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은 어렵지만, 그 시작을 즐기자!

by 정성진 musicalbank

나는 계절을 많이 타는 편이다. 유독 가을을 많이 타지만, 봄도 이에 못지않게 많이 탄다. 특히, 봄을 알리는 꽃 중에서 목련꽃을 볼 때면 아련한 추억에 잠기곤 한다.

화랑대(육군사관학교)에서의 첫 번째 봄을 떠올리곤 한다. 하얀 자태를 뽐내며 향기로이 흩날리는 목련 꽃잎은 20여 년 전의 낭만파 생도를 불러낸다. 아마도 내가 봄을 유난히 많이 타게 된 계기는 화랑대에서의 첫 번째 봄에 기인할 것이다.


추운 겨울,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화랑대에 들어섰을 때 비로소 내가 군인이 되기 위해 입학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육사생도에 대해서 멋진 제복을 입은 대학생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정식으로 입학해서 1학년 생도가 되었을 때, 하나의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학사 과정이 여타의 대학보다 빡빡하다는 점과 기숙 생활을 한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육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입학해서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정신없이 지나가는 하루 일과 중에도 작은 즐거움이 있었다.

화랑관에서 대오를 갖춰 충무관으로 학과 출장할 때였다. 행진하면서 군가를 불렀는데, 가끔 수요일이나, 화창한 날에 가곡이나 가요를 부르며 공부하러 가는 길이 너무도 즐거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가 박목월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사월의 노래'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사월의 노래

박목월/시인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잃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노래 가사처럼 고향을 떠나와 처음 맞이하는 봄에 낯선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 새로운 희망을 심어준 노래다. 세월은 흘렀지만, 지금의 신입생도에게도 4월은 지독하게 잔인할 것이다. 쉬는 시간이 거의 없는 학사일정, 체력단련, 훈육, 그리고 단체생활로 이어지는 일과는 상념에 빠질 시간조차 허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노랫말처럼 목련꽃 그늘 아래서 봄의 향취에 빠지고 싶었기에, 주말이면 상급생들이 외출/외박을 나간 후, 어김없이 목련꽃이 피어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물론, 도서관 의자보다 도서관 밖의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도서관 주위의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고향생각에 젖기도 하고, 떨어진 꽃잎을 주워 가지런히 책갈피 사이에 꽂아두곤 했다.

가끔 시골집에 들렀다가 생도 때 공부하던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 사이에서 꽃잎과 낙엽을 발견할 때면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영원할 것 같이 강렬한 향기를 내뿜는 목련꽃이지만, 봄비라도 내리게 되면 금세 지고 만다. 그래서 더욱 아련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하얀 목련도 좋지만, 보라색을 띤 자목련에 더욱 끌린다. 그런 자목련을 만나면 봄과 함께 했던, 화랑대에서의 풋풋한 시절이 떠오른다.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 삶이 더욱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화랑대의 사계절은 참 아름답다. 그 사계절마다 각기 다른 생도생활이 묻어 있기에, 똑같은 교정에서 서로 다른 상념에 빠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20여 년 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겠지만, 화랑대의 봄과 마주하게 되면, 자연스레 서울로 상경했던 그 시절의 초심을 들춰본다.

지나고 나서의 넋두리지만, 목련꽃 그늘 아래서 나만이 누리던 봄은 정말로 행복했고, 목련꽃만 보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 지나치는 생도들의 모습에서 싱그러움을 엿보기도 하지만, 고단한 일상의 모습도 스쳐 지나간다.

신입생, 신입사원, 새신부, 새신랑... 나를 포함한 새로이 시작하는 모든 분들이여. 두려워말고 시작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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