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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라고 나는 늙는다

by 내아부

올해 큰 아이가 5학년이 된다. 나는 이 5라는 숫자가 참 낯설게 느껴진다. 엊그제 일 학년에 입학했는데 벌써 5학년이라니... 그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이와 함께 웃던 날도, 힘들어하던 날도, 화내고 짜증 내던 날도 있었을 텐데, 마치 지난 4년을 누군가 도둑질해 가버린 것처럼 그 많은 날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렇게나 대충 살아온 것도 아닌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았는지, 그냥 그냥 버텨왔는지,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이었는지, 그렇게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많이 쌓였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는 늙는다. 아이들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볼 때마다 아이들 옆에 내가 그렇게도 젊은 모습을 하고 서 있다.


'아, 그때는 내가 젊었었지!'


오늘이 내가 가장 젊은 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년이 되면 또 오늘의 젊음을 추억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아직도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그리고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들은 자라고 나는 늙는다. 이 변하지 않는 진리를 앞에서 나는 참 작아진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나는 잘 늙어가고 있을까?


올해에도 어김없이 새 플래너를 샀다. 2024년의 날짜가 적혀 있고, 월간 계획과 주간 일정을 써넣을 수 있는 그런 플래너이다. 한때는 여기에 새해 목표도 쓰고, 가고 싶은 곳도 쓰고, 사고 싶은 물건도 쓰고, 이것저것 잡다한 많은 것을 썼다. 지금은 예전에 썼던 그 많은 것들 중 대부분의 것들을 쓰지 않는다. 새해 목표는 지켜지지 않고, 가보고 싶었던 많은 장소는 흥미를 잃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플래너라는 물건은 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가족들의 생일을 적어놓는 용도인가?


새 플래너를 펼쳐 놓고서 무엇을 쓸 것인지 고민하면서 죄 없는 볼펜만 세게 쥐어 잡고 있다. 의미 없는 무언가를 쓰지 않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것이다. 달성할 것 같지 않은 목표는 쓰기 싫고, 가보지도 못할 것 같은 장소 따위도 쓰기 싫다. 그렇다면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한 일"을 적어 보자는 것이다. 굳이 거창할 필요도 없고 대단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해냈으면 그걸로 만족하려고 한다. 빨리빨리 가도록 나를 채찍질하지 않아도 바른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믿음을 갖고 올해는 사뿐사뿐 걸어가 볼 거다. 성큼성큼이 아니라 사뿐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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