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아픈데 너까지 아프면 어떡해
엄마의 외로움, 그리고 너의 외로움.
2021년 11월 0일
그날...
밤 11시.
집으로 돌아오던, 유난히 기분이 좋았던 그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이상하게 수많은 우울한 날들 중에 몇 안 되는 기분 좋았던 그날...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불안하게 울리는 전화 한 통에 내 몸의 일부분이 망가져 버렸다.
그 전화는 불안하게 울리더니 엄마의 엄청난 울음소리와 함께 내 피붙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주며 끊겼다.
그 이후로는 뜨문뜨문 기억이 난다. 입원을 했고, 조울증 진단을 받았고, 가슴이 많이 아팠고, 지금도 눈물이 난다는 그런 거......
그리고 막 퇴원했을 때는 약의 영향 때문인지 말도 어눌하고, 생각도 잘 안 돌아가고, 걷는 것도 이상하고 그랬단다. 지금도 기억력에 영향이 있어서 약간, 기억장애가 있는가 싶은 정도......
지금은 곧잘 웃는다.
곧잘 웃는다.
사람을 만나면 웃고, 떠든다.
자식 얘기를 할 때도 웃고 떠든다. 어느 학원을 보냈네, 어디가 좋다네, 이렇게 가야 대학을 잘 가네...
들으면서 같이 웃고, 맞장구 쳐주고, 떠들고 흘려보낸다.
어느 누구도 나를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나의 과거를 공유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성격 좋고 잘 웃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사실 웃고 있지 않다. 저런 정보들은 들어봐야 쓸데없는 정보다. 교류 같은 거 나는 쓸데없다. 그저 만나자고 하니, 만나고, 커피 마시자고 하니 마시는 정도.
그리고 귀에 피어싱이 하나씩 늘어간다.
머리에 탈색이 한 번씩 늘고, 색이 점점 화려해져 간다.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할 정도. 아이돌이냐 할 정도. (나이는 40대인데 머리는 아이돌 어쩔...)
마치 공허한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그래 어쩌면 조증이 올라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울한데, 조증이 올라온 거다.
제2형 조증은 제1형보다 덜하지만, (나는 병식도 있고......) 그래도 이미 사고를 치고 있다고 자각하고 있다. 사고 칠 땐 돈 천만 원을 우습게 안다.
특히 피부과나 물건 등에 꽂혀 돈을 쓰기 시작하면 돈의 씀씀이가 커진다. 이럴 땐 내 통장에 얼마가 남아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써버린다.
약을 먹어도 완전히 막을 순 없어서 이런 시기엔 선생님께 반드시 말씀드려야 한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의 결과는 공허, 외로움, 우울, 자괴감, 자살사고뿐.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끝도 없이 추락하고 추락한다. 마치 주식차트와 같다. 모든 인생의 굴곡이 그렇듯이. 나는 조금 더 심하게 출렁이는, 조금 더 단타로 움직이는 그런 주식차트......
그러면 어김없이 내 피붙이 생각이 난다.
그도 그랬을까?
그래서 그렇게 일찍 하늘나라로 갔을까?
나의 병의 영향이, 하백이에게도 끼쳤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좌절했다. '100프로는 아니지만,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죠.'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만 괴롭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너무나 힘들게 하는 병. 본인이 본인을 끝없이 괴롭힌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괴롭단 말인가!
이건 자기반성 수준이 아니다.
이건 자기 괴롭힘 수준이다.
자기 학대!
그래, 자기 학대라는 표현이 딱 맞겠다.
약을 먹어도 고쳐지지 않는 자기 학대.
이런걸 물려주다니......
난 아직 엄마가 살아계시다.
그리고 자식이 셋이나 있다.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많다.
하지만 이 병은 '사랑은 사랑이고, 내 마음의 병은 병인 것'을 확실히 갈라놓는다. 마음을 시커멓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암에 걸리면 죽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마음의 병에 걸릴 수 있는 것이고, 그 때문에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죽을 수가 있느냐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건 아픈 거니까.
물론, 옹호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병적인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살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러나 너무 힘들다. 무기력하고 그 어떤 것도 할 생각이 안 드는데, 그나마 글은 쓸 수 있어 자판기를 두드린다.
오랜 습관이 두들기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백이가 ADHD로 혼을 쏙 빼놓으면 안방 구석에 들어가 홀로 우는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착한 아이지만, 영어학원도, 수학학원도 끊어서 아무 할 일도 없는 아이.
이제 학교 숙제만 조금 하는데, 나머지시간은 태블릿만 하루 종일 하고 있다.
남들은 태블릿을 빼앗아라. 정해진 시간만 하게 해라. 너무나 쉽게 말을 한다.
그러면 묻고 싶다. 나머지 시간은 당신이 해결해 줄 건가요?
책도 읽지 않으려 해.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아. 밖에 나가려고 하지도 않아. 짜증만 내고 있어. 심심하다고 소리 질러. 어쩔 땐, 태블릿을 한 참 하다가도 그런다.
이것저것 제시해 보지만, 다 재미없다며 짜증을 낸다.
찡찡대고 짜증 내는 소리, 하진이와 싸우는 소리, 특히나 하루가 머다 하고 싸우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
결국 더 큰 소리로 잠재워서 조용히 시키면, 5초 조용하다 제2차전을 시작한다.
그게 너무 심해서 중재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중재하다가 내 감정까지 얽매여 들어간다. 역시나 나도 감정적인 인간인지라, 어른답게 대처를 못한다.
그럴 때마다 이 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엄마가 있었다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엄마가 여기 서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내가 아니었으면,
내가 엄마가 아니었으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내가 사라져 버렸으면......
"여보. 나 말고 아이들한테 다른 엄마 만들어 주면 안 돼? 나보다 정신적으로 더 튼튼한 사람으로......"
그런 소리 했다가 쓸데없는 소리라며 일축당했지만 정말 그날 난 진심이었다.
어느 날 하백이가 학교 갔다가 돌아왔다. 그 전날은 태블릿 때문에 심하게 혼나고 하진이랑 싸운 것 때문에도 혼나고, 내가 엉엉 운 날이기도 했다.
"엄마."
"왜?"
"저 태블릿 좀 숨겨주세요. "
"왜에?"
"너무 많이 하는 거 같아서요. 도저히 조절이 안 돼요. 안 하고 싶어요. 하진이랑 싸우는 것도 안 싸우고 싶은데 잘 안 돼요. 죄송해요. "
눈물이 났다.
이 아이가 생각이 없는 아이가 아니었구나. 그냥 자기 행동에 조절 되지 않았구나. 동생 하진이와 싸운 것도 그냥 조절이 안된 것뿐이었구나. 이 아이도 아팠구나. 아픈 아이 었구나. 나처럼... 많이 아픈 아이 었구나...
나는 엄마지만, 정말 외롭다.
하지만 이 아이도 나처럼 외롭고 아픈 길을 혼자 걷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린 서로 같이 있지만 결국 서로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로서 도와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결국 하루짜리 태블릿 없는 날이 되고 말긴 했지만 나는 그날 이 아이의 아픔을 봤고 이 아이가 정말 아픈 아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좋은 엄마 되기는 정말 너무 힘든 길 같다.
정말... 좋은 엄마는 너무 힘든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같이 ADHD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내가 튼튼하지 못해 정말 미안해 하백아.
이런 엄마라 정말 미안해.
이렇게 외롭고 연약한 엄마라서, 강한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엄마가 조금 더 힘내볼게.
남들 3걸음 걸을 때 엄마 2보 후퇴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걸어볼게.
그래서... 우리 엄마는 아프지만,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사셨어!라는 말은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볼게.
비록, 다른 엄마들처럼 대단하게 뭘 하진 못하더라도,
너를 대신해 걸어주진 못하더라도,
함께 걸어가 줄게.
사랑한다. 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