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정벌레가 귀뚜라미에게 화내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왜? 귀뚜라미는 제대로 화내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이게 과연 문제가 될까? 화를 내는 법을 모르는 것이? 나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화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화를 내면 안 된다, 혹은 화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화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그걸 숨기거나 아닌 척 하거나, 빨리 없애버리려고 할 것이라서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파울로 코엘료도 ‘내가 빛나는 순간’이라는 책에서 “이따금 우리는 화를 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화를 낼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잔인해질 권리까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인간은 화가 날 수 있고,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 권리이지만, 다만 그것이 정도를 지나치지만 않으면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있는 화를 적절히 표현하고 조절하는 일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때로는 이렇게 딱정벌레와 귀뚜라미처럼 제대로 훈련을 받아야 할 필요도 있는 일이다.
귀뚜라미는 자기는 지금까지 한 번도 화나는 생각, 화가 났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심지어 가상으로 한 번 떠올려보라고 해도, 도저히 화나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난감해한다. 귀뚜라미는 늘 ‘꿀과 엉겅퀴, 그리고 좋은 날씨 같은 좋은 생각만 한다고 한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귀뚜라미의 인생이 아무런 고통 없이, 시련 없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면야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경지라서 상상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늘 긍정적인 생각, 좋은 생각만 하며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강박적으로 몰아가는 사람이거나, 나쁜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스스로에게 좋지 않으니 일부러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 또는 부정적인 생각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도 이럴 수 있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 자체가 긍정과 부정, 그 양쪽 모두를 품고 있는 데다가, 어느 한 쪽만 계속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늘 왔다갔다 번갈아 가면서 생기기 때문에, 한 쪽만 추구하겠다는 것 자체가 벌써 모순이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만 하면서, 긍정의 힘을 믿으면서, 좋은 일만 생각하면서 산다? 그럴 순 없다. 불가능하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자연스럽게 대응하는 법을 모르면 결국 어떻게든 탈이 나는 법이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언젠가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때 적절하게 화내는 방법을 모른다면 정말 큰일이 날 것이다. 내가 볼 땐 그저 ‘긍정 강박’이라는 또 다른 병에 불과하다.
아니나 다를까, 딱정벌레가 화가 나는 생각 몇 개를 예로 들어주자, 귀뚜라미는 바로 반응한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딱정벌레에게 달려들어 딱정벌레의 몸을 뒤집어 넘어뜨려버린다. 청출어람이다. 순진한 척, 착한 척, 무지한 척, 눈을 깜빡깜빡거리며, 난 그런 거 정말 몰라, 하나도 몰라... 라고 얘기했지만, 몇 가지 상상만으로도 귀뚜라미는 돌변하고 말았다. 화란 이런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아주 쉽게, 아주 간단하게 일어날 수 있는 흔한 감정이다.
귀뚜라미를 화내게 하기 위해서 딱정벌레가 제시한 예시를 보면 뭐 그리 대단한 것들도 아니다. 생일을 망치거나, 발을 밟거나, 날개를 부러뜨리거나, 못생겼다고 하거나, 너무 시끄럽다고 말한다거나... 이걸 좀 더 자세히 분석하면, 몸에 상처를 주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둘 중 하나다. 좋은 기분을 망치거나, 몸에 고통을 주거나, 더 나아가 아예 몸에 상처를 내거나, 모멸감을 주거나, 아니면 자신의 장점에 대해 부정하거나. 이 정도면 누구에게라도 화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거꾸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상대에게 분노를 일으키고 싶으면, 요 정도만 해주면 된다는 얘기가 된다. 상대방이 자랑스러워하는 것, 상대방의 특기를 깔아뭉개거나, 상대가 어쩔 수 없는 요소들(외모, 키, 부모, 집안 상황...)을 가지고 공격하거나, 위해를 가하거나, 기분을 망치면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화를 안 내기란 정말 어렵다. 그리고 분명한 위해를 당했을 때는 화를 내는 게 맞고. 그 어떤 경우에도 화를 안 내는 성자가 되기를 바라는 건 헛된 바람일뿐더러, 옳지도 않다.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는 말이지만, 나는 귀뚜라미가 딱정벌레의 도발에 넘어가 크게 화를 낸 후에, “이건 네가 원한 거야!”라고 소리 지르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딱정벌레와 귀뚜라미가 현재 화내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는 상황에서 보면, 당연한 얘기다. 그래서 딱정벌레도 “아주 좋아, 잘 했어!”라며 칭찬을 해준다. 하지만 나는 귀뚜라미의 저 말에서 화를 낸 자신에 대한 당혹감과 죄책감, 민망함을 어쩌지 못하고, 그 불편한 기분을 바로 딱정벌레 탓으로 돌려버리는 회피의 마음 또한 읽어낼 수가 있다. 절대 내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절대 이런 사람이 아니다, 라는 식의 회피. 아니나 다를까, 화를 낸 후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귀뚜라미는 딱정벌레에게 놀란 눈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무의식적으로 화를 낸 것과 죄를 진 것을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라리 귀뚜라미가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정말 화가 나. 참을 수가 없었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학습 효과가 더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화를 인정하고, 자기도 화가 나는 존재라는 걸 수용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면 고맙다는 말이 더 진심으로 나올 수도 있었겠지. 솔직히 딱정벌레가 굳이 이런 일을 왜 했는지, 귀뚜라미가 정말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왜 훌쩍이고 울먹였는지도 의문이 들긴 한데, 오늘은 그냥 여기까지. 화는 아주 쉽게 유발시킬 수 있고,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는 것까지만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