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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탐 Jun 07. 2023

3년만에 돌아온 키드밀리의 정규 2집 [BEIGE]

interlude. 를 중심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식 서사에 대하여

2023년 5월 30일 키드밀리가 정규 2집 [BEIGE]를 발매했다. 2020년 4월 17일 발매한 정규 1.5집 [BEIGE 0.5]이후 3년만이다. 


정규 2집, [BEIGE]


[BEIGE]는 [Cliché]처럼 서사에 중점을 둔 앨범이 아니다. 그보다는 키드밀리가 만들고 싶었던 노래들을 모아놓은 '플레이리스트'에 해당한다. 음악을 막 시작했을 때 키드밀리 자신이 '와 멋있다..'라고 생각했던 음악들 말이다.


즐기면서 작업할 수 있는 음악이 뭘까? 음악을 시작했을 때 키드밀리가 하고싶었던 음악이 있었을텐데. 기억의 발자취를 돌아가면서 작업했던 앨범이에요. 힙합씬에 들어왔을 때 '와 멋있다' 했었던 신나는 노래들이 하고싶었습니다. - DAZED Korea, 2023


이는 앨범명이 [BEIGE]인 이유이기도 하다. 황인종인 우리가 태어나마자 처음으로 보는 '색'은 살색(BEIGE)이다. 즉 이번 앨범에서 BEIGE는 '최초, 본연'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리고 이번 앨범의 제작 배경은 키드밀리가 힙합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멋있어 보였던' 음악을 하기 위함이다. 


둘을 연관지어보면 '꿈의 본연', '힙합씬에 새로 태어난 키드밀리가 처음으로 봤던 색'이라는 의미에서 앨범명을 [BEIGE]로 지었음을 알 수 있다.





17곡이라는 엄청난 분량을 제외하고, 이번 앨범에서 눈에 가장 띄는 부분은 트랙 중간마다 삽입돼있는 'Interlude'이다.



Interlude는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장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페스티벌에서 아티스트의 무대가 끝나면 무대를 청소하고, 그 뒤에 다른 아티스트가 무대를 이어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BEIGE]는 하나의 서사를 풀어내고 있다기 보다는 플레이리스트에 가까운 앨범이다. 주제도 트랙마다 달라지고, 사운드도 달라진다. 자칫하면 무질서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앨범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키드밀리가 삽입한 일종의 장치에 해당한다. 


한편으로는 Interlude 로인해 플레이리스트 같았던 앨범이, 옴니버스처럼 각각의 주제를 담고 있는 앨범으로 변한다. 이후 이어질 해석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기에, 너무 진지하게 보기보다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ron interlude.

(BEIGE theme, HONDA!, Simple Poem)


https://www.youtube.com/watch?v=kG8ZoxXxvcE&ab_channel=KidMilli-Topic


서부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를 연상시키는 사운드로 앨범이 시작한다. ron의 가사는 열정넘치는 젊은 카우보이보다는, 황혼기에 접어든 노년의 카우보이를 연상시킨다. 키드밀리라는 인물의 인생을 풀어놓은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난 원했어 그저 love and peace
돈 땜에 잃어버린 친구도 원래 안 그랬어
순수함은 가면으로만 보이네
...
Money doesn't make sense of hapiness
We gotta know this shit - <ron interlude.>



사랑과 평화를 원했다는 키드밀리지만 'BEIGE theme'에서는 모두까기 인형으로 변한다.


Hate rappers type of rich flex
They're all cap*, I hate rappers (*cap : 과장, 뻥)
Hate rappers type of 여자 뒤나 쫓는 damn
저 드릴 래퍼들은 UK 발음을 억지로 뱉네 - <BEIGE theme>


이어지는 트랙 'HONDA!'의 가사는 오만하게까지 느껴진다.

'부들거려도 부러워 하는 거 말고 니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는데 ㅋㅋ' 딱 이 느낌이랄까.


하늘 위까진 와야 내 발이 보여
휘청거려 내 시계 바늘
니 다음생까지도 영원하지
Stackin' up, stackin' up, stackin' up, stackin' up - <HONDA!>


자신감 있는 태도를 넘어서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키드밀리였지만, 이어지는 트랙 'Simple Poem'에서는 그가 갖고 있는 고뇌에 대해 풀어놓는다.


은행에 갈 때면 모든사람이 내 잔고를 아는 것 같은 기분이 
은행엔 뭔가 다 몇 천만원씩 있을 것 같았어 
참 멀어보였지 은행엔 그래서 전부 다 
나에 대한건 불쌍히 볼 것만 같았지
...
많은 피해망상들이 날 거쳐 가네
밤은 밝고 시끄러 내 동넨 잠을 미뤄 놔 다시 - <Simple Poem (feat. Rad Museum)>


피처링으로 참여한 Rad Museum이 맡은 훅에서는 그의 고뇌가 더 잘 드러난다.


시끄러워 내 머릿속에 voice
거실 창밖에 밤은 탁해 보였어
...
커리어가 쌓인 만큼 고민이 쌓이나 음
그럼 언제 달리나, 이런 잡생각들이 날 덮쳐 - <Simple Poem (feat. Rad Museum)>


키드밀리는 과거 [AI, theplaylist]의 '동물원'이나 [Cliché]의 'Intro'에서 피치를 극적으로 올리거나 낮춤으로써 하나의 캐릭터, 또는 '과거의 나'를 곡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ron과 Rad Museum의 목소리는 '키드밀리의 속마음' 내지는 '현재 키드밀리가 느끼는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ron interlude.를 재구성해보면 아래처럼 재구성 할 수 있지 않을까.


BEIGE theme (열정넘치는 래퍼의 흔한 스웨깅) → HONDA! (성공을 맛본 뒤 더 짙어진 자신감) → Simple Poem (심해지는 압박감과 몰려오는 현타) → ron interlude. (결국 남는 건 돈이 아닌 사랑임을 깨달은 키드밀리)


 


pH-1 interlude.

(Still friend?, R.I.P, Test Me?)


https://www.youtube.com/watch?v=GzPsLRpqPOs&ab_channel=KidMilli-Topic


ron interlude. 의 끝에 이르러 남는건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사랑' 키워드를 그대로 이어받아 pH-1 interlude. 를 시작한다.


*사운드적으로는 [BEIGE 0.5]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시절의 밀리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pH-1 interlude.를 마음에 들어할 것.


Am I alone? 나만 그래? 웃고있지만
I'm feeling so stressed
매일 내 둥그런 머릿속엔 각진 마음들로 가득하네
난 말은 안해도 죽고 싶을때가 참 많아
날 사랑해주는 사람땜에 살아 - <pH-1 interlude.>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많겠지만, 첫 번째 대상은 전 여자친구다.


더 멋져졌어 몇 달 못본 새
Colorful vivienne, hanging on your neck
금세 왔다 갈려 했어 아는 사람 있다 해서
...
Are we still friends?
알려줘 난 몰라 지금 우리가 어떤 사인지
Are we still friends?
그냥 이란 말로 덮여버려 내 지난 날이 - <Still Friend? (feat. pH-1)>


이어지는 트랙 'R.I.P'에서도 '사랑의 대상이 전여친이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R.I.P에 등장하는 대상은 전여친보다는 '힙합 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너에게 넘어가 바보가 돼 
차라리 그냥 널 안을래 계속 
가져가 내 전부 
마치 우리 결혼 한듯 
아예 내 숨을 앗아
...
Yeah 얼마나 더 내가 비참해져야
니 속이 시원할까? - <R.I.P (feat B.I)>


'R.I.P'에서 키드밀리는 '사랑의 대상' 때문에 숨을 멎을 정도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주도권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그 대상은 키드밀리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 '얼마나 더 내가 비참해져야 니 속이 시원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이어지는 트랙 'Test Me?'의 가사를 보면 그 대상이 '전 여친' 보다는 '힙합 팬'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대상을 '전 여친'으로 두고 보면 뜬금없이 헤이터 얘기를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힙합 팬'을 대상으로 두고 본다면 헤이터 얘기가 나오는 흐름이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But 아직 all my opps* still tryna test me (ooh) (*opps : 적, 반대편)
All these kids wanna see me
You can't test me (ooh) - <Test Me?>



Leellamarz interlude.

(추월, BNC, Coupe!, Lost and found freestyle, Let Me Down!, 25)


https://www.youtube.com/watch?v=YCYO3Oggua0&ab_channel=KidMilli-Topic


pH-1 interlude. 의 끝에 이르러 키드밀리의 초점은 '헤이터'로 옮겨졌다. 그래서일까 Leellamarz interlude. 에서는 헤이터들에게 '갈!'을 시전한다.


Leellamarz interlude. 는 음악만 들어도 이해가 가기에 별 다른 해석을 하지는 않고 넘어가겠다.




KidMilli interlude.

(BORA)


https://www.youtube.com/watch?v=Ypdmsb47nAU&ab_channel=KidMilli-Topic


ron interlude, pH-1 interlude, Lellamarz interlude를 거쳐 마지막에 도달한 곳은 바로 KidMilli interlude이다. 


이전의 interlude 에서는 ron, pH1, Lellamarz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속마음을 말했던 키드밀리였다. 하지만 KidMilli interlude에 이르러 밀리는 자신의 목소리로 본인의 속마음에 대해 털어놓는다.


한다면 끝까지 했어
결과는 맡겼어 계속
망상과 불안은 내손

망상과 불안은 먼지
랬거든 트럭뒤의 뿌옇게 진한
흩어질 것처럼 안없어지는

너를 품어주고 싶었네
집에서 비춘 날 봤어 내
모습은 제일 싫어 하던 개였고
너를 품어주고 싶었네 - <KidMilli interlude>


뒤이어 앨범의 마지막 곡. 'BORA'가 흘러나온다. 의미부여 일 수 있겠지만, 필자는 'BORA'가 앞선 16곡의 정리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원해 난 좋은 분위기
쉽게 살다 갈수있지만 싫은건 말해야겠어 

→ ron interlude. 에서 사랑과 평화를 원한다 했으면서 광역 도발을 건 이유

Festival 뒤 애들이 나처럼 되겠대
Can do this shit better, huh

→ 'HONDA!'의 연장선 격인 스웨깅


Asain 목걸이가 빛나니 사람들은
이상히 쳐다봐 뭐 이상한 일은 아냐 내겐
어련해 저 시선들 내 평생 짐
어렸을때부터 지금껏 쭉 그랬어
어렸을때부터 많이 달랐지
그때부터 별일 들이 많이 있었어

Man, you'll never know this shit, where I came from
You'll never know this shit

→ pH-1 interlude. 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헤이터들에게 전하는 메세지

즐겨 너네 인생, 꺼 내게 신경
나도 끌테니 내 조명 같이
첨부터 우리는 마주칠 일이 없었잖아

→ Leellamarz interlude. 에서 화를 냈던 키드밀리였지만 결국 그가 깨달은 건 '서로 갈 길'을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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