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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권하는 사회가 되기를

by 내아부

2011년에 유럽 여행을 갔다. 파리를 먼저 구경하고 스위스에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자유여행이었다. 파리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푸니 벌써 저녁 7시가 되어 있었다. 나는 유럽 여행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하루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앞으로 언제 또 유럽에 와 볼지 알 수 없는 일이니 하나라도 더 보고 가야 했다.



호텔에 짐을 대충 놓고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다행히 호텔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금방 샹젤리제 거리에 도착했지만 시간은 벌써 8시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실망스럽게도 대부분의 상가는 문을 닫은 후였고 나는 그냥 거리만 구경하다가 호텔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8시면 초저녁인데 벌써 문을 닫다니... 유럽 사람들은 일찍 가게 문을 닫는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하고 보니 약간 허탈하고 어이가 없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밤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는 많은 가게, 음식점, 쇼핑몰 등등이라고 한다. 그게 뭐가 놀랄 일인지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사실 나도 놀랍다. 만약 12시에 문을 닫는 음식점이 있다고 한다면 음식점 주인은 대체 언제 잠을 자는 것일까?



거리를 걷다 보면 24시간 영업이라고 써진 음식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24시간 영업을 한다면 가게 주인은 대체 언제 쉬는 것일까? 요리를 하려면 재료를 사야 하고, 재료를 사려면 시장이나 마트에 가야 한다. 그렇다면 가게 주인은 대체 언제 시장에 가고, 언제 재료를 사서 다듬는 것일까?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한 명은 아닐 테니, 한 명이 가게를 지킬 때에 다른 한 명이 아마 시장에 가고 재료를 사 올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자는 한밤중에도 가게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밤을 새우며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쉬도록 설계되어 있다. 밤에는 잠을 자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소방관이나 경찰관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밤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한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가 안전하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밤에 깨어있어야만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밤에는 쉬어야 하지 않을까?



밤늦게까지 문을 연 술집을 보면 요즘에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면 그다음 날에는 대체 어떻게 될까? 늦게까지 깨어있는 것이 건강에 좋을 리가 없는데, 술까지 마신다면 건강이 더 안 좋아질 것은 너무도 뻔하다. 술집 주인은 밤늦게 영업을 해서 돈이라도 벌겠지만 내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고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이다. 사람들은 점점 늙어간다. 앞으로 고령화는 더 심각해질 것이고 건강하게 나이 드려 면 밤에는 충분히 쉬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가게가 9시까지만 영업을 하게 되었을 때 밤늦게 길을 걸은 적이 있다. 평소에는 환하게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하던 가게가 문을 닫으니 거리가 조용하고 한가로웠다. 처음에는 이런 한가함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지만 나는 곧 '이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밤에는 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데 우리는 지금까지 밤에도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낯설지 않도록 살아왔다. 왜 밤이 되어도 쉬지 못하면서 살아야 할까?



건강하게 나이 듦을 위해서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쉴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일을 끝내면 집에 가서 쉬고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면 어떨까?



집 주변에 상가가 있는 사람들의 불편함이 종종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곤 한다. 집 앞에 술집이 생겼는데,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질러대서 잠을 잘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술을 마시는 것이 과연 잠을 자는 것보다 더 중요할까 싶지만, 애주가들은 술을 마시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술을 마시는 것도 잠을 자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한다면 과연 내가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이 옳은 행동인지는 고민해야 봐야 한다.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싶다면, 그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최소한 고성방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요즘 TV나 유튜브를 보면 술을 마시고 진행하는 방송이 참 많다. 너도 나도 술을 권하는 것 같아 참 안타까우면서 술 말고 휴식을 권하면 어떨까 생각을 해 본다. 밤 10시에 자도 이상하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잠 권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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