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아픈데 너까지 아프면 어떡해
맞아. 예전에 그랬었지.
어느 날 하백이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가 왔다. 문자는 종종 왔어도 전화가 온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다.
발신자가 학교라는 것을 보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실, 하백이는 다른 ADHD 아이들에 비해 학교에서 연락이 오는 게 잦은 편은 아니다. 주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육체적인 활동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역시나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이었다. 하백이가 누군가를 건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삭제하려 해도,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백이 어머니시죠?"
이번 담임선생님은 재작년에 하진이 담임 선생님이셨었다. 하진이는 하백이와는 달리 성격은 좋고 온순하지만, 상당히 손이 느리고 뭐든지 느긋하여 좀 답답한 면이 있는 아이였다. 이미 겪었었던 바, 내 인상에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네. 혹시 하백이가 싸움이라도 했나요?"
"...... 네. 그냥 별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것 말고도 할 말이 있어서요."
아, 역시.
나는 서서 전화를 받다가 침대에 털썩 앉아버렸다.
홀로 지내고, 혼자 있기 좋아하는 하백이가 그날따라 웬일로 친구랑 놀고 싶었던 것 같다. 툭툭 건드렸는데 (ADHD 아이들은 힘조절과 반경 조절이 안된다. ) 친구는 그게 싫었고, 기어코 싸움이 일어나 주먹다짐을 했다는 것이다. 서로 많이 안 다쳐서 그냥 훈계정도로만 끝냈다는 게 엊그제 일이었고, 오늘은 모둠 활동이 싫어 혼자 하겠다고 우겨서 그럼 홀로 하고 싶은 사람끼리 앉아서 활동을 하라고 했단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꼼짝을 안 하고 앉아 자기 자리에서 활동을 하겠다고 우겨대기에 거기에서 활동을 하라고 했는데, 짜증만 내고 2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것이다.
"눈을 세모꼴로 하고 2시간 동안 앉아만 있었어요. 저는 아이가 아파서 배려를 최대한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조그마한 종이를 보냈어요. 그 안에 오늘 못한 거 마저 해 올 수 있도록 어머니께서 도와주세요."
이 말을 듣고 2가지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런데, 나도 아픈데 어떻게 도와주지?
학교에서 부모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게 마땅한데......
나에겐 왜 이렇게 너무 벅차지?
하백이나 하진이 담임선생님께 전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주 연락이 오는 편인 거 같다. 뭐뭐 빠뜨렸다고 뭐 좀 잘 챙겨주시라고......
저학년은 특별히 엄마가 도와줘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받아쓰기부터, 준비물 챙기는 것, 숙제 봐줘야 할 것 등등......
그런데 그때부터 뭐 하나 제대로 챙겨준 게 없다. 애 아빠는 별 보고 나가서 별 보고 들어온다. 그 덕에 막내 하진이는 받아쓰기 0점을 수도 없이 받았다.
이런 내가 뭘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나 자신도 무기력해 버거워 서 있기조차 힘든데?
전화를 끊고 가만히 앉아 옛 생각에 잠겼다.
나 초등학생 때가 생각이 났다.
그래, 그땐 어땠더라.
지금 하백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나 초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 생각났다. 아니지... 국민학교지. 국민학교 1학년은 내 인생에서 '생기의 시기'였다. 혼나도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해내는 그런 시기......
그래 그런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공부 못하는 아이가 얼마나 되려냐만은, 그래도 시험 보면 100점은 꽤 많이 맞았던 걸로 기억한다. 문제는 그날 산수시간이였다. 맞아. 수학이 아니라 산수.
빵꾸뚫기라고 아시려나?
그날 처음으로 복합 덧셈, 뺄셈을 배우는 날이었다. 12+14+5-ㅁ-3=10 에서 ㅁ에 들어갈 숫자는?(한 자릿수인지 두 자릿수인지는 헷갈리니 그냥 대충 넘어가기로 하자)
뭐 그런 문제였는데 그걸 그날 처음으로 배웠다. 그 ㅁ가 바로 빵꾸뚫기 문제다. (우리는 적어도 그걸 그렇게 불렀다.)
지금이야 아주 쉬운 문제지만, 그날 처음 배운 나로는 어려웠다. 그때 당시 우리 동네엔 수학학원조차 귀할 때라......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산수시간이 끝난 후 시험 10문제를 바로 보았는데, 채점을 다 마친 선생님이 갑자기 내 이름을 호명했다.
선생님이 보여준 시험지에는 오늘 배운 문제 2개가 틀려있었다.
선생님은 아주 흥분한 채로 이게 왜 답이 이렇게 되냐며 갑자기 싸대기를 때리기 시작했다. 50명이 넘는 아이들의 놀란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향했다. 나는 그때 당시 아주 왜소한 체격의 깡마른 아이였기에 그대로 책상들을 밀며 넘어졌고, 이런 일로 주목을 받는다는 창피함을 느낄 틈도 없이 선생님은 나의 뒷덜미를 잡고 일으켜 다시 때렸다. 뒤로 넘어지면 멱살을 잡고 일으켜 때렸고, 넘어지면 일으켜 또 때렸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몇 대를 맞았는지, 몇 번을 넘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소리 지르며 화내는 선생님의 분노, 너무 놀라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
그런데, 웃긴 건 그때 나는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착해서? 아니,
아무 생각이 없어서? 아니,
이유는 그 당시에는 어른들 말은 무조건 다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틀린 건 무조건 어린 나였다. 대꾸해서도 안 됐다. 그건 부모를 욕먹이는 짓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
'아... 내가 이 반에서 꼴찌를 해서 선생님이 화가 많이 났구나.'
하지만, 실컷 맞고 볼이 퉁퉁 부은 나는 그 뒤에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시험지를 보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40점, 30점이 수두룩 하던걸?
정년퇴임을 1년 앞둔 그 윤 00 선생님은 날 때린 그 훗 날에도 까불거리는 같은 반 다른 남자아이의 머리를 사랑의 매로 때려서 머리에 피가 철철 흘러 오전 중에 우리 전부를 조퇴시킨 적도 있었다.
그땐 그러고도 학교 측에 항의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그땐 그런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그랬다간 뉴스감이지.
그런 시기에 하백이가 태어나지 않아 얼마나 감사한가.
그냥...
옛 생각에 잠겨 잠간 위로를 받았다. 나는 비록 그런 일들을 겪었지만, 그게 하백이가 아니라, 그 누가 아니라, 차라리 나여서 다행이다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다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 당시엔 어머니께 혼날까 봐(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날 일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엔 속상하실까 봐 얘기하지 않았고, 30대가 넘어서야 가볍게 우스갯소리로 얘기했더니 그때 이런 말을 하셨다.
"그 할망구가 그렇게 대놓고 촌지를 바라길래 미워서 안 줬더니 널 그렇게 때렸구나."
.
.
.
지옥가 있을 거야. 할망구.
그 뒤로도 난 뭐든지 혼자 짊어졌다.
그런데 내 자식들은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나 힘들었나 보다.
하아.......
마음아 좀 쉬렴.
다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들은 로봇이 아니니까...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