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랑 얘기하고 갈게
엄마는 잠시 쉬고 있습니다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데 숨이 턱 막혔다. 꼬박꼬박 밥상을 차리는 일은 잘하다가도 그냥 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답답한 마음을 풀 방법이 없었다. 특별히 장을 볼 이유도 없었는데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발이 닿는 대로 가다 보니 마트 앞이었다. 대파 한 단을 사들고 마트 밖으로 나왔다. 하필 냄새나는 대파를 사다니 시원한 생수라도 들고 나올걸 후회가 되었다. 빌딩 위로 구름이 줄지어 움직이며 산뜻한 바람을 느끼게 했다. 옆 공원에 벤치가 비어있고, 일요일 오후의 마트 주변은 한산했다. 도망가듯 집을 나왔으니 아이들과 남편의 시간은 어떤지 알 수 없어 전화를 들었다. 별일 없는 수화기 너머의 공기가 느껴진다.
좀 늦는다고 말하려 했는데,
" 여보, 나 잠깐 바람이랑 얘기하다 갈게"
불쑥 나온 말에 나도 놀랐다. 내 말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와 섞여버렸다. 그리고 남편은 "응? 알았어"라고 대답한다. 나도 모르게 나온 바람이랑 얘기하고 간다는 게 무슨 뜻이었을까?
대파에서 매운 냄새가 났지만, 좀 더 구름 구경이 하고 싶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간 듯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구름들은 바람이 미는 대로 간다.
언제부턴가 하늘을 나는 파일럿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님 승무원이라도 되면 말이다. 여전히 경비행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남편이 무섭게 노려본다.
뭉게구름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파란 하늘에 뽀얗고 하얀 뭉게구름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저 구름에 앉아서 세상 구경을 하면 어떨까? 땅 아래보다 우주가 더 가깝게 보이려나,
날마다 고개를 숙이고 꽃을 찾아다니다 보면 목도 아프고 허리도 뻐근해진다. 그럼 반대로 하늘을 향해 허리를 세우고 목을 뒤로 넘기며 피곤한 몸을 푼다. 꽃이 핀 위로 구름 없이 파란 하늘인 날이면 좋았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구름 있는 하늘 풍경은 더 좋다.
나는 아직 만나지 않은 누군가가 그리웠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건지 궁금했다.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를 찾고 싶었지만 없었다. (물론 남편이 가장 많이 듣고 있다. 종종 날 보는 남편의 눈동자가 흔들리면, 하던 말들이 입속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다.)
마침 산들바람이 구름을 몰고 가는 하늘을 보니 반가웠다. 왠지 말을 걸면 내 이야기를 다 듣고 갈 듯했다.
얼마 전에 책 속에서 나와 비슷한 친구를 찾았다. 대단한 자연주의 작가를 친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건방질지도 모른다. 윌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야생화를 관찰하는 동안 땅 위만 보고 다니는 것 같아서, 한 번은 하늘을 보며 구름을 관찰해 봤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부작용이 있었다고 했다. 자연을 관찰하는 일은 쉽지 않다. 대 자연을 관찰하는 우리는 고개를 숙여 찾던지, 고개를 들어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 효과는 경험한 자의 몫일 것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와 통하는 것이 있다고 느끼는 감정은 너무도 소중하다. 그리고 그가 남긴 책을 읽고 있으면 대면하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신비로운 만남을 가진 것 같았다. 글을 남기고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와 공감하는 능력은 인간이 가진 신기한 힘이 아닐까 싶다.
한동안 책을 읽고 나서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은 욕구가 뿜어져 나올 때가 있었다. 책에서 느낀 전율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지나자 글을 쓰고 싶어 졌다. 내 언어로 쓰인 책을 만들고 싶어 지는 것이다. 쓰면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구체화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수다 대신에 글쓰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내 글을 끝까지 읽어주는 분들도 나와 비슷한 무언가가 있으실 거란 믿는다.
내 등 뒤로 누군가 말을 거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며 핀잔을 준다. 갑자기 나타난 그녀는 자신은 하늘 보는 게 좋던데, 나는 왜 땅만 보고 다니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이 말은 덧붙였다.
" 하늘을 보며 걷는 사람은 미래를 보는 사람이고, 땅을 보며 걷는 사람은 과거를 보는 사람이라는 데."
그녀가 어디서 봤다는데,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쫒는 일상과 내가 쫒는 일상이 다르구나 싶었다. 우린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걸어 내려갔고, 나는 야생화 꽃송이를 좀 더 보았다.
나는 여전히 야생화를 찾아다니며, 목이 뻐근할 땐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쉬는 시간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