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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냐냐 Sep 18. 2017

5. 선자령 ; 인생샷을 찍어봅시다.

2017.09.13




새벽 5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놨지만 그 전에 일어났다. 놀러가는 날은 늘 몸이 시계보다 빠르다. 7시에 남부터미널을 출발해서 9시 조금 넘어 횡계에 도착했다. 야트막한 건물들이 쪼로로 지붕을 맞대고 서있던 작은 마을은 건물보다 키가 높은 포크레인이 여러대 들어서 공사판이 됐다. 아이고 평창 올림픽이 큰 행사는 큰 행사인갑다. 선자령 들어가는 버스가 10시 30분 출발이라 느긋하게 동네 구경을 하려고 했는데 중장비들로 어수선한 도로위를 걷기가 불안하다. 터미널로 되돌아왔다. 그래도 터미널 2층 다방서 키우는 멍뭉이랑 놀다보니 시간은 잘 가더라.  







울 아빠는 유난히 가족적인 아빠라 어릴때 주말 마다 도시락 싸서 놀러갔었다. 등산도 많이 갔는데 나랑 아빠가 열심히 산을 타고 오르면 엄마랑 언니는 이제 그만 도시락 먹고 내려가자며 뒤에서 불러세웠다. 이럴거면 산에 왜 왔냐, 오자고 했으니까 왔지 오고 싶어서 왔냐 하면서 티격태격 해도 다음주에 아빠가 산에 가자하면 다들 또 신나서 따라 나섰다. 티격태격하는게 재미였나보다. 등산은 이게 좋다. 헥헥 거리며 걷는 동안 운동량이 몸으로 집중되면서 머리가 잔잔해진다. 잔잔해진 수면위로 잠겨있던 기억들이 둥실 떠오르면 요래요래 건져내서 살살 들여다보는거지.




선자령 가는 길에 잠깐 마주치는 대관령 양떼목장 
풍차다!



산에 들어온지 이제 2시간 즈음 지났다. 엉덩이가 뻐근하고 빡빡해진 숨이 기도에 걸려서 입밖으로 겨우 기어나온다. 키를 낮춘 구름이 거의 다 왔다고 넌지시 알려주지만 "거의"는 사람을 제일 조급하게 하는 단어다. 거의 다왔어. 거의 다했어. 거의 맞췄어....으아아!! 나무에 숨었던 햇빛이 머리 꼭대기로 쏟아진다. 슬슬 짜증이 샘솟던 머릿통이 햇빛에 달궈지면서 틱탁틱탁 터질 준비를 한다. 아! 언제 나오는거야!! 소리라도 지르려고 올려다본 하늘이 어느샌지 탁 트였다. 촥촥대며 거칠게 걷던 걸음이 멈춘다. 대관령 풍력단지의 하얀 풍차가 보였다. 맘 속에 쟁여놓은 조급함이 슈욱 빠져나간다.





야호




새벽부터 씩씩대고 산에 올라야 했던 

모든 이유를 충족시키고도 남는 장관이었다.




해발 1,157m 선자령



아무데나 풀썩 걸터앉아 가방에서 따듯한 커피와 초콜렛을 꺼냈다. 초콜렛을 입에 물고 따듯한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니 입 속에서 사르르 녹는데 아휴 어찌나 맛있는지 허벅지를 탁쳤다. 먼저 올라와 점심을 먹던 어머님들께서 호일에 돌돌 말린 김밥을 한줄 내어주셨다. 예의상 괜찮다며 한번 거절했다가 혼자 여행다니는게 너무 기특하다고 잘 먹어야 한다며 다시 권해주셔서 꾸벅 인사하고 얼른 받았다. 사실 배고팠다. 아 진짜 맛있더라 산에서 먹는 김밥. 우연히 만나는 호의는 왠지 뭔가 부끄럽다. 감사하다고 제대로 말씀드렸는지 기억이 안난다. 정말 너무 감사했다. 배가 부르니 작품 활동을 시작할 의욕이 샘솟는다. 해발 1,157m 까지 카메라에 렌즈 두개에 삼각대 까지 지고 왔단말이다. 보람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4k로 보세용




등산화를 신지 않아서 산을 거의 다 내려올 즈음이 되니 발끝이 아프다. 안아프게 살살 걷고 있는데 뒤에서 경적이 빵! 울린다. 깜짝 놀래서 엄마야! 하면서 돌아봤더니 아까 김밥을 주신 어머님들이다. 까르르 웃으시면서 놀래켜서 미안하다고 대관령휴게소 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하셔서 차까지 얻어탔다. "저 아까 김밥 너무 유용하게 잘 먹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인사를 드렸더니 그래 배고팠을꺼라고 잘 됐다면서 이번엔 빵을 주신다. 이궁. 휴게소에 내려주시면서 혼자 여행 다니는게 독립적이고 너무 멋지다며 우리 딸들한테도 얘기해줘야겠다고 조심해서 잘 다니라 당부하며 가셨다. 가슴에 사르르 퍼지는 온기에 보답할 수 있는 표현이 감사합니다 밖에 없다니. 책을 더 읽자 혜인아.






택시를 타고 횡계터미널로 돌아와 맞은편 음식점에서 감자 옴심이를 먹었다. 가게 이름도 옹심이다. 믿음이 간다. 황태 육수를 쓰신다는데 음식 나올때 황태 냄새가 확 퍼지는게 입맛 돌더라. 국물도 맛있고 쫀득한 옹심이도 맛있고, 피망을 된장에다 무쳐낸 반찬과 무생채, 김치도 맛있었다. 가게 뒤에 텃밭이 있는지 주인 아주머니가 호박 하나 따야겠다며 나가시더니 커~다란걸 하나 들고들어와 "아이고 그래도 한 한달은 호박 안사다썼네" 하면서 풀썩 자리에 앉으신다. 옹심이 국물에 들어있는 요 호박이 저 호박인가...호박을 젓가락으로 쏙쏙 골라 먹었다. 달달한게 맛나더라.











# 양떼목장에서 선자령까지는 강릉 바우길 1구간 선자령 풍차길이다. 

http://www.baugil.org/ 바우길 공식 홈페이지인데 코스마다 접근 경로와 소요시간, 지도등이 상세하게 안내되어 있다. 



# 선자령이 속한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 최대의 산맥이다. 아주 힘든 코스는 아니지만 산이 제법 깊다. 그래도 운동화신고 미러리스에 렌즈 두개 삼각대 이고 갈만했다.



# 왕복 소요시간을 보통 4시간 잡는데, 그건 훠이훠이 산 잘~타시는 어머님 아버님들 얘기고, 나는 사진찍고 멍때리고 하다보니 총 6시간 정도 걸렸다.



# 터미널에서 버스가 하루 3~4대 밖에 없다. 하지만 택시가 많아서 불편하진 않다.

선자령과 대관령 양떼목장 입구인 대관령 마을 휴게소에서 횡계터미널까지 택시비 8,000원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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