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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상 Mar 25. 2016

#1.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

양희은 - 엄마가 딸에게

아티스트 : 양희은
장르 : 발라드
발매 : 2015.05.04
배급 : CJ E&M
양희은의 프로젝트 '뜻밖의 만남' 시리즈 중 네 번째 시리즈인 [뜻밖의 만남...네 번째]의 첫 번째 트랙 타이틀 곡




작년 여름방학, 대학로 극장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주 업무로 맡았던 일은 SNS를 이용한 홍보.

블로그, 카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수시로 확인하고 SNS를 통한 이벤트 또한 기획하면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팀장님께서 여기 극장 연극의 홍보 영상이 유튜브에 떴으니 확인해보고 다른 SNS 쪽에도 올리라는 말씀을 하셨다.

홍보 영상을 진행하니, 스킵 광고가 떴다.

평소 같았으면 '5초 후에 이 광고를 건너뛸 수 있습니다.'만을 무심히 보다가 숫자가 사라지고 Skip이 뜬 동시에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근데 난 누르지 않았다. 단 5초의 광고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광고와 동시에 좋은 노래 또한 발견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얻은 노래가 바로 <양희은 - 엄마가 딸에게>이다.

                                                                                                    

아래는 그때의 스킵 광고이다.


https://youtu.be/LNRBmMues2o

cf. YouTube, [KCC건설] 2015 스위첸 TV-CF 자식의 자식농사



"니들 잘 사는 게 나한테 제일 좋은 집이다"라는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되는 이 광고는 건설 회사의 광고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감성적이고 따뜻하게, 보는 이들이 마음을 어루만진다.

광고가 너무나 인상 깊어 퇴근한 후에 부모님께 보여드리기도 했고, 다음 학기 광고 수업 때 이 광고를 인용하여 발표까지 하였다. 광고 음악 또한 무슨 노래인지 찾아본 후, 내 마음의 음악 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와 집이 멀어 학기 중에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 가끔 집이 그리울 때,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의 내음을 느끼고 싶을 때 이 노래를 꺼내 듣곤 한다.



https://youtu.be/8rWuQI9ljsY

cf. YouTube, 양희은 (Yang Hee Eun) - 엄마가 딸에게 (Mother to daughter) (Feat. 김규리) MV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 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 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줘!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 음악을 들으면서 읽으시는 걸 추천해요.

저도 이 음악을 들으며 그때의 감정을 더 캐치해 적었답니다.

      

                                                                              



어느 날 부엌에서 엄마와 언니, 오빠, 나. 네 명이 다 같이 서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 문득 엄마를 보니 우리 엄마가 정말 작다는 걸 새삼 느꼈다.

우리 삼 남매가 결코 큰 키는 아니었지만 엄마가 작은 편이었기에, 조그만 엄마가 자기보다 큰 세 명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살짝 귀여워도 보였다.


그리고 또 든 생각.

'우리 삼 남매가, 이렇게 덩치 있는 세 명이, 어떻게 이 조그만 엄마 뱃속에서 다 나왔지?'

'한 명도 두 명도 아니고 무려 세 명을, 이만큼 클 때까지 어떻게 다 키우셨지?'


'우리 삼 남매가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서는 얌전한 편이어서 키우기 쉬웠다'라고 엄마는 말씀하시지만,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것이지 우리를 키우는 육아 자체가 결코 쉬운 건 아니었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우리 삼 남매는 정말 엄청 먹어댔다. 고깃집에 가면 보통 고기 굽는 판을 갈지만, 우리는 숯불을 갈 때까지 먹었다. 피자 두 판과 치킨 두 마리를 우리 가족 다섯 명이서 다 먹었고, 2010 월드컵 때에는 경기를 보면서 먹을 야식 메뉴 통일이 안돼서 각자 따로따로 빈대떡, 곱창, 치킨을 시키고, 테이크 아웃해와서 전부 먹었다.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두 근 반에서 세 근은 기본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써보니 우리 아버지랑 엄마도 위장이 만만치 않은 거 같다. 위대(胃大)한 것은 유전인가 보다. 정말 위대한 가족일세.)

이런 먹성 좋은 아이들을 키우느라 우리 아버지랑 엄마, 허리 꽤나 휘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 다섯 명이서 참 복작복작 지냈다. 그 복작복작하는 와중에도 엄마는 항상 마징가제트 같은, 거대한 해결사 같은 존재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사춘기와 슬럼프가 한꺼번에 와서 우울의 늪에 빠졌다. 나에 대한 자존감이 너무 낮아져 괜히 엄마한테 날 사랑하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당연히 많이 사랑한다'라고 하면서, 지금 내 때가 많이 힘들고 내가 사랑받고 있는 건지 궁금할 때라고 했다.

내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며,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며, 엄마는 널 항상 사랑한다고.

그렇게 우울의 늪에 빠진 나에게 언제나처럼 따뜻한 말을 건네주셨다.

항상 그런 존재였다. 엄마는.



엄마의 눈물


집 형편이 많이 힘들어졌을 때,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로 나가면서 오랜만에 교편을 잡으셨다. 교사의 생활만으로도 벅찰 텐데, 집으로 돌아오면 식구들 챙기셨고 반찬거리를 만드셨다. 학교 일과 집안일에 치여 거의 매일 늦게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셨다. 그 약한 체력으로.

그래도 엄마는 식구들 앞에선 항상 강했다. 엄마였으니까.


그러다 엄마의 눈물을 보게 됐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 오빠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왔었다. 오빠의 반항과 거센 말투에 아버지도 그렇지만 특히 엄마가 상처를 많이 받았나 보다.


어느 날 밤, 엄마는 언니랑 내가 같이 쓰는 방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빨개진 눈으로 우리한테 물어봤다. 내가 너네들을 잘 못 키운 거냐고.

그 이후로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의 말을 들어주며 위로해줬던 것 같다. 그리고 엄마가 나간 후, 언니와 나는 엄마의 눈물에 가슴이 아파 우리 또한 눈물을 흘렸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실제로 우리 엄마도 그렇다. 엄마이기에 강하고, 식구들에게 엄마라는 임무를 다해야 했기에 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당신이 아무리 힘든 일 있다 해도, 자식 힘든 걸 먼저 알아주셨다. 당신이 아파도, 자식 걱정을 먼저 하셨다.


자신보다 자식들, 식구들을 먼저 챙기는 게 일상이었다. 우리 엄마는.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이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릴 항상 챙겨주는 건 엄마라고.



나도 엄마가 보고싶어


이 생각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저번 겨울방학 때, 언니와 나는 일본에 계신 외할머니를 뵈러 고베에 있는 이모네로 일주일 동안 가있었는데, 도착한 첫날밤에 이모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 오기 전에 엄마가 이모한테 전화로 '언니, 나도 엄마가 보고 싶다.'라고 말했었다고.

이모에게 그 말을 들은 순간 적잖게 놀랐다. 엄마는 그저 나의 엄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한테도 엄마가 있고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은 게 당연했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언니와 나는 일본에 간다는 기쁜 마음만을 가지고 우리 엄마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전혀 모르고 온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서 떨어져 봤자 학교 기숙사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볼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아니다. 엄마는 한국에 있고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는 일본에 계시니 모녀가 일 년에 한 번도 볼까 말까이다.


이모의 한 마디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고 반성을 했다.

우릴 항상 챙겨주는 엄마지만,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고.

왜 이제야 알았을까.


엄마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 드리기 위해(지금까지의 무지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었다) 한국으로 가기 전날 밤, DSLR로 우리 엄마에게 전하는 외할머니의 영상 편지를 찍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영상 편지를 보여드리고 메일로 영상 파일을 보내드렸다.

내가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지만 부디 조금이나마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보듬어졌길. 그리고 조만간 모녀가 꼭 만나길. 모녀가 하루빨리 상봉해서 엄마의 환하고 예쁜 웃음이 만발하길.





나는 엄마에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나는 엄마의 자식이고, 엄마의 최선이다.

엄마의 사랑 덕분에 행복했고, 행복하며,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만약 지금의 내가, 7년 전의 빨개진 눈을 한 엄마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만 최선을 다하셨다고.

우리 삼 남매는 엄마 아버지 덕분에 잘 컸고,

이젠 우리가 그 은혜를 돌려드릴 차례라고.
잘 키워주셔서 고맙다고.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음악을 쓰는 여자의 더 자세한 내막이 궁금하시다면.

http://blog.naver.com/colday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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