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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맥타 Apr 11. 2019

파가니니 - 기타를 사랑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1782~1840)


19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니콜로 파가니니. 그를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수식어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일 것이다. 악마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파가니니를 설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수많은 매체에서 끊임없이 파가니니를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과 연결시키며 이러한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있고, 심지어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제목의 영화까지 있다. 


사실 이 수식어는 파가니니가 활동하던 시절부터 그를 따라다니던 것인, 크리스토퍼 누펜의 다큐멘터리 <Paganini's Daemon: A Most Enduring Legend>에서는 다음 일화를 소개하며 이것이 파가니니 스스로가 만들어낸 별명이라고 설명한다.


“[파가니니의 어머니는] 아들이 다섯 살이었을 때 아들의 대단한 미래를 예견하는 꿈을 꾸었다고 주장했다. 꿈에서 그녀는 연기 자욱한 극장 안에 있었다. 그 안에서 장성한 아들이 타르티니의 지휘에 맞춰 위풍당당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기타를 든 붉은 악마와 타르티니가 서로 파가니니의 영혼을 차지하려고 경쟁하고 있었다. 이때 천사가 나타났다. 파가니니의 어머니는 아들이 후세에 이름을 길이 남길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천사는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파가니니는 평생 이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 타르티니가 꿈에서 악마를 보고 <‘악마의 트릴’ 소나타>를 작곡했다는 일화를 파가니니 모자는 알고 있었고 그들은 이 이야기를 이용했다.”  


파가니 친의  이야기가 사실이건 아니건, 파가니니가 자신을 마케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악마적인 이미지를 이용했다는 데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 보인다. 저명한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파가니니가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새로운 기교를 담은 작품을 만들고 연주할수록 이러한 이미지가 더욱 강화되어 갔고, 그의 “수척하고 여윈 모습과 괴팍한 성격”도 여기에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파가니니 초상화 (외젠 들라크루아, 1832)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이미지는 파가니니의 의도를 훨씬 넘어선 수준으로까지 강화되었다. 파가니니가 죽은 뒤 니스 주교가 파가니니의 가톨릭 장례와 교회 묘지 매장을 거부해 그의 시신이 방부 처리된 채로 수십 년을 떠돈 후에야 파르마의 한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이미지는 이렇게 죽어서까지 파가니니를 따라다녔고,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파가니니는 그러한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


연주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


무지막지한 테크닉을 진열하는 그의 작품들을 들어보면 당시 청중이 왜 그를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생각했는지, 그 이유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지만, 사실 그의 기교는 악마에 홀린 결과가 아니라 지독한 연습의 결과였다. 기교적인 바이올린 작품들은 비르투오소 연주자로서 필요에 의해, 그러니까 무대 위에서 연주하기 위해 작곡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이올린과 기교가 파가니니 음악의 전부는 아니었다. 


파가니니의 작품 중에는 무대 위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작곡한 화려한 독주곡과 대조적으로 부드럽고 감미로운 작품들이 있다. 이런 음악을 쓴 사람을 두고 악마에 홀렸다고 하다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할 정도로 아름답고 편안한 작품들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에 바이올린 못지않게 자주 포함되는 악기가 있었으니, 바로 기타였다.


파가니니가 연주하고 베를리오즈가 소장했던 기타(Jean-Nicolas Grobert, 1830년 경 제작) - 앞판에 파가니니와 베를리오즈의 서명이 있다.


사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보다 기타를 먼저 배웠다. 단지 대중 앞에서 직접 기타를 연주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가 뛰어난 실력의 기타 연주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뿐. 그는 기타를 잘 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사랑했다. 만 12세에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카르마뇰라>(Carmagnola)를 작곡한 것을 시작으로 파가니니는 평생 동안 기타를 위한, 혹은 기타가 포함된 작품을 100곡 이상 작곡했다. 


기타가 포함된 작품 중에는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이중주가 유독 많다. 파가니니에게 가장 익숙하고 그가 가장 잘 알았던 두 악기를 위한 음악은 거대한 협주곡이나 기교를 과시하는 무반주 독주곡과는 다르다. 바이올린이 홀로 돋보이기보다는 기타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기타가 연주를 주도하고 바이올린은 그저 거들 뿐이다. 바이올린이 독주 악기로서 돋보이도록 작곡된 바이올린 소나타의 경우에도 현란한 기교의 과시보다는 선율이나 음악적 분위기에 훨씬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확실히 많은 작품이 연주자 자신이 즐기기 위한 음악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적으로 너무나 아름답다. 


파가니니, <기타와 바이올린을 위한 대소나타> 중 2악장 로망스 


물론 기타의 활용이 선율이 강조되는 서정적인 작품이나 바이올린과의 이중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파가니니는 전형적인 현악삼중주와 현악사중주 편성에서 벗어나 바이올린, 기타, 첼로를 위한 삼중주와 바이올린, 비올라, 기타, 첼로를 위한 사중주를 작곡했다. 바이올린 소나타의 반주 악기로 피아노가 아닌 기타를 선택한 것만큼이나 이러한 삼중주, 사중주 편성은 독특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반주가 있는 연주회용 작품에서 반주 파트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기타처럼 들리도록 만든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 파가니니가 단순히 기타가 포함된 편성을 선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이 악기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기타가 포함되는 독특한 편성과 기타의 영향을 받은 음악, 이것은 파가니니의 음악에 그만의 스타일을 부여한다. 무대 위에서 파가니니는 철저하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빛났지만, 작곡가로서 파가니니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악기는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기타였던 것이다.




더 들어보기


파가니니, <43곡의 기리비초> 중 16번 라르게토, 20번 안단테, 43번 안단티노  


파가니니, <소나타 콘체르타타> 중 1악장 알레그로 스피리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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