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불안한 마음은 언제나 빗나가질 않았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아들이 사고를 쳤음을 직감했다.
"저는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하백이(가명)가 소리를 지르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어머니. 2시간 동안 6문제 풀었어요. 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선생님은 약간 격앙된, 그러나 곧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가셨다. 당황하시기도 하셨겠고, 아이의 무례한 행동에 화가 나시기도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으려는 게 눈에 띄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하백이가... 아휴... 많이 화나셨죠? 다른 아이랑 싸우기라도 했나요? 혹시 다치게 하기라도 한건 아니죠?"
내가 걱정한 가장 큰 문제는 그거였다. 내 아이보다 다른 아이를 다치게 했을까 봐.
"아뇨, 아무것도요. 그건 아닌데...... "
일단 거기서 안심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냥 와서 문제를 풀었는데, 갑자기 화를 냈어요. 그래서 왜 그러는지 물었을 뿐인데, 저는 하백이의 마음을 알고 싶었을 뿐이었거든요. 갑자기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더니 안경을 부러뜨리더라고요."
하아... 그렇구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눈에 선했다. 하백이의 화가, 그 소리지름이, 분노가 어떻게 일어났을지가...... 그 아이는 분명 분노 조절이 안되었겠지.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마음에 안 든 게 있었을 테고, 그것에 꽂혀서 위아래 눈에 보이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했을 것이다. 급기야 소리를 지르고, 안경까지 부러뜨리고, 수업시간에 피해를 주었겠지.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마치 눈에 본 사람처럼 내 눈앞에 훤히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슬슬 속상함과 함께 화가 돋기 시작했다.
"어머니, 저는 하백이의 마음을 알고 싶었을 뿐인데, 이 학원 20년 하는 동안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어서 너무 당황스러워요. 제가 뭔가를 하거나 했다면 모르겠는데, 저희 쪽에선 아무것도 한 게 없거든요. 그런데 학원도 싫다고 하고, 다니기 싫다고 하고... 어머니께서 하백이에게 잘 말해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려주시면 그 아이를 이해하는데 제가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많이 속상하셨죠? 그런데 학원 측 잘못은 없을 거예요. 아이가 분노조절이 좀 안 되어서, 그것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아이 아빠랑 상의해 보고 어떻게 할지 말씀드릴게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나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참을 밖에 서 있었다.
집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나에게도 감정조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제2형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사실, 병식을 알게 된 것은 2년 전이다. 그전까지는 우울증인 줄만 알고 5여 년 동안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 그렇게 된 이유도 처음에는 분노 때문이었다. 분노가 조절이 안되고, 이러다 아이들 잡겠다 싶어 병원을 찾아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우울증 때문이란 진단을 받았고, 2년 정도 약을 먹으니 분노가 가라앉아 그때부터는 아이들에게 과하게 분노를 내어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날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분노가 일어나서가 아니었다. 이미 그런 단계는 한참 전에 지났다. 문제는 아이의 상태였다. 아이가 어떤 상태였는지 몰랐기 때문에, 무턱대고 준비 없이 들어갔다간 내가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아이의 ADHD 성향이 튀어나오고 씨름한다면 분노가 아니라 우울이 튀어나올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분노가 없어진 자리에는 깊은 우울이 자리 잡아 오랫동안 내 감정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것이 조증과 혼재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문제인데, 약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우울증 약으로 계속 기분을 띄울 수도, 그렇다고 조증약으로 완전히 누르고 있을 수도 없는 그런 애매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밖에서 일단 크게 숨을 쉬고 난 뒤 감정을 일단락 짓고, 집에 들어가지 않은 채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앞으로도 하백이가 사고를 안 친다는 보장이 없었고, 학원에서도 테스트할 때 이미 처음부터 하백이 같은 애를 처음 봐서 학원에 받아주기가 조금 그렇다고 말씀하셨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직 집에 들어가 보진 않았는데요, 하백이를 학원에 더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오늘도 많이 놀라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내 말에 선생님은 어머님께서 더 속상하셨을 거라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나는 그렇게 전화를 끊고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며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집에 들어갔는데 하백이는 문을 꼭 닫고 나와보지 않았다.
자고 있나? 싶어 문 앞을 서성여 보았는데도 찍소리도 나지 않아 그냥 안방으로 들어갔다. 깨어있어도 지금은 굳이 하백이의 신경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풀려서 서로 기회가 되면 얘기하자.
계속 마음이 출렁거려 정신과 선생님께서 주신 아티반을 먹고 마음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이윽고 동생 하진이가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참 지나 보니 형 하백이랑 두런두런 얘기소리가 들리길래 밖으로 나왔다.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기에, 그저 묵묵히 무표정으로 하백이 앞에 섰다.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딱히 기분이 나쁜척할 필요도, 그렇다고 밝은 척할 필요도 없었다.
ADHD의 특징 중 하나는 좁은 판단능력이 있는데 하백이 같은 경우는 상대방이 밝게 웃고 얘기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알려줘야 했다. 사람은 다양한 기분이 있다는 걸... 언제나 웃을 순 없다는 걸...
나는 하백이에게 다가가 조용조용 얘기했다.
"하백아. 이제 너 00 학원에 가지 않아도 돼."
역시나 내 조용조용한 말투를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하백이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화가 나진 않았어. 단순히 기분이 안 좋을 뿐이야. 너는 엄마가 아까 집에 온 걸 알았니?"
"네."
"그런데 왜 문을 열지 않았어?"
"엄마한테 혼날까 봐요."
아무리 ADHD라도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 겁이라는 것도 있고, 두려움이라는 것도 있다.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약간 산만하고, 예민하다는 이유로 쉽게 야단을 치고, 편견을 갖고, 화를 내고, 소리를 친다. 이 아이들은 그저 예민할 뿐인데.... 자극에 민감할 뿐인데...... 예전의 나라면 분명 그랬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나를 도와주는 의사 선생님이 있고 약물이 있고 이 아이의 의사 선생님도 있다.
"그래도 문을 열고 인사는 해야지."
"네."
하백이는 나의 말에 꾸벅 대답을 했다.
"부러진 안경은?"
그 말에 하백이는 부러진 안경에 이상한 흔적을 잔뜩 묻힌 채 가져왔다.
"이거 왜 이래?"
"붙여보려고 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순간접착제가 보였다.
"플라스틱도 아니고, 이게 이러면 붙어? 안경은 부러졌으니 다시 사야지 뭐."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으나 티는 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안경을 가지고 가서 쓰레기 통에 버렸다. 그 모습을 아무 말도 안 하고 빤히 바라만 보고 있던 막내 하진이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대뜸 끼어들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할 말이 있는데요, 오늘 00 학원에서요. 하백이형네 00 선생님이 큰 소리를 질러서 형아가 소리를 막 질렀어요. 그게 저희 반까지 다 들렸어요. "
"뭐?"
그 말에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말문이 턱 막혔다.
어른들은 거짓말을 잘한다.
나는 그런 어른들을 아주 많이 봐왔다.
특히 어렸을 때에 피아노 학원 선생님들과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이중적인 모습들을 많이 봤다. 우리만 있을 때엔 그토록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들이 어머님들만 오면 세상 착한 천사들로 변한다.
막내의 마지막 말에 나는 눈물이 나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아직 아이란 이유로, ADHD란 이유로, 이 아이가 당해야 하는, 감당해야만 하는, 덮어써야만 하는 수많은 억울함들....
하백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막내의 말에 물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 되어버렸다. 하백이 말로는 문제가 안 풀려 짜증이 나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있었는데, 선생님이 자꾸 왜 그러냐고 해서 짜증만 내고 대답을 안 하고 있었단다. 그 와중에 선생님이 화를 냈고, 그 반응에 아이가 폭발한 듯싶었다. 문제는, 그것이 막내가 공부하는 교실까지 다 들렸다는 것이고, 선생님은 나에게 단 한마디도 자신은 화를 내거나 뭘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름으로써 다른 아이들 공부를 방해하고, 시간을 빼앗은 것은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자신의 잘못까지도 모든 것을 아이에게 전가시켜 버렸다. 단지 아이의 미숙함을 믿고......
내 사랑하는 둘째 하백아.
미안해.
엄마라도 너를 믿어줬어야 했는데......
내가 학원 선생님이 전화 왔을 때 무엇부터 생각했지? 첫 말이 뭐였지? 누구를 다치게 했나요? 그리고 어떤 생각을 했지? 분노가 일어난 일련의 과정들이 눈에 선했다고?
난 내 자식의 뭘 본거지?
남이 보는 내 아이도 이럴진대, 나마저도 내 아이를 그렇게 하찮게 얘기해 버리다니...... 적어도 엄마라면 그렇게 하진 말았어야지.
눈물이 날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어 힘들었다.
"하백아... 학원 가지 말자.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자. 네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면 돼. 그리고 안경 맞추러 가자. 예쁜 걸로 맞추자."
그렇게 나는 하백이를 데리고 안경점을 갔다. 그리고 하백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가장 예쁜, 가장 멋있는 안경을 새로 맞춰주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괴롭고 힘들다.
나 자신도 평범한 엄마가 아니기에, 아이들이 벅찰 때가 많다. 내가 감정적으로 잘 받쳐주는 엄마였다면 우리 하백이가 이렇게 힘들진 않을 텐데 하고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뿐인가?
나는 나 자신조차 감당이 어려울 때가 많다.
때로는 전선을 목에 칭칭 감고 잠든 적도 많다.
그만큼 나는 나 자신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잘 육아해 보겠다고 하루에도 수십 알씩 약을 먹는다. 그럼에도 수십 번씩 무너지는 나를 보며 좌절한다. 나를 어떻게 일으켜 세워야 할까?
상처로 빚어진 하루였을 하백이의 날은 엄마로서 어떻게 위로를 해주어야 할까...
적어도, 엄마아빠에게 사랑 많이 받은 그런 아이들로 자라주었으면 하는 내 바람은 정말 이뤄질 수 있을까? 그러기엔 나에게 너무 에너지가 부족하다.
하백아...
그럼에도 나중에... 네가 지금의 추억을 돌이켜보았을 때...
네가 조금이라도, 우리 엄마는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하셨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그 누구의 비판에도 상처받지 않고 최선을 다해 너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길... 그렇게만 살아준다면 엄만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