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가 날 불렀다

이오덕 선생님

by 무쌍

새로 핀 해바라기가 날 불렀다.

전에는 눈에 띄지 않던 해바라기가 멀리서도 보였다. 처음 본 해바라기는 싱싱한 꽃잎인데, 마주 보고 서있는 해바라기는 달랐다. 가까이 가보니 잎은 갈기갈기 뜯기고 구멍이 나 있고, 벌써 꽃은 시들어가고 있었다.


물을 충분히 먹지 못해서 그런지 잎에 난 상처가 무척 까칠해 보였다.


고개를 숙인 얼굴엔 해바라기 씨앗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보니 아직 피지 않은 꽃송이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점점 꽃송이가 묵직해지겠지만 해바라기는 더 오래 단단하게 서 있었으면 좋겠다. 별일 없다면 작은 해바라기가 다 핀 모습을 보고 싶었다.


2023.9.9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은 해바라기가 태양을 바라보듯 한없이 좋아해 주었다. 마가 벽한 인격을 갖지 않아도 달콤한 솜사탕을 들고 있지 않아도 내가 눈앞에만 있으면 푹 안겼다.


절대자의 기분을 알 것도 같았다. 엄마가 설령 나쁜 짓을 해도 아이들을 금방 용서를 해주니 말이다. 엄마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해바라기처럼 태양이 내는 열기를 그대로 받으면서 자란다.


오래전에 나도 아이였다.


누구라고 쓰는 일이 망설여지지만, 주어는 내가 아닌 가족 모두가 맞을 것 같다. 수시로 기분 바뀌는 이유를 전혀 모른 채 살얼음 위에 서 있는 듯한 집 안에서 자랐다. 차가운 냉기가 싫어서 찬 물도 마시지 않았던 나는 이불처럼 꼭 덮어줄 온기를 한없이 기다렸다.


나는 추위를 남들보다 더 타고, 여름은 남들보다 덜 탄다. 온기가 부족한 기분은 아직도 내 곁에서 찬바람처럼 오싹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숨을 쉬기 좋은 곳은 자연이었고, 포근한 기분이 들게 했다. 따뜻한 태양을 좋아하는 꽃들처럼 난 따스한 계절이 참 좋다. 깜깜한 밤이 되면 한여름 무더위도 잊어버렸다.


꽃을 나무를 자연을 깊이 사랑하는 작가를 또 만났다. 아이들의 책을 빌리러 갔다가 만화로 엮은 이오덕 선생님의 책이 눈에 띄었다.


아침에 만난 해바라기를 보며 한없이 쓸쓸해졌는데, 이오덕 선생님의 해바라기 이야기를 읽게 되다니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인가보다. 해바라기에게 나의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선생님이 나타났다.



책<이오덕 선생님>
나는 언젠가 운동장 한쪽에 커 다란 꽃송이를 달고 있던 해바라기 한 포기가 아이들의 장난으로 밑동이 꺾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다음엔 부끄러운 느낌이 들고 다시 엄숙한 기분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요.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합니다. 동생이 아파 병원에 가게 된다든지 흉년이 들었다든지 중학교에 진학을 못 하게 된다든지 하는 것이 모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어려움입니다.

그러나 이 해바라기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도 이렇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얼마나 괴로워했습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 해바라기 앞에 머리를 숙이고 뉘우쳐야 합니다. 한 포기 해바라기보다 우리는 결코 떳떳하게 살지 못했어요.

책 <이오덕선생님> 중에서



다 자란 아이들이 부모 곁을 떠나듯 해바라기는 씨앗을 만드느라 고개를 숙인다. 더는 태양을 보지 않아도 되는 꽃송이는 할 일을 거의 마친 듯 보인다.

이제 시들어가는 해바라기는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의 모습이 되었다.


아이들이 커 갈수록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말을 아끼는 엄마가 필요한 듯하다. 마냥 철부지 같아도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정직하고 인생의 정답을 잘 찾는 것 같다.



해바라기 잎에 난 상처처럼 내가 자라는 동안 겪은 일들은 감출 수가 없다. 그래도 해바라기는 해바라기가 아닌가. 아이들은 엄마를 보며 자란다. 엄마가 글을 쓰는 식탁에 마주 앉아서 엄마가 일이 끝나길 기다린다. 동그란 얼굴을 한 해바라기처럼 아이가 나를 보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를 기다리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