게 시간이 걸리니 또 하염없이 일주일을 기다렸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시청에 가면 바로 처리된다고 한다)

정말이지 삶은 고통이다. 그래서 자꾸 자살자가 생기나보다.
기본증명서엔...

드디어 기본 증명서가 나왔다.

거기엔 내 동생의 이름과 사망이라는, 위쪽에는 폐쇄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든 병원에서 사망하면 좀 일이 편해지는데 집에서 사망하면 처리 과정이 좀 복잡해진다. 위급할 때는 119를 부르지만 사망하고 나서는 경찰서에 전화를 해야 한다.

그럼 경찰과 의사가 사망자의 상태를 보고 자살인지 타살인지 확인하고 조서를 쓴다.

죽은 자세한 경위까지 말해야 하며, 그게 끝나면 사망자의 검시안과 기타 서류들을 주는데 그 서류와 함께 기본 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 (그것도 사망자의 이름으로 된)가 꼭 필요하다. 모든 서류는 그게 기본이다. 그리고 사망자를 인도받기까지는 하루가 꼬박 걸린다.

아직도 경찰이 말한 게 생각난다.

고인께서 많이 힘드셨나 봐요...


그 말을 듣고 로비로 나와 울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은행을 가서(사실 동사무소에서 신청 가능하다) 상속인 금융거래 서비스를 신청하면 모든 금융기관에서 사망자가 사용했던 돈이라든지 남아있는 재산, 빚까지도 알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망신고를 한 이후부터 차량이라든지 사망자의 무엇이든 처리했다면 무조건 상속을 거부할 권리가 없어지게 되어서 빚까지도 상속을 받아야 한다.


자동차 상속 시...

자동차는 어머니가 운전을 잘 못하시기도 하고, 원래는 내가 몰까 했는데 그건 정말 못할 짓이었다. 차 키를 가지고 차만 보면 눈물이 나서 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중고로 팔려고 하니 이것 또한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진짜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이건 특히 상속인인 엄마가 아니라 누나인 내가 받아야 하니 더 복잡했다.

인감증명서, 인감도장, 상속포기각서, 그리고 내 이름으로 된 보험...

근데 난 바로 팔건대 꼭 내 이름이 필요하냐!라고 물으니 그 자리에서 바로 중고차 딜러가 와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중고차 딜러 중 차량등록소까지 오려고 하는 사람이 어딨나?

그냥 내 이름으로 상속하고 바로 파는 게 속 편하다.

이땐 7일 책임보험을 들면 되고, 일할 계산돼서 또 환불이 된다.

단, 동생 사망 시점부터 내가 소유한 날짜까지의 자동차세는 납부하라고 날아온다.



연금이나 보험금 상속 시...

아 여기서 엄마랑 같이 갔다가 터질게 터졌다.

미리 인터넷 뒤지고 가져가라 한 서류대로 가져갔다가도 다시 돌아올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연금보험 측에서 요구한 건 가족관계 증명서랑 배우자 확인서? 그런 걸 떼 오라는 거다.

아니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면 배우자도 다 나오는데 남들은 가져오라고 하지도 않는 걸 가져오라는 건 멍미?

경찰서 가서 뭐라더라 사건 경위서? 그런 것도 요구했다. 사망진단서나 검안서 같은 걸로는 안된단다.

경찰서를 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사람이 죽은 것도 아프고 슬픈데 진짜 이런 건 사람 두 번 죽이는 거 아닙니까?' 서류에 사망이라는 글자만 봐도 슬픈데 가져오라는 서류만 도대체 몇 개인지..

얼마를 돌아다녀야 하는지...

얼마큼 더 사망이란 말을 들어야 하는지...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마웠던 건 감정적이었던 내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게 고마웠다.


왜 그런지는 알겠다

악용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것 때문에 이렇게 복잡해졌단 건 알겠다. 하지만 유족에겐 너무 가혹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어제야 비로소 모든 것이 끝이 났다.


허무하다. 아프고, 화났다.

충분히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해야 할 시기에 이건 너무 사람을 괴롭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법이 그런 것을...




2023. 6. 27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3년, 동생이 죽은 지 1년 반...

이제야 나는 효녀가... 이제야 나는 사이좋은 누나가 되었다.

꿈에서야 사이좋은 가족으로 만난다.


하지만 인간이란 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미련한 동물이라 했던가!

남아계신 어머니께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자꾸 후회할 짓을 하는 것을......

후회할 짓을 하진 말자.

제발 후회할 짓을 하지 말자.

오늘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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