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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웅 Dec 29. 2022

오만과 진심

1장 꿈 이야기

2016년 늦여름, 서울에 있는 그 카페에 갔다. 카페를 준비하고 있는 L에게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카페를 가보자는 DJ 후배 K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L은 K에게 카페에 가서 자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12년 전 낯선 도시에서 찾아간 음악감상카페에서 경이로움에 빠져 제대로 자빠졌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황학동 작은 거리 어느 허름한 건물 2층에 그 카페가 있었다. 수만 장의 LP, 명품 오디오, 어두운 조명, 손님을 맞이하는 의례적인 인사조차 하지 않는, 페도라를 눌러쓴 주인이 있는 카페. 

“손님이 와도 인사를 안 하네. 딱 보니 손님 없게 생겼네요.”

K가 남자 쪽을 힐끗힐끗 보며 구시렁구시렁했다. 혹시라도 그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주인에게까지 들릴까 봐 L은 조마조마했다. 두 사람의 방문 목적은 카페 운영에 관한 얘기를 직접 듣고 싶어서였는데 혹시라도 카페 주인이 K의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불쾌해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 때문이었다. 


주인과의 대화는 시도조차 쉽지 않았다. 그의 굳은 표정 때문이었다. 평소에 K의 말에 동의하는 편이 아니었던 L이지만 주인의 모습을 보면서 카페를 찾는 손님이 없겠다는 그의 말에 동조하고 싶었다. 그대로 떠나오기에는 공들인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워서 어떡하든 주인과 대화를 해야 했다. 처음 본 여자에게 전화번호를 따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내서 주인에게 대화 요청을 했다. 카페 주인은 의외로 흔쾌히 수락했다. 주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시각에 손님이 없어서 주인과 오랜 시간 대화하고픈 목적을 달성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따르거니 받거니 몇 순배의 술이 돌면서 대화도 점점 무르익어갔다. L은 자신이 방문한 목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부럽습니다.”

L은 진심으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카페 주인은 미소인지 얼굴을 찡그린 것인지 구분이 안 가는 뜻 모를 표정으로 그렇게 묻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죠.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일하니까 좋겠다면서요. 그럴 때 속으로 그러죠. 직접 해봐!”

세 사람은 모처럼 웃었다.

“밖에서 보는 거랑은 다른 점도 많죠?” 

이미 전화로 여러 카페 주인의 얘기를 들어 운영의 어려움을 알고 있던 터였다.

“쉽지 않아요.”

카페 주인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 0.1초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술기운 탓이었을까. 세 사람의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카페 주인은 자신의 얘기를 담담하게 들려줬다. 


음악을 좋아한 동갑내기 부부는 나이 60에 음악감상카페를 차렸다. 카페 경영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모아 놓은 돈을 거의 쏟아붓고 나서야 개업할 수 있었다. 기대와 희망이 실망과 두려움으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님이 너무 없었다. 개업 일 년쯤 되었을 때 카페를 계속해야 할 것인지 고민했다. 어느 때쯤에는 단골도 생기고 입소문을 통해 찾는 손님들도 조금씩 늘어났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두 사람은 지쳤다. 단골은 점점 줄어들고 어쩌다 온 손님들도 썰렁한 분위기 때문에 도로 나가기 일쑤였다. 아내는 건강이 나빠졌고 우울증을 앓았다. 악순환이 계속됐다. 혼자 하다 보니 서비스의 질과 양이 떨어지고 피로에 지친 주인 모습은 카페 분위기를 더 가라앉게 했다. 막막한 미래가 두렵지만, 그보다는 카페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게 급선무가 됐다. 그가 처음 L과 K를 보고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던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페를 내놓은 지 꽤 됐는데 그마저도 뜻대로 안 되네요.”

이야기를 듣고 있는 L은 난감했다. 카페를 하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던 까닭에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어렵기만 했다. 침묵을 깨뜨린 것은 카페 주인이었다.


“카페는 왜 하시려고요?”

기습과도 같은 질문에 L이 머뭇머뭇하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좋아하는 것과 경영은 다르더라구요. 잘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꼭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돈 많이 들여서 인테리어를 하고 비싼 스피커에 LP 많으면 장사가 잘될 줄 알았어요. 그런 것들은 소품일 뿐인데 말이죠. 카페를 운영하는 철학도 없었고 길게 보지도 못했던 겁니다. 좋아하고, 잘하고, 열심히 하는 것 이상이 필요한 일이에요. 카페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만둘 때가 돼서야 알게 됐네요.”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카페 주인을 보며 L은 마음이 아팠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벽녘이 돼서야 고단한 심신으로 숙소에 돌아왔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카페 주인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좋아하고, 잘하고, 열심히 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경영 철학이 있어야 하고 길게 봐야 한다.” 카페를 차리겠다는 결심이 흔들렸다. L은 침묵했고 K의 얼굴은 어두웠다. 

“쉽지 않겠네요.”

K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 한 마디에 담긴 의미를 L은 잘 알고 있었다.      

“해야겠다, 카페.”

며칠 후, L이 그렇게 말했다. K가 놀란 표정을 지을 것은 당연했다.

“힘들지 않겠어요? 잘되는 데도 거의 없고 카페 주인들 얘기 들으니까 할 일이 아닌 것 같던데요.”

K의 말에는 염려와 불안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해야겠다.”

“그건 또 무슨 말이래요?”

L이 처음 카페를 차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DJ들에게 위안이 되는 상징을 만들고 싶었다. 시장조사 차 여러 명의 카페 주인들과 얘기를 나눈 뒤로 L은 자신이 카페를 차려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갖게 됐다. 카페를 차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카페로 성공시키고 싶었다. 슬픈 카페 주인을 만나고 난 뒤 그 야망은 더 확고해졌다. 이상한 핑계 같지만, 음악카페가 잘되는 곳이 많았다면 그런 식의 사명감에 불타오르지 않았을 거다. 조금의 과장 없이 L의 마음은 음악감상카페의 롤 모델을 만들고 싶은 거였다. 아, 이토록 강한 자신감의 근거는 뭘까? 근거가 있기는 있을까? 있었다. 


L의 열대여섯 살 시절, 앞 동네에 살던 그 애는 예뻤다. 하도 예뻐서 동네 남자애들이 말 한 번 붙여보지도 못하고 속으로 애만 태웠다. 인근 동네 형들까지 이런저런 방법으로 그 애한테서 환심을 사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렇게 도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예뻤던 그 애가, 도회지에서 내려온 연예인급 수준의 외모가 아니면 절대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애가, L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왔다. 심지어 평생을 같이하자고 했다. 곡절 끝에 그 애의 구애를 받아들이면서 L은 또래 아이들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됐고 선배들에게는 수시로 괴롭힘을 당하는 신세가 됐다. 그래도 L은 최 진사 댁 셋째 딸을 차지한 칠복이처럼 의기양양했다. 그 일 때문이었을까? 그 후로 수십 년을 살면서 이리저리 깨지고 넘어지면서도 자신감에 젖어 살았다. ‘다른 사람은 안 돼도 나는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쭙잖았고, 무모했고, 오만했다. L도 그쯤은 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앞뒤 없고 거만함이었을지라도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음악을 좋아해서 전달자 역할을 하는 DJ와 음악을 들을 공간을 마련하고 운영하는 카페 주인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고 싶었던 그 마음은 과장 없이 진심이었다.


그 해, 2016년 여름 끝에서 L은 다시 힘줘서 말했다.

“해야겠어, 카페.”

드라마라면 이쯤에서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가 흘러나왔을지도 모른다.


 너를 둘러싼 그 모든 이유가

 견딜 수 없이 너무 힘들다 해도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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