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가 해주는 수제비가 먹고 싶네

임종 직전 아버지가 찾은 음식

by 이현웅

“그 정도쯤이야 가루것이제.”


내 고향 사람들은 ‘가루것’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하찮거나 쉬운 것이거나 간단한 의미를 표현할 때 그렇다. 밀가루를 재료로 만든 간단한 음식에 빗댄 것이기도 하다.


나는 가루것을 좋아한다. 국수, 수제비, 부침개는 물론이고 빵, 만두, 라면, 자장면, 쿠키, 피자까지 밀가루로 만든 모든 음식을 잘 먹는다.


내 유소년기의 주식은 밀가루 음식이었다. 혼분식을 권장하던 시절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이유보다는 가난 때문이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면 아궁이부터 찾았다. 아침에 어머니가 행상을 나가기 전에 석쇠 위에 구운 빵을 찾기 위해서였다. 허기진 배를 빵으로 채운 그날 저녁에 수제비를 먹어도 나는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먹었다.


도시락을 밥 대신 빵으로 싸간 날이 많았다. 빵이라고 해봤자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 그저 막걸리와 소금을 넣은 게 전부인 것을 먹기 좋게 깍두기보다 좀 더 큰 모양으로 잘라 도시락에 넣었다. 하지만 나는 그 빵을 먹지 못했다. 쌀밥이 채워진 도시락을 가져온 급우가 내 빵과 바꿔 먹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내게는 주식인 가루것이 그들에게는 별미였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내 빵 도시락을 먹기 위해 예약까지 해야 했다.


“아이고 그때 생각 허믄 맘이 아퍼. 우리 막내 쌀밥 한 번 지대로 못 먹고 컸당게. 니 아부지가 쌀밥 한 번 먹일라고 동네 일하러 가서 주는 쌀밥 안 먹고 집으로 가져오고 그렸잖여.”


어머니의 얘기를 듣던 중에 문득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동네 부잣집 논일을 하러 가신 아버지가 저녁 식사에 나를 데리고 가셨던 날이었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불청객인 내게도 흰쌀밥 한 그릇을 따로 주셨지만 아버지는 밥 생각이 별로 없어서 나눠먹으면 된다며 극구 사양했다.

몇 숟가락 뜨시던 아버지는 남은 밥을 내게 다 먹으라고 하셨다. 윤기가 흐르는 흰쌀밥을 먹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밥을 남겼다. 더 먹으라고 권하는 집주인 어른들의 성화에도, 밥을 싸주겠다는 아주머니의 말에도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와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칼국수를 해달라고 하셨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어머니는 그 밤에 칼국수를 해주셨고 아버지와 나는 정신없이 먹었다.


“맛있나?”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얼굴에도 언뜻 미소가 떠오른 것 같았다.



나는 어쩌면 어린 날에 행복의 정의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갖지 못한 값비싼 것이거나 풍요로운 것에서보다는 내게 이미 존재하고 익숙한 것들에서 행복할 수 있음을 말이다.

열세 살 여름,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이듬해 늦가을의 어느 날 아침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임자가 해주는 수제비가 먹고 싶네.”

“무신 아침부터 가루것을 찾는대요?”


어머니는 타박하듯 그렇게 말하셨지만 얼마나 먹고 싶으면 그럴까 싶어 서둘러 수제비를 끓여 방으로 가져갔을 때 아버지는 누워계셨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수제비를 먹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다.


“뭐시 좋다고 마지막까정 가루것을 찾았능가 몰러. 흰쌀밥도 아니고. 먹지도 않고 가믄서 말여.”


어머니는 아버지의 임종을 기억할 때마다 그렇게 말하시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징그럽게 많이 먹었는디 질리지도 안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내게 어머니는 그렇게 묻곤 하셨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소화력은 떨어지고 지인들은 건강에 좋지 않으니 가루것을 피하라고 조언한다. 세상이 바뀌어 가루것보다 더 맛있고 영양 있는 음식들이 많지만 나는 여전히 가루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타고난 체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가루것을 먹을 때마다 떠올리는 기억과 느끼는 감성은 단순한 체질의 차원만은 아니다.


수제비를 먹을 땐 가마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 때문에 손을 찬물에 담갔다가 반죽을 떼던 어머니의 부지런한 손길이 떠오른다. 이제는 구순이 넘어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수십 년 전의 곱고 아리따운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가슴을 파고든다. 칼국수를 먹을 때면 어머니의 노동력을 줄여주기 위해 국수 빼는 기계를 사 오셔서 어린애처럼 열심히 설명하던 속정 깊은 아버지, 쌀포대 대신 밀가루 포대를 어깨에 메고 마을 신작로를 걸어오시던 건장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너무 일찍 이별한 안타까움에 젖곤 한다.


가루것은 끼니라기에는 부족하고 건강에 좋지 않은 멀리해야 할 음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있어 가루것은 가족을 향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고 가난했지만 오순도순 살며 행복했던 그 시절에의 그리움이다.


아버지가 세상과 작별하던 그 날 아침, 어쩌면 아버지는 당신의 생이 다 한 것을 아셨는지도 모른다. 부부로서 더는 함께 할 수 없는 마지막 길에서 아내를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으로 어머니에게서 가장 익숙한 수제비를 먹고 싶다 하셨는지도 모른다. 흰쌀밥보다는 따뜻한 손길과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가루것이 떠나는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으리라 본능적으로 생각하셨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구순이 넘은 어머니와의 이별을 생각하며 가루것을 떠올리는 것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의 노스탤지어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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