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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새벽 Dec 14. 2018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을 때는 문학동네를 피하라

잘못된 번역의 예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초기작 어디선가 <적과 흑>을 언급한 바 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더이상 아무도 스탕달 같은 건 읽지 않아"라는 대사를 누군가 날렸던 것 같다. 와타나베였나.

얼마 전, 그 <적과 흑>을 읽었다는 사람을 만났다. 어떤 책은 그걸 읽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을 달라 보이게 한다. 그런데 <적과 흑>을 이해하기에 그는 너무 이상한 사람이었다. 우생학을 신봉한다는 그는 이 소설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마리 앙리 벨이라는 귀여운 본명을 가진 스탕달은 서민의 삶을 옹호했지만 실제 서민의 삶에 육박해 들어가지는 못한 낭만주의자로 평가된다. <적과 흑>을 보건대 그는 사실 출세를 바랐던 소시민이자, 출세를 위해 과감하게 베팅할 베짱은 없어 집에서 소설을 썼던 나약한 인간으로 여겨진다. 

1800년대, 보나파르트가 즉위했다. 혁명이 몰아낸 왕정이 다시 들어온 것이다. 청년 쥘리앵은 나폴레옹이 왕이 된 것은 그가 군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군복의 적색(le Rouge)을 동경한다. 하지만 왕정체제 아래서 나폴레옹 같은 출세를 바라기는 어려운 터라, 그는 별 수 없이 사제복의 흑색(le Noir)을 가까이한다. <적과 흑(영문으로는 the Red and the Black)>은 혁명 이후의 프랑스가 마주한 복고 왕정시대를 그려낸 작품이다. 부제로 '1830년대 연대기'라는 말이 붙어 있다.

어제 서점에서 <적과 흑>을 보고 있었다. 민음사가 2004년에 발간한 버전이었다. 번역가 이동렬은 꽤 불친절한 사람으로, "그의 이웃을 부추기는 초조함과 지주의 기벽으로부터 6,000프랑의 금액을 뜯어내는 수완을 발휘했다" 같은 문장을 마구 적고 있다.

오늘은 문학동네가 2010년에 낸 <적과 흑>을 봤다. 민음사보다 최신 것이니 훨씬 번역이 좋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말이다. 그러나 문학동네의 <적과 흑>은 읽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소설의 서두, 소렐 영감 이야기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민음사 버전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는 오백 보쯤 아래의 두 강 기슭에 1아르팡당 4아르팡씩 땅을 소렐에게 주었다.


그런데 이규식이란 작자가 온통 똥을 싸질러 놓은 문학동네 버전은 이렇다.


레날 시장은 제재소에서 아래쪽으로 500피트 떨어진 두 강변에 있는 4아르팡의 땅을 소렐 영감에게 주었다.


<적과 흑>의 쥘리앵은 출세를 위해 시장(mayor)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나중에 시장의 마누라를 꾀어 낸다. 그러니까 시장이 어떤 인물인지를 설명하는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시장인 '레날'이 소렐 영감에게 땅을 주었다는 건, 레날이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을 몰아내고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얘기다. 소렐이란 아저씨가 그쪽에서 제재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를 사고 싶어서 '이전 비용'을 줬다는 얘기인 것.

아르팡은 에이커와 비슷한 토지 단위라고 하니 신경쓸 것 없다. 그것보다는 이 대목의 프랑스어 원문을 보자.

Il a donné à Sorel quatre arpents pour un, à cinq cents pas plus bas sur les bords du Doubs.


프랑스어는 할 줄 모르지만, 라틴어에 대한 기초 지식만으로도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quatre(쿼터) arpents(아르팡) pour(for) un(one). 영어로 하면 4 for 1, 즉 "1아르팡당 4아르팡씩"이란 얘기다. 그러니까 시장이란 작자가 원하는 바를 위해서라면 과감한 짓도 불사한다는 사실이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부분인데 이것을 그저 "4아르팡의 땅을"로 씀으로써, 시장이 마치 관대하고 자애로운 인물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이런 명백한 오역을 포함해, 문학동네의 <적과 흑>에는 번역가의 실력을 의심케하는 구절들이 상당히 많다. 찾아보니 이규식이란 작자는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로, 굿모닝충청이란 매체에서 <적과 흑>이야기를 했던데, 부끄러움을 아는자인지 모르겠다. 

비판은 여기까지 하고, 영어와 영문학에 조예가 깊은 분들께 다급한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적과 흑>의 앞에 인용되어 있는 홉스의 격언은,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게 맞는 걸까? 



원문

Put thousands together Less bad, But the cage less gay (인용구라 원문도 불어가 아닌 영어로 쓰였다)


민음사 버전

수천 명을 함께 넣어봐라, 좀 덜 사악한 자들을. 그렇다고 감옥 안이 즐거울 것이랴.


문학동네 버전

수천 명을 함께 묶어놓으라. 너무 가혹히 다루지 말고. 그러나 감옥이 어디 즐거울 수 있으랴.



나는 민음사 버전이 더 맞다고 보는지라, 문학동네 버전이 더 한심하게 보인다. 하지만 'less bad'에서 'bad가 가리키는 게 사람들이 아닐 수 있는 것일까? 알고 계신분은 좀 알려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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