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L은 동네 공터에서 또래 아이들과 자주 놀았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쯤 이 집 저 집에서 자식들 부르는 외침이 들려오면 동무들은 하나둘씩 제 집으로 돌아갔다. 행상 나간 어머니가 늦게 오는 날이면 L은 혼자 남겨졌다. 아이들과 놀던 왁자지껄도, 게임에서 이겨야 하는 악착스러운 열망도, 미션을 성공한 기쁨의 함성도 사라진 고즈넉한 그곳에서 L은 홀로 남아 어머니를 기다렸다. 다섯 살 위 누나가 데리러 와도 L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서운 아버지가 데리고 오라셨다는 말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L을 귀가시킬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이 곡절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꼴통'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다.
마흔 살의 가을, L은 출장 때문에 찾은 낯선 도시의 어느 골목에 서있었다. 숙소 정하고 저녁 먹으러 가던 중에 걸음을 멈추고 어떤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LP 시대>라고 크게 쓴 이름과 ‘DJ가 있는 음악감상카페’라는 작은 글자.
‘이게 뭐지? 아직도 이런 데가 있다고?’ DJ가 있는 주점이거나 카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수년 전이었는데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50년대 말에 시작, 70년대와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음악다방과 DJ문화는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이 열리면서 급격히 힘을 잃었다. 'coffee shop'이라는 영어가 간판에 붙기 시작할 즈음 DJ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음악다방도 빠른 속도로 줄줄이 문을 닫았다. 90년대에는 주로 생맥주를 파는 호프집에 DJ가 있긴 했지만 이미 명이 다해 가고 있었다.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한 장을 차지했던 음악다방과 DJ문화는 힘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장려한 낙일도 없는 쓸쓸한 퇴장이었다.
지구상에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음악감상 공간과 DJ가 바로 앞 건물에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카페 안 모습이 궁금해진 건 간판을 보자마자였다. 정말 DJ가 있기는 한 건지, 있다면 어떤 사람인지, 정말 있다면 그는 어떻게 방송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 것들이 앞다퉈 달려왔다. 그래도 카페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 이유가 비단 허기를 달래 달라고 시위하는 꼬르륵 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눈부신 청춘을 DJ로 불살랐던 시절의 쓰린 기억 때문만도, 먹고살기 바쁜 현실 때문만도 아니었다. L은 머뭇거렸다. 이미 남의 사람이 된 옛사랑을 다시 만나서는 안 되는 것처럼 왠지 그 카페에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L은 식당을 향해 단호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숙소에 돌아왔을 때도, 다음날 일을 하는 중에도 그 카페가 생각났다.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혹에는 약하고 호기심에는 강한 사람답게 L은 그 카페에 갔다. 출장 일을 마치고 그 도시를 빠져나오기 전날 밤, 무엇에 이끌리듯 그곳에 가고 말았다. L은 자신을 향해 ‘단호한 줄 알았는데 단호박이네’라고 속으로 말했다.
카페는 지하에 있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벽면에 걸린 액자 속 뮤지션, 점점 크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 가슴이 뛰었다. LP 레코드가 있는 음악실, 그 안에 앉아있는 DJ가 눈에 들어왔다. 비현실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예상했던 감정과 비슷하면서도 생경한 감정이 일었다. 감정의 세기는 염려했던 것보다 강했다. 얼마나 강렬했던지 창가 자리를 향해 가던 L이 발을 헛디뎌 자빠졌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직원이라기엔 나이가 많은 남자가 “아이쿠!”하며 달려오지만 않았다면 창피함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보다 나이가 열 살은 더 들어 보이는 DJ를 바라보면서 L은 그리웠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들었다. 음악 두 곡만 신청해서 듣고 떠나오자는 애초의 결심은 쉽게 무너졌다.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날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으로 대화를 요청했다. 그는 예상보다 일찍 L 앞에 앉았다. 둘은 카페 문을 닫는 시간까지 얘기를 나눴다.
스무 살에 DJ를 시작한 이후 쉰넷이 될 때까지 그 세계를 떠나지 않은 남자. 뜻밖에도 그는 카페 주인이 아니었다. 34년 동안 오로지 DJ로 살아왔다. 화려했던 날이 기울어 DJ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때에도 그는 그곳에 있었다. 방송할 곳조차 찾아보기 힘든 세계에 남아 여전히 정통 DJ로서의 기개와 위엄을 지닌 채 고고한 자태로 음악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 유년의 L이 마을 공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외로움을 자처한 또 한 명의 꼴통이 분명했다.
"외롭지 않았어요. 음악이 있잖아요."
외롭지 않았느냐는 L의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무슨 이유로인가 카페가 폐업을 하면 최후의 DJ족은 또 다른 곳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렇게 전국을 떠돌았다. 지금 이 카페도 손님이 너무 없어 곧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다른 곳 알아봐야죠. 방송할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는 그쯤 했으면 됐다고, 이제는 현실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 테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다. 그가 DJ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멜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렸다. 그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던 L 자신의 세월이 대조되어 아팠다.
숙소로 돌아온 L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나온 세월의 기억과 방금 만나고 온 DJ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떠올랐다. 눈보라 속에서 L을 향해 “넌 DJ를 하면 잘할 거야”라고 소리치던 열일곱의 단발머리 소녀였다. 그 해 겨울, 그 애로부터 시작된 음악 전달자로서의 청춘이 필름 속 영화 장면들처럼 스쳐 지나갔다. 숱한 설렘과 정열의 세월, 부끄러움과 회한의 시간들이 사무쳐왔다. 카페에서 넘어질 때 부딪힌 무릎이 그제야 아팠다.
그때부터였다, 음악감상카페를 차리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음악을 사랑하고 전달자로서의 욕망을 놓지 못한 채 방송할 곳을 찾아 헤매는 최후의 종족을 보존하고 싶은 꿈이었다. 쇠망해가는 마지막 모히칸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각오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처럼은 아닐지라도 상징으로나마 마지막 DJ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꿈이었다.
처음 그 꿈을 꾼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은 L의 인생에서 당연히 거쳐 가야 할 길목 같은 것이 되었다. L은 그것을 숙명이라 여겼다. 꼴통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다. 사람이 어찌 모두 희열에 찬 꿈만 꿀까. 때로는, 그 누구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생생한 상상이나 달콤한 욕망이 없는 꿈을 꾸기도 할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버겁고 고단한 길을 걸어야 하지만 그래도 그 여정이 삶의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느끼게 해 줄 수도 있을 테니까.
마흔 살의 가을, 어느 낯선 도시에서 L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생이 다하기 전에 이뤄야 할 의무와도 같은, 결코 피해 갈 수 없을 숙명과도 같은, 어쩔 수 없는 꼴통의 꿈.
‘Yanni(야니)’의 <One Man's Dreams>를 들으며 L의 꿈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