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nni(야니)’의 <One Man's Dreams>를 듣는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다. 유년 시절, L은 동네 공터에서 또래 아이들과 매일매일 놀았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어갈 때쯤 이 집 저 집에서 자식들 부르는 외침이 들려오면 동무들이 하나둘씩 제 집으로 돌아갔다. 행상 나간 어머니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L은 혼자 남겨졌다. 아이들과 놀던 왁자지껄 시끄러움도, 게임에서 이겨야 한다는 악착같은 열망도, 미션을 성공한 기쁨도 사라진 고요한 그곳에서 L은 어두워질 때까지 혼자 놀았다. 다섯 살 위 누나가 데리러 와도 순순히 따라가지 않았다. 무서운 아버지가 데리고 오라셨다는 말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만이 L의 귀가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04년 가을, L은 일주일간의 출장 때문에 방문한 낯선 도시 어느 골목에 서있었다. 숙소를 정하고 저녁밥을 먹으러 가던 중에 한 카페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간판을 올려보고 있었다. <LP 시대>라고 크게 쓴 이름과 ‘DJ가 있는 음악감상카페’라는 글자.
‘이게 뭐지? 아직도 이런 데가 있다고?’ DJ가 있는 주점이거나 카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7, 8년 전이었는데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카페 안 모습이 궁금해진 건 간판을 보자마자였다. 정말 DJ가 있기는 한 건지, 있다면 어떤 사람인지, 정말 있다면 그는 어떻게 방송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 것들이 앞다퉈 달려왔다. 옛사람을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것 같았다. 그래도 L은 카페에 들어가지 않았다(적어도 그날은). 그 이유가 비단 뱃속에서 난 꼬르륵 소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L은 머뭇거린 게 분명했다.
헤어진 지 몇 년 만에 우연히 지하철 역에서 그 애를 봤을 때 L은 머뭇거렸다. 보자마자 반가움에 하마터면 달려가 알은척할 뻔했지만 용케 참아냈다. 이미 결혼을 한 두 사람의 처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날에의 아쉬움과 야속함과 미안한 감정들 때문만도 아니었다. 어쩌면 끊어진 인연이 다시 이어진 후의 미래에 대한 고단하고 아픈 예감 때문에 L은 그 애에게 다가가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음악감상카페 앞에서 주저하던 그날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DJ로 꽃다운 청춘을 불살랐던 그 시절에의 회한 때문만도, 먹고살기 바쁜 현실 때문만도 아니었다. 막연하지만 그 카페에 들어간 이후에 펼쳐질 앞날에의 쓸쓸하고 고단한 예감 때문에 L은 그렇게 망설이다 자리를 떴는지도 모른다.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숙소에 돌아왔을 때에도, 다음날 일을 하는 중에도 그 카페가 생각났다.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미 남의 사람이 된 옛 정인을 다시 만나서는 안된다는 생각과 비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작했겠지만 L은 그 카페에 갔다. 출장 일을 마치고 그 도시를 빠져나오기 전날 밤, 결국 L은 그 카페에 갔다.
지하에 있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벽면에 걸린 액자 속 뮤지션, 점점 크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 가슴이 뛰었다. LP 레코드가 있는 음악실, 그 안에 앉아있는 DJ가 눈에 들어왔다. 비현실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예상했던 감정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생경한 감정이 일었다. 감정의 세기는 염려했던 것보다 강했다. 얼마나 강렬했던지 창가 자리를 향해 가던 L이 발을 헛디뎌 자빠졌는데도 창피함이나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음악실의 DJ를 바라보던 L은 그리웠던 사람을 만나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를 마주하고 싶었다. 그날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조급함으로 대화를 요청했다. 그는 생각보다 일찍 L 앞에 앉았고 둘은 카페 문을 닫는 시간까지 얘기를 나눴다.
스무 살에 DJ를 시작한 이후 쉰넷이 될 때까지 그 세계를 떠나지 않은 남자. 뜻밖에도 그는 카페 주인이 아니었다. 34년 동안 오로지 DJ로 살아왔다. 화려했던 날이 기울어 DJ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때에도 그는 그곳에 있었다. 방송할 곳조차 찾아보기 힘든 세상에 남아 여전히 음악 전달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L의 앞에 있었다.
"외롭지 않았어요. 음악이 있잖아요."
외롭지 않았느냐는 L의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카페를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었던 까닭에 어떤 이유로인가 카페가 문을 닫으면 방송할 수 있는 또 다른 곳을 찾아가야 했다. 그렇게 전국을 떠돌았다. 지금 이 카페도 손님이 너무 없어 곧 폐업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다른 곳 알아봐야죠. 방송할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는 이쯤 했으면 됐다고 할 테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다.
70년대와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음악다방과 DJ문화는 9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히 힘을 잃었다. 'coffee shop'이라는 영어가 간판에 붙기 시작할 즈음 DJ 숫자가 줄어들고 음악다방이 하나둘씩 문을 닫더니 줄줄이 폐업을 했다. 90년대에는 주로 생맥주를 파는 호프집에 DJ가 있긴 했지만 이미 명이 다해 가고 있었다.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한 장을 장식했던 음악다방과 DJ문화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그때까지도 여전히 정통 DJ로서의 기개와 위엄을 지닌 채 고고한 자태로 음악방송을 하고 있는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렸다. 그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던 L 자신의 세월이 대조되어 아팠다. 그가 L의 삶을 물었지만 솔직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재미 삼아 DJ를 잠시 했을 뿐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선배님, 꼭 다시 뵈면 좋겠습니다.”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그리웠던 사람과 작별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말할 때 L은 이미 음악감상카페를 차리겠다는 결연함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숙소로 돌아온 L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나온 세월의 기억들과 방금 만나고 온 DJ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떠올랐다. 눈보라 속에 서 있던 열일곱의 단발머리 소녀였다. 그 해 겨울, 그 애로부터 시작된 음악 전달자로서의 청춘이 필름 속 영화 장면들처럼 스쳐 지나갔다. DJ로서의 숱한 설렘과 정열의 세월, 부끄러움과 회한의 시간들이 사무쳐왔다. 카페에서 넘어질 때 부딪힌 무릎이 그제야 아팠다.
그때부터였다, 음악감상카페를 차리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음악을 사랑하고 전달자로서의 욕망을 놓지 않은 채 방송할 곳을 찾아 헤매는 최후의 종족을 보존하고 싶은 꿈이었다. L은 자신이 차린 카페에서 그 선배 DJ가 방송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도시를 떠났다.
처음 그 꿈을 꾼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은 L의 인생에서 당연히 거쳐 가야 할 길목 같은 것이 되었다. L은 그것을 숙명이라 여겼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다.
L의 나이 마흔의 가을, 어느 낯선 도시에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생이 다하기 전에 이뤄야 할 의무와도 같은, 결코 피해 갈 수 없을 운명과도 같은 어쩔 수 없는 한 남자의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