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네 번째 편지
(*글에 나오는 호칭은 딸 슬휘 기준입니다)
"엄마랑 아빠는 제가 태어나는 걸 원치 않았대요."
슬휘야! 네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단다. 마음이 아팠다. 오해 한 것이지만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어 짠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태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임신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는데....
앞 선 편지에서도 말했지만, 그때 나는 인생의 쓰디쓴 바닥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엄마가 임신 소식을 말했을 때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네가 와 준 것은 분명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아빠 될 자격은 없지만, 그때부터라도 그 자격을 갖추고 싶었다.
가능한 한 모든 일을 해야 했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한 일이라곤 방송이 거의 전부였던지라 특별한 기술도 없고 자격증도 없어 안정된 직장은 꿈도 꾸지 못했다. 우선은 할 수 있는 일에 매달렸다. 종로와 서울역 음악다방 세 군데에서 방송을 했다.
몇 년째 해오던 일이어서 별 어려움은 없었는데 시간이 문제였다. 첫 번째는 한 시부터 네 시, 두 번째는 네 시부터 일곱 시, 세 번째는 일곱 시부터 열 시 반까지였다. 끝나는 시간과 다음 장소의 시작하는 시간이 같은 게 문제였다. 세 군데는 해야 목표 수입이 됐기 때문에 한 군데도 포기할 수 없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가까운 곳에 있어 그나마 나았다. 다음 DJ에게 양해를 구하고 10분 전에 마치고는 뜀박질을 했다. 두 번째 근무지에서 방송하는 DJ도 먼 곳에 있는 다음 근무지로 바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늦으면 안 되었다. 마지막 멘트를 하자마자 후문으로 뛰쳐나와 계단을 내려가고 수많은 종로 인파를 뚫고 달렸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출입문을 열고 다방 안으로 들어서면 끝 곡이 흐르고 있었다. 숨 고를 새도 없이 음악실에 들어가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세 번째였다. 서울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철로 세 개의 정류장을 가야 했다.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두 번째 근무지에서 10분 먼저 끝내고 뜀박질을 해도 제시간에 도착하기는 불가능했다. 서울역 지하철에서 내려 세브란스 병원 맞은편으로 올라가던 계단은 어찌도 그리 가파르던지.
다방에 도착하면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힘들 만큼 숨이 찼다. 그래도 늘 5분 이상 지각이었다. 그 시간에 방송하던 DJ의 싸늘한 눈길을 매일 받아야 했다. 그런 날이 몇 달 계속되면서 나는 지쳤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내 의도와 상관없이 그런 형태의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음악다방은 DJ에 따라 단골손님이 움직였다. 그런 이유로 DJ가 가까운 거리의 두 곳에서 방송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불문율과도 같은 묵시적 규칙을 어긴 내 행위는 곧 들통이 나고 말았다. 결국 나는 종로에 있던 두 곳에서 모두 해고를 당했다.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그때로부터 슬휘 네가 태어난 이후 몇 년까지 이어진 내 직업의 변천은 실로 변화무쌍했다. 건강식품 판매원, 먼지 풀풀 나는 제본소 지하실에서의 노동,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철공소에서의 일은 심신을 고단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슬휘야!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아빠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썼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때의 내가 얻은 용기와 힘이 너를 통해서였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이전의 불가능한 일이 네가 있음으로 가능해졌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음이다. 네가 내게 오면서 나는 성숙해졌고 더 진지한 삶의 자세를 갖추게 되었다.
어쩌면 부모의 자격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를 통해 비로소 갖추어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의 자격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확신하건대 지구상의 그 누구도 부모로서 완벽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네가 잉태된 무렵의 나는 그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정착하여 살 집이 없고 모아놓은 돈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부모로서 자격이 부족하다고만 느꼈다. 안정된 직장이 없는 상황에서 태어날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파서 한 말이었다.
그러니 슬휘야! 인제 그만 아빠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풀어다오. 네가 태어나는 것을 원치 않은 것이 결코 아니었음을 믿어주기 바란다. 오히려 너는 내게 무한한 기쁨이었고 힘의 원천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간직해온 방송인으로서의 꿈과 바꿀 수 있을 만큼 너는 내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단다.
너는 내게 보석이었다. 때로 그 보석에 흠이 갈까 봐, 혹시라도 그 보석을 잃을까 봐 지나친 관심을 쏟아 너를 힘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네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너를 원치 않은 적이 없었단다. 그러니 이제 오해를 풀어다오.
내 딸 슬휘야! 너는 지난 30 년 동안 언제나 내게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음을 잊지 말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