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가 삼류라도 실천이 일류라면!
육사에 진학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졸업 후 직업군인으로서 국가에 기여하는 삶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의 경우, 장교로 군에 복무하고 싶었고, 장교 육성과정 중에서 육사의 커리큘럼이 마음에 들어서 입학하였다. 하지만, 직업군인의 길보다는, 육사와 군에서 배운 리더십 역량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였다.
5년 차 조기 전역 제도가 있었기에, 중대장까지 마치고, 2001년 3월 IMF로 인한 경기 침체 여파가 아직 남아있을 즈음에 전역을 했다. 마침 IT산업이 각광받고 있었고, 벤처기업 열풍이 불 때여서 대기업보다는 IT회사에 취업하기로 결정했다. 점차 회사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과연 내가 하고 싶은 분야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막연한 흠모였는지는 몰라도, 문화예술분야 기사와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관심이 많았던 것은 '춤'과 '음악'이었다. 하지만, 경험 없이 글을 통해서만 학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을 만나서 문의하였다.
공연기획이 궁금하면, 공연기획자 동호회 모임에 참석해보고, 드러머가 멋져 보이면, 드럼 동호회에도 참석해보고, 무조건 몸으로 부딪혔다. 문화예술분야에 문외한인 데다가, 지인이라곤 군인밖에 없었기에, 마땅히 취할 방법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와중에, 탭댄스 공연을 관람하며 받은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서 무작정 탭댄스 동호회에 강습을 신청했다. 2개월 정도 지나서, 처음으로 초보자반 발표회를 하던 때의 감동은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무대에서 난생처음, 관객을 앞에 두고 공연한 것이기에 더욱 그랬으며, 무대와 음악과 춤이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2년 동안, 크고 작은 무대에서 공연도 하고, 많지는 않았지만 유료 공연을 하면서 예술분야에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가끔 신문에 기사화도 되고, 방송에도 나가면서, 회사일보다 취미생활에 더욱 집중했다.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예술분야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이며, 나도 이 분야를 좋아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사표를 내고, 공연기획 분야에서 내 꿈을 키워보기로 마음먹었다. 낮에도 춤을 추고, 사무실이 아닌 연습실에서 보내니 더없이 즐거웠다. 하지만, 곧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취미가 직업이 되니, 즐거울 때보다 걱정할 때가 많아진 것이다. 안정적인 급여가 없어졌으니 생활비도 걱정되었지만, 학원 운영이 목표가 아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공연을 제작하고 싶었는데,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동호회원 중에 피아노나 무용을 전공한 친구들이 나에게 MBA 과정에 있는 예술경영대학원을 추천해주었다. 30대 초반에, 전혀 이질적인 분야로 진출하기에는 쉽지 않겠지만, 인맥도 넓히고, 보다 체계적인 문화산업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예술 전공이 아니고, 나이도 많은 사관학교 졸업생에게 합격의 문은 좀처럼 쉽게 열리지 않았다. 2번 떨어지고 나니, 없어진 자신감의 자리에, 오기가 채워졌다. 대학원 면접은 주로 면접관이 지원한 사람의 서류를 보면서, 관심 가는 학생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3번째 면접에서도 면접관은 여전히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면접이 끝나갈 무렵, 손을 들고 내 지원서를 봐달라고 했다. 그리고, 문화산업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왔고, 합격할 때까지 지원할 생각이라고 했다.
다행히 3번째 만에 합격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지금도 크고 작은 모임을 통해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경영대학원이기에 경영, 경제, 회계와 같은 과목이 필수였는데, 예술 전공자들이 힘들어한 반면에 육사에서 이미 잘 배웠기에 재밌게 공부할 수 있었다.
공연예술 마케팅, 온/오프라인 마케팅, 공연기획/제작, 브랜드 마케팅 등 과목 이름만 들어도 설레고 즐거웠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뮤지컬 기획사로 이직한 것이다.
그 당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오프닝 장면의 안무를 탭댄스 공연 시에 활용했었다. 때마침, 남이 만든 것을 따라 하기보다는 내가 그런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가고 있을 때, 대학원 동료의 추천으로 뮤지컬 기획사로 이직한 것이다.
10살 이상 차이나는 동생들과 같이 수습직원을 하면서도, 너무 즐겁고 신나는 생활이었다. 업무 하나하나 매뉴얼로 만들었고, 늦은 나이에 시작한 만큼 잘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렇게 3 작품을 끝내고, 회사 여건상 퇴사하였지만, 슬프기보다는 즐거웠다. 문화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뮤지컬 회사에서 근무해 나가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에 너무도 희망찬 나날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지인의 소개로 박칼린 감독님과 같이 뮤지컬 관련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열강 하시던 모습을 보고,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지인이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소개해준 것이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쌓아가면서 점차 문화예술분야의 구성원이 되어가고, 좋은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 논문을 마무리하고, 창작 뮤지컬도 제작하고, 공연장도 운영해보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일하는 것이 즐거웠기에,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빨아들였다.
잠시 휴식기를 갖고 싶어 사표를 내고 쉬던 중에, 마케팅 전문회사에서 공연 마케팅 전문가를 채용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고도화된 마케팅 역량을 키우고 싶었기에, 서슴없이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물론, 면접 과정에서 육사를 졸업한 사람이 공연 마케팅 업무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수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좋게 평가해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다.
지금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실행할 것을 추천한다. 장고 끝에 악수라 하지 않았던가. 고민하기보다는, 책과 정보를 찾아 공부하고 그 분야의 무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될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찾았는데, 그것을 전공하지 않아서, 나이가 많아서, 인맥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라는 것은 핑계이다.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되겠지만, 신념이 없다. 궁극에 가서는 신념을 가지고 달려가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쟁취한다. 언제까지 계산만 할 것인가?
손정의 회장과 마윈이 한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했다.
"일류 아이디어에 삼류의 실행을 더하는 것과 삼류 아이디어에 일류의 실행을 더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두 사람의 답은 일치했다.
삼류의 아이디어에 일류의 실행이 낫다는 것이다.
- '알리바바 마윈의 12가지 인생 강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