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찌쨈 토스트" (문지나 / 북극곰)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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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한 켠 작은 토스트 가게에서 사는 남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름이 오나, 가을이 오나, 한결 같이 토스트를 만드는 남자, 토토. 그의 작고 변함없는 생활은 꽤 오래도록 계속된 걸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이런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던 걸로 보이진 않는다. 집돌이, 집순이 스타일의 사람들은 그런 걸 좋아하기도 한다지만, 토토는 그렇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았던 것뿐이지, 그의 마음속에는 늘 더 큰 세상을 보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벚꽃 공원에 모모가 나타났을 때, 그는 모모를 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녀의 여행 가방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원 주변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잠시 스쳐지나가는 사람, 어디론가 떠날 사람의 증거인 커다란 여행 가방에 시선이 꽂힌 것이다. 심지어 그가 먼저 모모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행을 하는 중인가 봐요.” 그렇다. 모모가 여자라서 관심이 생긴 것이 아니다. 모모가 예뻐서 말을 건 게 아니다. 모모가 여행 가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모는 토토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토토는 모모가 좋았던 것이다. 즉, 대상으로서의 모모를 사랑한 게 아니라, 모모가 상징하고 있는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좋아한 것이다.


토토와 모모는 많이 다르다. 한곳에 정착하고 사는 토토와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모모의 현재 상태만 봐도 그렇고, 모모는 버찌를 아주 잘 먹지만, 토토는 버찌가 너무 시어서 먹지도 못한다. 그리고 나는 하필이면 모모가 버찌를 맛있게 먹으면서 토토에게 “이렇게 멋진 곳에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요?”라고 말하는 순간에, 토토가 대답을 하지 못한 이유가 단순히 버찌가 너무 시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우 공교로운 타이밍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토토는 모모가 벚꽃 공원을 멋지고 행복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왜? 토토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토토 토스트를 처음 소개하는 장면에서의 토토 얼굴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모모와 토토의 차이가 하나 더 드러난다. 모모는 떠돌면서도 정착하고 싶어하고, 토토는 정착하고 있으면서도 떠나고 싶어한다. 항상 자기에게 없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암튼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갖고 있는 상대와 금방 친구가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면서 서로가 상대방을 좋아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 사실은 서로 자신의 이루지 못하는 꿈을 좋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토토와 모모의 차이는 같이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모모는 버찌씨를 테이블에다 온데 흐뜨려놓고선 먹는다. 토스트도 두 장씩 먹고, 찻잔도 손으로 들고 마신다. 모든 것이 동적이다. 그에 비해 토토는 깔끔하고 얌전하다. 사실 둘은 진짜 안 맞는다.


모모가 토토에게 함께 떠나자고 말했을 때, 토토가 겁이 나서 거절한 것은 별로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모모가 떠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버찌를 모아놨는지를 보고는 좀 놀랐다. 헤어지는 장면을 보면 세 보따리에 한 소쿠리나 모아 놨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는데, 버찌를 좋아하면 그냥 양껏 따먹으면 그만이었을 텐데, 모모는 어째서 저렇게 많이 모았던 걸까? 토토가 그 양 때문에 밤새 잼 만드느라 엄청 고생을 할 정도로 말이다. 여기서 모으고 축적하고 싶어하는 모모의 성격이 드러난다. 사실은 정착하고 싶고, 정착하려는 성질도 갖고 있으면서, 그게 본능이면서도 모모는 다 버리고 떠나기를 반복한다. 분명히 모모에게도 뭔가가 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정착하고 싶어도 못 하는 자기만의 어떤 이유가. 책임지는 것이 두려운 걸까? 여행을 다니면서 토토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는 것도 그렇다. 여행을 다녀보면 알겠지만, 새로운 볼 거리가 지천에 널려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터지는 상황에서, 타국에 멀리 있는 친구를 떠올리고 그에게 꾸준히 편지를 보낸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모모는 정도 많고, 관계를 이어가려는 의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과연 토토도 답장을 보냈을까 싶다. 아무리 봐도 모모만 일방적으로 편지를 보낸 것 같다. 모모는 계속 움직이는 상태니까 보내기 어려울 수도 있겠고.


토토는 모모가 전해오는 소식만으로도 일상에서 활기를 얻는다. 대리만족 상태인 것이다. 모모를 통해 자신이 마치 여행을 하고 다니는 것처럼,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지루하고 비루한 현실을 이겨나간다. 하지만 모모가 약속했던 여름에 벚꽃 공원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을 알려주자, 토토는 절망한다. 나는 그때 그가 수치심을 느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이 계속 누군가에 의존해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기다리고, 상상하고, 또 기다리고, 바라고... 그랬던 것이 좌절되는 순간, 자기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지고, 한심해 보이고, 초라해진다. 그래서 토토가 식탁에서 갑작스레 터뜨린 눈물에는 정말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로는 “오로라가 너무 보고 싶어요.”라고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 말이 제일 솔직한 말이었을 수도 있겠다. 처음 이 그림책을 읽었을 때는 “모모가 너무 보고 싶어요.”라는 말을 친구들 앞에서 하기 창피하니까, 오로라를 보고 싶다고 돌려서 말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도 귀엽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앞에서부터 자세히 다시 읽어보니, 이게 진심이다. 토토는 모모가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로 오로라가 보고 싶은 거다. 자기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것이다.


이 책에서 제일 재밌는 부분은 마을 주민들이 토토가 떠나지 못하는 게 자기들이 그리워서일 거라고 착각하고, 자기들 사진을 찍어서 주면서 여행을 보내주는 장면이다. 정말이지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장면이다. 착각도 유분수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토토를 아쉬워하는 건 동네 사람들일 뿐이다. 토토는 그들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토토는 지금껏 자기만의 싸움을 계속 하고 있었다. 본능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이성을 따를 것인지. 하지만 드디어 자기 본능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어쩌면 토토는 모모보다 더한 헤비 트래블러가 될 수도 있다. 영영 안 돌아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토토는 상상의 스케일이 굉장히 큰 편이었다. 미로 같은 마을을 백마를 타고 한순간에 뛰어넘는 꿈 장면도 그렇고, 버찌잼 바다에 누워있는 모습도 그렇고, 확실히 스케일이 있는 편이다. 토토가 북극의 빙하들을 보면서 얼마나 만족스럽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토토는 이쪽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헤비 트래블러 토토의 각성기이다. 미안하지만 토토는 다시는 토스트 가게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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