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새라면, 그러니까 새의 본능이 남아있는 새라면, 최소한 스스로를 새라고 인지하고 있는 정상적인 새라면, 과연 새장에 들어가고 싶어할까? 새는 자연물이지만, 새장은 인공물이다. 새장은 인간이 새를 잡아두려는 목적을 갖고 만든 물건이다. 원래 자연에는 새장 같은 것이 없었다. 새장 비슷한 것을 자연에서 굳이 찾아본다고 한다면, 나무에 자연적으로 뚫려있는 구멍 정도라고 봐야 하나? 새장은 엄밀히 얘기하면 덫과 똑같다. 동물을 잡으려는 목적으로 케이지 안에 먹이를 넣어놓고 기다리다가, 동물이 먹으러 들어오면 못 나가게 문을 닫아버리거나, 아니면 날카로운 쇠붙이로 꽉 물어서 못 가게 만드는, 한 마디로 동물의 자유를 박탈시켜버리는 무서운 도구다. 안정적인 먹이라는 최대의 유혹으로, 생명과 자유를 담보하게 만드는 새장이란, 인간의 ‘소유욕’,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만들어낸 최대의 괴물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책에 나오는 새장은 자신이 그런 괴물이라는 인식은 없는 듯하다. 순수하고 순박하고 착해서(?) 그저 자신도 다른 새장들처럼 새를 품고 있는 새장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그저 남들처럼 자신도 새를 갖고 싶을 뿐이다. 새장은 그것을 아주 작은 소망, 소박한 소망,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평범한 욕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다른 생명체의 생명과 자유를 담보로 나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에 불과하다. 아무리 예쁘고 다정한 말로 포장해봤자, 새장이 새에게 위험한 덫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랑과 안정, 평안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해도, 그 사악한 본질, 음침한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 날아가지 못하게 잡아두겠다, 내가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볼 수 있게 만들겠다, 나만을 위해 존재하게 만들겠다, 나만을 위해 노래하게 만들겠다, 절대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겠다, 결국 이런 무시무시한 말들과 똑같은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문제는 현실엔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에 걸려드는 새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생존에 극도의 어려움을 겪는 새들, 겁이 많은 새들, 상처입고 지친 새들, 생존이 버겁고 귀찮아진 새들이 제발로 새장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새장 속에서 살면 굳이 힘들게 먹이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돌아다니면서 번번이 새 집을 짓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알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고, 계절에 따라 먼 길을 이동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때 되면 주는 물과 먹이를 먹고, 내키는 대로 가끔씩 노래나 하고, 좁은 공간이지만 이따끔 날개나 퍼덕거리면서 한평생을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아닌 줄 알면서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인생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안락함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산다는 걸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정!)
차라리 그렇게 제 발로 새장 안으로 들어간 새라면, 다 알고도 결심하고 들어갔으니 어쩌면 그 안에서 다 포기하고 적응해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힘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잃어버린 자유에 연연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게 아니라, 창공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새가 어떤 계략에 의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납치돼서 새장 안에 갇히게 되었다면 어떨까? 거기가 바로 지옥이다. 새가 새로서 살 수 없는 삶, 그것보다 더한 지옥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장은 그런 곳이다. 안락함을 제공하는 대가로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곳. 나답게 살기를 포기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소름끼치는 곳이다.
하지만 새장 입장에서만 생각한다면, 새가 없는 새장만큼 새장답지 못한 것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새장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자연물은 자연 그대로의 본성을 지키면 되지만, 인공물은 반드시 자신이 만들어진 목적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아니, 어쩌면 자연물, 생명체로서의 우리도 이걸 알아야 하는 것 같긴 하다. 왜냐하면 우린 본성, 본능을 많이 잊어버리고 마치 인공물처럼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 그림책의 결론은 그래서 놀라웠다. 새장이 새를 품으면서도 새를 구속하지 않는 방법을 드디어 찾아냈으니 말이다. 문짝이 없는 새장, 잠시 소유하되 언제든 놓아줄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둔 새장. 그래서 물과 먹이와 쉴 곳을 원하는 새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새장.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윈윈이 아닐까? 그러러면 나의 새다, 내가 새를 가졌다, 이런 독점욕, 소유욕을 내려놓아야 한다. 참 목적을 찾는 것이다. ‘뭣이 중헌디?’ 새장은 바로 이것을 발견해냈다. 새장에게 중요한 건 새와 교류하는 것이다. 새가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새에게 좋은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착한 새장의 최종 목적이 새를 가두는 게 아님을, 스스로 알았고, 그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래서 정말 놀랍다고 생각한다.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