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약 먹기 시작할 때에 "약을 얼마나 먹어야 할까요?"란 내 질문에 선생님께서는 1년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고 답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울증 약을 먹으면 먹을수록 나는 내 마음의 상처가 아주 깊고 깊음을 실감했다.
4년이 넘어갈 때는 이미 우울증을 고치는 걸 포기했다.
선생님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내 속에 검은 그림자들이 1년이 지나도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였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으면서 얼마나 공감이 갔는지 모르겠다. 이 병이 당뇨처럼 관리되어야 하는 병이라는 것은 책 읽기 전에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완치보다는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답이 없어 마음이 지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집안에 아주 큰일이 생겼다. 내 정신이 무너질 수 있을 만한 일이 생기면서 더 이상 뜨듯 미지근하게 듣던 약이 듣지 않기 시작했다.가뜩이나 위태위태하게 바늘구멍이 나 있던 댐에 물이 터져 구멍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신이 무너져 내렸다.
"입원시켜 주세요..."
이 말이 절로 나왔고 선생님도 적합하다 판단하셨는지 입원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그리고 속세와 연을 끊다시피 한 달간의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입원생활의 목적은 3가지였다.
첫째 전체 검사를 통한 정확한 병명
둘째 약물 조절
셋째 외부 자극 차단
난 너무 오래전에 검사를 받았기에 한 번쯤은 다시 할 필요가 있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결과는...
우울이 아닌 조울증이었다.그것도 제2형...
경조증이 시기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울증과 불분명하게 나타나서 우울증이랑 헷갈리는 병이다.
울증이 심하게 가면 조울증으로 간다는 카더라 통신을 여쭤봤는데 의사 선생님께 확인한 결과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다.처음부터 조울증이었던 것이다.
울증 약을 먹으면 약이 듣는 것 같다가도 적응이 되어 다시 우울해지고, 다른 울증약으로 바꾸면 또 듣는 것 같다가 적응이 되어 다시 우울해지고가 반복된다면 다시 검사를 해보길 바란다. 우울증이 아닐 확률이 높다.
조증.
나는 그다지 행복하거나 들뜬 기분이 든 적이 없고 항상 우울하기만 했는데... 모니터링 결과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우울증의 모습을 감추고 다른 사람과 대할 때는 아무 일도 없는 척 태평하게 대하고 웃고, 때로는 혼자 분에 못 이겨 삭이는 모습이 조증으로 나타났던가보다.나는 가면성 우울증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증의 모습이 생각보다 다양하게 나타났었던가...
아... 심하게 소비하는 경향도 있었지.
조울증...
지금은 마냥 괴롭기만 하다.내가 이런 병에 걸려 항상 괴롭게 될 줄은 몰랐다.마음이 이렇게 아프고 힘들고, 괴롭고, 갈피를 못 잡고, 공허하고...지금은 약조절 덕분에 조금 살만하다. 2년 전보다는...
그래도 어제는 많이 힘들었다.
행복은 어디를 가야 찾을 수 있을까?
파랑새를 잡으면 찾을 수 있을까?
멀리도 아니고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이 시간 행복하고 싶은데 그게 너무 어려운 것 같다.
마음 아픔의 항해를 한 게 언제인지를 사실 정확한 시점조차도 모르겠다.
몇 년 전일까? 출산 후일까? 아니면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부터? 아니면... 시어머니 구박이 시작됐을 때부터? 하하.
여기 며느리 빡침 에세이도 있던데... 잘 읽어봐야지.
하지만 확실한 건 내 어릴 적은 확실히 아니라는 사실...
그땐 행복하고 기쁘고 설레고 어린아이가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동심과 기쁨이 있었다는 것. 비록 나쁜 어른들을 만나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구김은 없었다는 것...
그나마 그것이 다행이라는 것...
오늘은 아침에 하백이가 약을 먹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약을 꾸준히 먹으니 화가 덜 나는 거 같아요."
그 말에,
"응... 약 꾸준히 먹어야 효과가 계속 유지되니까 빠지지 말고 먹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내가 서글펐다.
내 약의 일부와 하백이의 약은 같다. 아빌리파이가 뭐길래 이렇게 효과가 좋을까...
참... 난 아빌리파이에 부작용이 심해 먹질 못했는데 코로나가 체질을 바꾸면서 아빌리파이 부작용을 없애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대신 리튬은 못 먹게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