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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냐냐 Jan 30. 2017

[영화] 컨택트.

SF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



물론 디스트릭트 9 같은 새로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외계인 영화 하면 "인디펜던스 데이" 다.

천문학자들은 때때로 하루살이로 표현된다. 139억 년에 달하는 우주를 고작 100년도 못 사는 인간들이 가늠해보겠다고 애쓰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관측 가능한 우주 안의 은하는 5천억 개에 달하고 은하수 안에만 생존 가능한 행성이 약 1억 개가 있다. 게다가 이 행성들 모두 지구보다 15억 년 이상 빨리 생성되었다.

즉, 원시 생명체가 고도의 지능을 가진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할 시간은 넘치도록 충분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거대한 침묵만이 전해지는 지금 우린 그들의 존재를 상상만 할 뿐이다.


우주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상상력의 붓에 담아 그려내기 더없이 훌륭한 소재다. 게다가 스티븐 호킹도 인간의 역사에 빗대어 경고하지 않았는가 외계인과의 접촉은 신중해야 한다고. 그러니 SF 영화가 자유의 여신상과 뉴욕을 초토화시키며 시작되는 건 뻔하지만 아주 본능적이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여기 전혀 다른 형식의 SF 컨택트가 개봉했다. 원작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그을린 사랑과 시카리오등으로 탄탄한 지지층을 형성한 드니 빌뇌브 감독이 영화화했다.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 총 10개 부분을 노미네이트 시키고 줄줄이 찬사가 이어지는 이 영화를 나는 한 문장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과 감성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기억과 시간에 대한 독백을 배경으로 어린 딸을 병으로 잃고 오열하는 루이스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과거"로 인식되고 우울해 보일 만큼 차분하고 지구에 나타난 외계인의 소식도 모를 만큼 바깥세상에 무관심한 루이스의 캐릭터에 설득력을 더해 감정이입을 돕는다. 교차편집을 정말로 영리하게 사용한 영화다. 영화의 중후반까지 관객은 딸에 대한 기억을 "과거"로 인식하게 된다. 






어느 날 지구에 나타난 12개의 거대한 셸(Shell). 정부는 군대를 배치함과 동시에 과학자를 소집하고 언어학자 루이스와 과학자 이안은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는 임무를 맡는다. 스토리라인은 불필요한 갈등구조 없이 유려하게 흐른다. 문명의 기반은 언어가 아닌 과학이라 말하는 이안이지만 둘의 협업은 무척 순조롭다. 







루이스. 나는 루이스예요


영화는 다리 일곱 달린 미지의 존재 헵타포드와 "진정한 소통"을 하기 위한 루이스의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루이스의 소통법은 무척 고전적인데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던 방호복을 벗어던져 내가 누군지 드러내고, 손을 맞대고,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 이름을 말하듯이. 그러나 공포와 적의로 대화를 시작한 중국과 러시아는 "무기"라는 단어가 사용되자 바로 공격 체제로 돌아선다. 감독은 언어는 도구이며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소통의 요소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SF영화에서 마음가짐 이라니. 이 포인트가 영화의 호불호를 가른다. 눈부신 CG도 숨 막히는 긴장감도 SF영화에서 흔히 기대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헵타 포드는 앞으로 3천 년 이내에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류를 발전시키기 위해 지구에 왔음을 밝힌다. 미래를 내다보고 현재를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 까지도 루이스의몸 속에 어떤 "능력"이 스며들어 슈슛! 팡팡!! 하는 장면이 시작될꺼라 생각했다)



하나의 언어를 배우면 뇌의 회로가 새로 생성된다는 대사 속에 예지력의 비밀이 담겨있다.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익히고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앞서 말한 영리한 교차편집으로 완전히 하나가 된 루이스와 관객의 시선은 과거로 인식되던 딸과의 기억이 "논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에서 앞으로 일어날 미래임을 동시에 깨닫게 된다.





하지만 외계인 애봇의 죽음으로 알 수 있듯 예지력은 미래를 대비할 수는 있어도 "죽음" 까지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 루이스에겐 선택만이 남았다. 이안과 사랑에 빠지며 보내게 되는 행복한 순간은 아이의 죽음이란 커다란 불행으로 마무리된다. 평화는 지속되었고 헵타 포드는 돌아갔으니 이제 여정은 끝났다. 이대로 인사를 하며 마무리를 지을 수도 있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 시작할 수도 있다.





영화의 상호관계는 외계인과 지구인이 아니라 루이스와 관객으로 이루어진다. 그때 지금의 모습을 미리 알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같은 질문이 관객에게도 던져진다. 내가 19살 진로를 결정할 시기에 지금을 미리 알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마 똑같이 음악을 했을 거다. 그 대신 정말 최선을 다해 훨씬 더 많이 아주아주 많이 열심히 하고 열심히 즐거워하고 가까이 있어 잊기 쉬운 내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할 것이다. 루이스도 이안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셋의 행복한 시간을 비추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나는 여기서 이 대사가 생각났다.

아이오군, 타쿠미상 , 유우지 기다려주세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끝이 전부는 아니다. 아니, 어차피 모든 것엔 끝이 있다. 이것을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사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선택이다.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최선을 다하여 살면 되는 것이다. 어둠이 있어야 빛도 있다고 한다. 간혹 어둠에 갇힌 듯 앞이 보이지 않는 때도 있지만 다 지나가더라. 그래. 다 지나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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