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동생" (샬롯 졸로토/사카이 고마코/북뱅크)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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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보는 내내 ‘도대체 얘네 엄마는 어디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가 동생을 보살피는 그 모든 행동과 말들은 마땅히 엄마가 아이들에게 해야 할 그것이었으니까. 엄마라는 존재가 완전히 부재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엄마가 일 나가고 없을 수도 있고, 혹은 엄마 없이 다른 집에 맡겨져 있는 상태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이 언니가 동생에 대해서 엄마의 역할을 대신 맡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언니도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하지만,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이 있기에 보호자를 자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것은 동생이 있는 맏이가 가진 숙명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출생 순위에 따른 심리 상태를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간혹 예외는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이 출생 순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맏이는 항상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고, 책임감 있게 자랄 것을 요구받는다.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 대신이라는 역할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곁에서 맏이와 동생을 같이 돌봐주는 상태라면 조금 낫겠지만, 그럴 수 없을 경우에 맏이의 역할은 더욱 더 막중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이 다 큰 어른인 부모에게도 무척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맏이는 아이이면서도 그 힘든 일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무게감에 짓눌리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맏이에게서 가장 많이 보이는 특성 중에 하나가 애 늙은이, 즉 아이 답지 않은 아이인 것이다.


반면에 동생, 둘째는 다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늘 자기보다 뭐든 잘하는 언니를 보며 자란 동생의 마음속엔, 아무리 노력해도 언니를 이길 수 없다는 무력감이 싹튼다. 언니의 지도와 보호 아래 있으면 좋고 편안하긴 하지만, 늘 지시받는, 보호받는 존재로만 있어야 하는 것이 그리 달가울 리가 없다. 여기가 재밌는 부분이다. 맏이는 지시하고 보호하는 부모의 역할을 반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서 자신에게 체화시키지만, 둘째는 그렇지 않다. 둘째는 한없이 무력한 자신의 위치에 반발하고, 반항하고,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시도를 한다. 그림책 속에서 동생이 언니에게 말도 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게 바로 그 예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동생을 잃어버린 언니의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이 크다. 왜냐하면 동생을 잘 돌보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들판을 달리며 동생의 이름을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는 언니에 대한 묘사와 그 소리를 다 듣고 있으면서도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는 동생의 묘사야말로, 극단적으로 다른 첫째와 둘째의 특성을 드러내준다. 한없는 돌봄을 받는 동생은 자기를 찾으려 하지만, 한없이 돌봐야 하는 언니는 자신보다는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많은 첫째들이 맏이의 중압감을 견뎌내느라 신음소리를 참으며 노력하고 있고, 그 중에 일부는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맏이로서의 기능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른다. 또한 둘째들은 맏이의 그늘에서 벗어나 혼자 독립적인 존재로 오롯이 서기 위해, 빠른 시간 안에 자립을 이루는 특성이 있지만, 반대로 맏이의 그늘 속에 평생 동안 살면서 언니보다 나을 게 없는, 잘난 언니와의 비교 속에서 항상 부족하고 못난 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나마 이 그림책 속의 자매에겐 아직까지 엄마라는 사람의 기능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라 자매의 관계가 비교적 단순한 상황이지만, 만약에 엄마가 둘 중에 하나를 더 편애하거나, 둘 중 하나에게 특정한 역할을 더 강요할 경우, 이 자매의 역학 관계는 훨씬 더 복잡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처럼, 언니가 무거운 책임감을 조금 내려놓고, 동생이 동생답지 않은 성숙함으로 언니를 감싸줄 때에 비로소 균형이 맞게 되는 것이다. 출생 순위란 우리가 원한 것도 아니오, 그저 저절로 되어진 것일 뿐이지만, 각자의 위치에 따라 성격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물론 각 사람의 기질에 따라 그 출생 순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형태는 다를 수 있지만, 출생 순위에 따라 부여되는 역할과 책임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출생 순위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환경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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