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2 ~ 03
2년전의 홋카이도 여행을 마지막으로 길고 긴 무기력의 시간을 보냈다. 무기력은 담요다. 나는 무기력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잔뜩 웅크린 채 누워있었다. 좀 갑갑하긴해도 해야하는 것들을 쳐다보지 않기 때문에 힘들진 않았다. 긴 얘기니 줄이자. 지금은 본래의 하고재비로 돌아왔다.
바람을 쐬고 싶었다. 다른 공기를 맛보고 싶었다. 목적지를 정하고, 뭐가 있는지 훑어보고, 짐을 싸고, 신나게 누웠다. 잠이 안온다. 오랫만의 여행. 게다가 이렇게 계획 없고 즉흥적이라니!! 역시 난 남다른 면이 있다니깐? 기분이 웅웅거린다. 눈 감은 시야는 스크린이 된다. 들뜬 마음이 영사기 처럼 여행지의 내 모습을 그려낸다. 나는 자유롭고, 풍경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친절하다. 그랬다. 너무 오랫만에 짐을 싸서 감이 바닥 난거다. 여행은 (때론) 준비할 때 가장 아름답다. 여행은 현실이다.
군산역 주변이 보통 황량한게 아니라 날개가 돋아 창공을 헤집던 마음이 금새 제자리로 뛰어내렸다. 지도에서 군산역과 금강하구뚝, 습지생태공원들이 고마고마 붙어있길래 걸어갈 요량이었는데 인도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다. 잔뜩 부풀었던 마음이 쪼그라들면서 멋대가리 없는 피리를 분다 피유.
썰물이 어디까지 끌어갔는지 질척한 밑바닥만 남은 금강을 왼쪽에 끼고 터덜터덜 걸었다. 옆에 공원은 조성만 해두고 관리는 안하는갑다. 까망 노랑 줄무늬 거미가 엮어놓은 거미줄이 어찌나 큰지 새도 잡겄다. 저만치 있던 하구뚝이 어느새 옆으로 붙더니 뒷꿈치에 차여 다시 멀어질즈음 습지생태공원이 나왔다. 커다란 거미줄 길다란 거미줄 길다랗고 커다란 거미줄. 내가 초등학생때 풀 키우는데 소질이 있던 울엄마는 집 정원을 정글로 만들었고, 여름엔 내 손바닥만한 크기에 알록달록 하기 까지 소름이 바짝 돋는 거미들이 다리 여덟개를 짜악 펴고 나무 사이사이마다 매달려 있었다. 거미를 하두 보고 살았드만 무덤덤해져서 무서워하진 않지만 마블 영화라면 환장하는 내가 스파이더맨은 안본다.
거미라니.
거미줄을 피해 요리조리 다니다보니 해가 기운다. 얼른 하구뚝으로 되돌아왔다. 해지는 금강이 보고 싶었다. 하구뚝을 사이에 두고 이쪽은 전북 저쪽은 충남이란다. 충남땅 어드매로 해가 완전히 고개를 숙였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젠 말도 못하게 황량하다. 얼른 버스를 타고 군산 시내로 들어와 10여분 줄을 서서 야채빵하나 팥빵 하나 사 먹고 사우나 하러 갔다.
# 서울에서 군산은 버스도 기차도 많다. 다만 기차는 금방 매진되니 기차 여행을 계획한다면 예매를 하는게 좋다.
매진인데 꼭 기차여행을 하고 싶다면 취소표를 노려라. 특히 자정 즈음 취소표가 많이 나오니 계속 새로 고침을 해보길.
# 그러나 군산의 유명한 볼거리 모두가 버스터미널 인근에 몰려있다. 11월 철새가 돌아오는 때가 아니라면 반드시 기차를 고집할 필요는 모르겠다.
# 군산 여행 책자에서 말하는 군산역 부근의 맛집 정보는 버려라. 바지락 마을, 에루화 다 영업 안한다.
금강 휴게소 주변에 바지락칼국수 집들이 제법 몰려있다 바지락은 제법 풍성한데 육수가 맹탕이다.
길 에서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 군산시의원님은 우렁쌈밥집을 추천해주셨다. (안먹어봐서 장담 못함)
# 이성당은 당신이 얼만큼을 예상하건 그 이상으로 사람이 많다. 나는 9시 넘어서 갔는데도 가게 바깥으로 세번이 꺾인 길다란 줄이 늘어서있었다. 매진만 아니라면 빵을 쟁반에 담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는다. 계산이 오래 걸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