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알고리즘의 인도로 인구 절벽과 관련한 PD수첩 영상을 보게 되었다. 사실 인구와 관련한 영상을 찾아보는 것은 아니라서 이 영상이 메인 화면에 있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일단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인구 증가폭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지만 실제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것은 2021년부터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인구 조사를 하기 시작한 이후로 인구가 감소한 것은 2021년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전부터 저출산 고령화, 인구 감소에 관한 논의가 많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8명이다. 합계출산율이란 가임기간의 한 여자가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수를 말한다. 가임기간은 15세부터 49세의 기간이니 다시 말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가 낳는 평균 출생아수가 0.8명이라는 것이다. 통계청에 나온 자료는 2021년이 마지막이다.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2022년 출산율은 0.78이라고 한다. 주요 OECD 회원국 중 8년째 출산율 꼴찌인데, 우리나라 바로 위에 있는 이탈리아의 출산율이 1.24인 것을 보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꼴찌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아이를 낳지 않게 된 것일까?
어른 세대는 나이 들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하고, 젊은 세대는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자식을 어떻게 낳냐고 한다. 내가 위기인데 자식을 어떻게 낳겠냐는 것이다.
이 영상에서는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로 수도권 집중화를 이야기한다. 지방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수도권에서 일하는 많은 젊은 사람들은 자리를 잡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그런 사람들은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일자리는 수도권에 몰려있고, 젊은 사람들은 선택지가 별로 없다. 일자리를 구하려면 수도권으로 와야 하는데, 수도권의 높은 집값과 생활비를 감당하다 보면 돈을 모으기란 정말 힘들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돈이 없으면 결혼하기 힘들다. 우리 부모 세대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큰 평수로 옮겨가는 것이 가능한 시대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일단 사람들의 눈높이가 다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너무나도 잘 아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 친구가, 내 주변의 누구누구가, 아니면 SNS의 누구가 어떻게 신혼 생활을 시작하는지 잘 안다. 결혼해서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아야 한다면, 지금보다 더 열악한 주거지에서 살아야 한다면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반지하 단칸방이 앞으로는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구질구질하게 시작하는니 차라리 혼자를 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결혼조차도 이렇게 힘드니 출산을 생각할 여력이 있을 리가 없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 이기적이어서 출산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희생하지 않기 위해서 출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도 똑똑한 사람들이다. 젊은 세대들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이 결혼을 해서 출산을 하게 되면 그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이다. 돈 많은 부모의 자녀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을 자신의 자녀가 전혀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출산을 선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
영상 속 인터뷰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다면 이미 중산층이라는 것이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가 둘이나 있다.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나도 중산층이다. 어쩌다 나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둘이나 낳고 중산층의 반열에 들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큰 이유가 없다. 만약 내가 10년 만, 아니 5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나는 결혼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결혼 적령기에 운 좋게 좋은 사람을 만났고, 집 값이 지금처럼 높지 않아서 우리가 가진 돈으로 신혼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신혼집을 마련했다는 것이 자가라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결혼해서 돈을 모으면서 아이를 낳고 집도 사는 행운을 누렸다. 큰 낭비를 하면서 산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아끼면서 살지도 않았다. 내 집 마련이 가능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시대를 잘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내 월급으로 집 장만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나보다 정확하게 5살이 어린 내 직장 동료 한 명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늦게 대학을 졸업해서 취업이 조금 늦었는데, 서울에서 살다 보니 돈을 거의 모으지 못했다고 한다. 주거비용만으로도 거의 200만 원이 들어가서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월세가 조금 더 저렴한 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래도 월급 중 많은 부분이 주거비로 들어간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니 얼마나 벌지 뻔하다. 월세 내고, 밥도 먹고, 옷도 사고, 어쩌다 영화도 보고 나면 남는 돈이 있을지 걱정이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돈을 모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단다. 매달 적자라니, 내가 위기라는 인터뷰 속의 말은 정말 과장이 아니다.
내가 위기인데 결혼과 출산을 생각이나 할 수가 있을까?
그런데 우리나라의 저출산 정책은 대부분 아이를 낳은 이후에 대한 지원책으로 채워져 있다. 2018년 9월부터 아동수당이라고 하여 대한민국 국적의 만 7세 미만 모든 아동에게 매월 10만 원을 지급했다. 최근에는 정책이 바뀌어서 2023년 1월부터 만 0세 아동이 있는 가정에 매월 70만 원의 부모급여를 지급한다. 만 1세가 되면 이 수당이 월 35만으로 바뀐다.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에는 이런 혜택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혜택이 생기니 참 다행한 일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든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드는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하고 아이를 낳는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다른 어떤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없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을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예전 사람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이가 차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꼭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결혼도 하나의 선택이라는 말이 나의 2~30대 시절에는 그냥 광고 문구 같은 것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람들이 점점 결혼을 하지 않게 되면 앞으로는 결혼을 선택하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지게 될까?
젊은 사람들은 과연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선택하지 못하는 것일까?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있어도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결혼을 선택하지 못한다. 돈이 없는데 결혼을 어떻게 하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출생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결혼한 부부의 자녀이다. 일단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니 출산율이 올라갈 리가 없다. 혼인 건수는 점점 감소하고 있으니 앞으로 출산율이 반등할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출산율을 올리려면 청년들이 결혼을 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집값이 폭등한 이후로 경제적인 어려움은 더 가중되고 있고, 이것이 앞으로 해결될 기미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앞으로는
"아이 키우는 것이 무슨 벼슬이냐도 되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로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한 커플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해 주고, 아이가 있는 가정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고, 아이가 있는 부모가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 유연근무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결혼을 한 여성들은 일과 육아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데, 이 두 가지를 다 해내기란 정말 힘들다. 그래서 많은 기혼 여성들이 출산과 경력이라는 두 선택지 중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니 여성들이 결혼을 해도 아이를 돌보면서 일과 경력을 추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해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결혼을 해도 일과 경력을 포기하지 않고 잘 해낼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현재의 출산율 저하를 해결할만한 파격적인 정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출산율은 쉽게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국가에 밝은 미래가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출산율을 올리려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손해일 정도로 많은 혜택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결혼보다는 혼자를 택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저출산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 요즘에는 '차라리 그 돈을 개인에게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출산율이 이 지경인데 현재 대부분의 다자녀 혜택은 3자녀 가정에게 돌아가고 있고, 그마저도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 3자녀 가정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체감하지 못한다. 출산율이 계속 떨어진다면 앞으로는 국가의 존속마저 위험한 시대가 올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중산층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