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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윤 Oct 13. 2019

귀도의 음악하기 (2) 헥사코드 시스템과 계명창법

<도시.樂 투어> 이탈리아, 아레초(Arezzo) 3탄

이 글은 <도시.樂 투어> 이탈리아, 아레초(Arezzo) 2탄, "귀도의 음악하기 (1) 기보법"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귀도가 새로운 기보법을 고안할 수 있었던 데는, 음악에 대한 이론적 탐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본 기보법 외에도 귀도의 음악사에 있어 대표적인 공헌으로는 헥사코드 시스템과 계명창법이 있다.



헥사코드 시스템(hexachord system)


지금의 우리 귀에 어색하긴 해도 오르락내리락 선율이 만들어질 시기, 꽤 오랫동안 음악은 4개의 음으로 구성된 테트라코드(tetrachord)가 기본이었다. 그리고 두 개의 테트라코드를 이어 음계를 만들어 사용했다.


하지만 음악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10도가 되지 않는 음역으로는 다소 한계가 느껴졌을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귀도는 좀 더 자유롭고 넓은 음역을 가질 수 있는 보다 연속적인 음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4음으로 이루어진 테트라코드에서 확장된 형태인 귀도의 6음의 헥사코드(hexachord)는 귀도의 계승자들에 의해 헥사코드 시스템(hexachord system)으로 발전되었다. 헥사코드를 중심으로 공통된 음을 시작음으로 공유하면서 음계를 구성하는 방식인 것이다.


도(ut), 레(le), 미(mi), 파(fa), 솔(sol), 라(la)라는 6개 음으로 구성된 헥사코드 시스템은 오직 '미-파' 간격만 반음이었기 때문에 테트라코드보다는 6개 음으로 보다 확장적인 음역을 만들어 주면서도, 반음을 한 개 포함하는 코드 형태로서 움직임에 있어 예외를 최소로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완전 4도'의 음정을 만들 때, '도-파'에 해당하는 간격이 파에서 시작되는 헥사코드와 만나게 되면 '파-시'는 증4도가 되어버려, '시'음을 반음 내려 간격을 조정해야하는 상황이 생겼다.


따라서 당시 좋지 않은 소리로 여겨졌던 증4도를 피해가기 위해, '파'로 시작하는 헥사코드에 주의하면서 동시에, '도(C)'의 완전4도 위의 '파(F)', 그리고 완전4도 아래 솔(G)'에 해당하는 음을 시작으로 헥사코드를 겹치면서 연속적인 음계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헥사코드 연속 음계 (출처: Britannica)

증4도를 피할 때 임시로 간격 조정을 위해 움직여지는 음(B)의 위치에 따라 해당 헥사코드 자체가 주는 느낌이 달라졌고, 이는 자연스러운(natural), 딱딱한(hard) 그리고 부드러운(soft) 헥사코드로 명칭을 나뉘어 이해된다.


이 때 전체 음계의 가장 첫 음인 낮은 솔(G)에 해당하는 음은 Gamma '도(ut)'에 해당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음역을 나타내는 'Gamut'의 어원이 된다.


지금은 쉽게 사용하고 있는 음계는 고심하여 만들어낸 음들을 수학적으로 빈틈없이 이어내고자 했던 음악가들, 그리고 귀도의 고민이 빚어낸 결과인 것이다.



계명창법(solmization)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도(do), 레(re), 미(mi), 파(fa), 솔(sol), 라(la), 그리고 시(si)로 부르는 음들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계명창법(solmization)도 방금 전에 본 귀도의 헥사코드 시스템과 관련 있다.


6개의 음을 나열한 헥사코드를 고민했지만, 음들을 뭐라고 부를지 고민하던 귀도는 라틴어 찬미가 "Ut queant laxis"의 가사에서 착안하여, 6개의 음에 붙이게 된다. 신기하게도 이 곡에서 'ut', 're', 'mi', 'fa', 'sol', 'la'는 한 음씩 올라가는 형태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Ut queant laxis

음을 부르는 명칭은 동양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다르지만, 서양음악의 계명은 바로 11세기에 시작된 것이다.




당시의 귀도의 명성은 교황 19세(Pope John XIX, 재위, 1024년-1032년)에게도 알려져 그는 교황의 부름으로 로마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귀도는 건강 악화로 로마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아레초로 돌아오게 된다.


귀도에 대해서는 개인적 이야기보다는 음악을 생각하고 풀어낸 글이나 저서가 더 많이 전해진다. 음악에 대해 접근한 그의 방식은 보에티우스(Boethius)와 마찬가지로 수학적이고 철학적이었고, 특히 그의 음악 아이디어를 담아낸 대표 저서 미크롤로구스(micrologus)는 교육적으로 많이 활용되었다.


귀도 자신도 미크롤로구스에서 자신의 연구가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쉽게 글을 썼으며, 이것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직접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헥사코드와 계명창법이 음악을 배우고 익히는데 더욱 유용하게 쓰이도록, 이를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에 대입하여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고, 많은 필사본을 통해 '귀도의 손'(Guidonian Hand)라 불리우며 전해진다. 이후에 많은 저서들과 교육 자료에서 장풍을 날리고 있는 귀도의 손을 발견할 수 있다.



귀도의 바람은 사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중세 시대 이론가였던 요하네스 코토(Johannes Cotto, c.1100-c.1150)는 귀도에 대해 "보에티우스 이후 음악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했으며, 지금까지도 최근 음악 연구를 통해 귀도의 저술들과 업적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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