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다 큰 아이 혹은 모자란 어른
23살. 주민등록증이 나온 지 4년이 되어가고 학교에서는 화석으로 불린다. 휴학을 안 했으면 4학년이겠지만 2년이나 휴학을 해서 사실 아직 3학년도 못되었다. 대학교에서 나는 선배였고 언니였다. 이제 어디에 가도 성인 요금을 내고 미성년자와 분리되어 취급된다. 그럼 나는 어른인가?
스무 살이 넘은 지 햇수로 4년. 나는 변한 것이 없고 자란 것이 없다. 사실 나이도 언제 먹었는지 모르겠다. 1월 1일이 지날 때 갑자기 한 살씩 더 주어졌다. 나는 어디선가 '삑'소리와 함께 듣던 '청소년입니다'라는 소리가 사라짐에 이제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했을 뿐이다. 어른은 이런 것이었나? 한 시간에 만원이던 노래방이 이만 원이 되었고, 영화표를 비롯해 많은 입장권의 요금이 달라졌다. 내가 지금 실감할 수 있는 어른의 증거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의 나는, 아니 지금의 우리들은 분명 어디선가는 어른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고등학생 때와는 다른 진정한,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태도가 요구될 때가 가끔 있다. 동생과 싸운 언니에게 ‘네가 첫째니까 이해해’하는 말과는 조금 다른. 진짜 윗사람으로서의 역할이 요구될 때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솔직히 감도 오지 않는다. 그냥 이해하고 넘어간다고 해서 어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솔직하게 모든 생각을 드러내는 것도 어른은 아니란다. 이렇게 어른의 모습 자체를 이해도 못했음에도 나는 분명 어른이다. 생생히 기억나는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이 벌써 10년 전이니까.
짧은 시간이지만 회사를 다니며 느낀 점은 여기서 스물셋은 어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어른이 아니다. 아무것도 몰라서? 아니. 다들 내 나이에 어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본인의 스물셋 시절을 떠올린다. 나를 보며 자신의 스물셋을 후회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때 몰라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알려주고 그때 알아서 힘들었던 것들을 알 수 없게 도와준다. 일터에서 나는 아직 어리고 작다. 내가 더 행복하길 바라는 그들의 마음이 따뜻하다. 그들의 관심은 고맙고 벅찬 행복을 가져다주며, 내가 어른이 아니라는 생각에 확신을 심어준다. 일과 엮인 곳에서 어른이 되려면 노하우를 가진, 능숙한, 성숙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네 나이면 ~는 게 맞아"라는 말로 많은 실수를 용서받고 작은 장점이 극대화되어 사랑받는다. 매일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커진다. 나는 동등한 기준에서 평가받기에는 아직 어리다고 한다. 어린 어른. 그게 지금 나의 타이틀이다. 다 컸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나 스스로도 괜히 으쓱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 큰 건 이미 몇 년 전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친구들과 장난스럽게 얘기하던 '나는 아직 민증에 잉크도 덜 말랐지~' 하는 시기도 이미 지났다. 몇 살이 되면 나는 다 큰 아이, 모자란 어른이 아닌 그냥 어른이 될까. 누구에겐 아이, 누구에겐 어른이 아닌 그냥 어른이 될까.
어른이 되고 싶은가. 이 물음에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조금 잘해도 거대한 사탕을 받는 지금은 분명 얼마 남지 않은 기간임을 알고 있다. 그 말은 나의 '다 큰 아이' 시기가 끝나간다는 것이다. 이제 모자란 어른은 용납되지 않는, 그냥 어른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그 경계선은 아마도 졸업이겠지. 학생이라는 계급이 큰 틀이자 보호막이라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약한 보호막을 최대한 잘 써먹어야 한다. 지금의 내가 어른이 맞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헷갈리는 그 문제는 아무도 답을 내릴 수 없음을 안다. 나는 그저 때로는 완벽하고 싶고, 때로는 미숙하고 싶다. 어른, 아이 말고 그냥 그런 존재이고 싶을 때가 있다. 많다.
자신을 어른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렇다' 고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고 생각한다. 모두 본인만의 성숙함 기준이 있고 그 선에 도달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면 자신을 진정한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어릴 때는 조금만 성숙한 생각을 해도 내가 어른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한 번만 덜 성숙한 생각을 하면 바로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되면 무언가 다를 줄 알았던 세상은 너무나도 똑같고, 어른을 바랐던 나는 어른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 같다. 사실 그 누구도 어른이 아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성숙하지 못하고 바라는 게 많으니까. 하지만 누가 어른을 다 참고 성숙해야 한다고 정해놓았는가. 스스로 나는 어른이야! 하면 어른인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어른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사실 그냥 나인걸, 생각보다 많이 다르지 않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2019.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