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아스트리드 린드그렌/논장)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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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는 5살 생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입만 열면 생일 타령에,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오늘이 좋은 생일인지 안 좋은 생일인지를 생각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걸까? 원래대로라면 내가 이 세상에 온 날을 기념하는 건데, 나라는 존재가 이 땅에서 잘 살아가고 있음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날이 되어야 하겠지만, 실제로 생일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생일은 그저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날, 모두가 나를 축하해주고, 나에게 선물을 주는 날, 한 마디로 내가 제일 행복할 수 있는 공식적인 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일은 그 날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중요한 것인지, 솔직히 하루 전이나 당일이나 그 다음 날이나 별다를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생일이 케이크의 촛불을 나만 끌 수 있는, 나만을 위해 촛불이 밝혀지는 날이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생일에는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특별한 날이 갖는 문제이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이 수시로 벌어진다. 멀쩡히 잘 걸어가다가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잠깐 정신이 팔려 있다가 핸드폰을 택시에 두고 내리기도 하고, 주머니에서 뭘 꺼내다가 영수증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또 좋은 일들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길 가는 사람에게 선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운 좋게 길거리에서 지폐를 줍게 될 수도 있고, 마음에 쏙 드는 목도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런 일들은 파도가 치듯이 우리에게 왔다가 사라지고, 또 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우리는 그 속에서 좋았다가 슬펐다가 그렇게 요동을 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날에는 무조건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게 바로 문제다.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좋은 일만 있을 거라는 착각. 헛된 기대. 이것이 특별한 날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로타는 자기 몸보다 훨씬 큰 자전거를 무리하게 타다가 크게 넘어지고 만다. 몸에 맞지 않아 제대로 컨트롤도 되지 않는 자전거를 탔으니, 다칠 확률이 커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건 정확한 원인과 결과가 정해져 있는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타는 자기가 한 짓은 생각하지 않고, 자전거 때문에 생일날에 장미 덤불 속에 처박혔으니 너무 불행한 생일이라고 한탄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세게 넘어졌으니 무릎에서 피가 나는 것 또한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일인데 피가 났다고 엉엉 울기 시작한다. 게다가 선물 받은 팔찌까지 잃어버렸으니 오늘은 너무너무 안 좋은 생일날이라며 투덜거린다. 로타는 안 좋은 생일날을 원하지 않는다. 생일날엔 무조건 좋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한다. 바로 그 생각이 로타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었다.


여기서 살짝 다른 경우로 비약을 해보자면, 로타가 생일을 특별하게 여기듯이, 만약 우리가 스스로를 아주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 생일엔 좋은 일만 일어나길 기대하듯이, 특별한 존재인 나에게도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체의 안 좋은 일들을 견디기 힘들어할 것이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어떻게 저 사람이 날 싫어할 수가 있지? 어떻게 내가 한 일이 인정을 못 받을 수가 있지? 어떻게 내가 쟤보다 못한 평가를 받아야 하지? 어떻게 내가 도드라지지 않고 묻혀야 하지? 어떻게 아무도 나한테 신경을 써주지 않을 수 있지? 아마 정말 견디기 힘들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희로애락은 있는 법이고, 상황에 따라, 때에 따라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일어난다는 건 정해진 사실이다. 누구도 그것을 피해갈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큼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미친 거다. 도대체 자기가 뭔데? 불행에 대한 방탄복이라도 입은 아이언맨이라도 되는 건가? (아이언맨조차도 개인사의 불행을 막진 못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생일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일상적인 일에서조차 더 크게 실망하고, 불행해지게 만든다. 나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평범한 일들에서조차 더 크게 실망하고 슬퍼지게 만든다.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있는 거고, 살다 보면 누군가한테 속기도 하는 거고, 이용당할 수도 있는 거지, 나한텐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참 무지한 거다. 그리고 로타처럼 자기가 잘못 선택해서 벌어진 결과에 대해서도, 그게 자기 때문이라는 걸 인정 못하고 마치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잘 살펴보면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타의 형제들인 요나스와 미아 마리아처럼, 그것이 잘못된 행동에 대한 벌을 받아서 그런 거라고 정죄하는 것도 옳지 않다. 우리는 너무 쉽게 남탓 아니면 정죄를 하고 만다. 선택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상황을 수용하는 것을 너무 못 한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생일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낙심해 있던 로타는 아빠가 자신에게 꼭 맞는 진짜 자전거를 사오고, 또 잃어버린 팔찌까지 되찾게 되자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오늘은 아주 안 좋은 생일이었다는 자신의 말을 부인한다. 마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애니까, 어린 애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조금만 불행한 일이 생기면 세상 끝에 떨어진 것처럼 낙담했다가, 자기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면 바로 기분이 뛸 듯이 좋아지는 그런 상황 말이다. 말 그대로 일희일비.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기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슬프다. 이 낙차를 좀 줄이는 방법이 뭐 없을까? 천국와 지옥을 정신없이 오가는 이 거대한 갭을 어떻게 해야 줄일 수 있을까?


언뜻 떠오르는 단어는 ‘그러려니’이다. 좋은 일이 생겨도 그렇구나, 나쁜 일이 생겨도 그렇구나. 무슨 일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기본값으로 인식하고 있다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아, 됐구나’,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아, 안 됐구나’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확률은 50:50이었으니까, 어느 쪽으로 결과가 나왔는지, 기울었는지를 확인하고, ‘아, 그렇구나’ 하는 것이다. 세상사는 이런 일들의 끊임없는 연속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반드시, 꼭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클수록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해진다. 내가 원하는 꼭 그대로 되어야만 행복하고, 그밖의 경우에는 무조건 실망하고 낙담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불행할 확률을 높이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내 뜻대로 되면, 내가 갖고 싶은 걸 갖게 되면 기분이 좋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걸 다 가질 순 없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될 수는 없다. 그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다고 하면서도 자기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자기만은 거기서 예외가 되고 싶어한다. 특별한 사람, 특별히 운 좋은 사람, 특별히 복 많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남들은 다 그런 법칙에 따라 살게 되더라도, 자기만은 예외 조항이 되길 원한다. 그게 바로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다. 모든 법칙과 인과관계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귀하고 특별한 존재. 어쩌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헛된 욕망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존재와 차별화되는 오직 하나의 나 말이다. 근데 또 웃기는 게 우리는 이미 이런 존재다.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 하지만 사람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우주의 원리에도 지배되지 않는 그런 초월적인 존재가 되길 바란다. 결국 사람들은 신이 되길 꿈꾼다.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그런. 그래서 매순간 자신은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비감을 느낀다.


자,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하자! 삶이 내 뜻대로 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생일엔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쓸데없는 고집과 헛된 기대만 버린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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