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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이 Jan 29. 2021

0. 임신이 어려워 노력 중입니다

난임일기

어젯밤 뉴스에서 이런저런 영향으로 내일은 더 추울 거라는 이야기를 하더니만 아침 운동을 즐기던 사람들로 붐비던 개천가는 하얀 눈과 함께 고요히 잠들어 있고, 당산철교를 지나며 바라본 한강은 물가가 하얗게 얼어 있다. 뜨거운 커피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컵에 도달하자마자 미지근해져 버리는 진정한 겨울이 시작되면 얼마 되지 않아 내 생일이 돌아온다. 

 

생일날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표 김밥을 먹고 가족들이 케이크에 둘러앉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그리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내가 태어난 날의 이야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임신을 했는데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니까 긴장했는지 입덧도 안 하더라? 임신 초기에는 7킬로가 빠지더니 너 낳을 때까지 몸무게가 별로 안 늘었어. 너 태어나는 날 예정일이 한참 남았는데 아침에 배가 사르르 아프더라고. 부랴부랴 집 청소하고 대충 반찬 챙겨놓고 아빠랑 병원에 갔는데 조금 있다가 오라는 거야. 그래서 설렁탕 한 그릇 먹고 다시 가서 점심 지나서 몇 번 힘주니까 네가 태어났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덤덤히 풀어내는 엄마의 이야기를 매년 들으며 '딸은 엄마를 닮는다니까' 별 고생 없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 자신만만 해졌던 걸까? 결혼 전에는 내가 원하는 시기에 마음만 먹으면 임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사실 결혼 전부터 자궁에 근종이 있고 위치와 형태상 착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의 충만한 임신자신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작은 근종이 나의 임신에 무슨 영향이 있겠느냐며 아이를 낳는데 문제는 없을 것이라 나의 임신력을 무한 신뢰했었다. 그러나 먼 길을 돌고 돌아 나의 임신자신감은 지하세계에 입성한 지 오래다.

 

 

임신자신감 지하세계 입성기


우리 부부는 결혼식 한 달 전 신혼집에 입주를 했다. 필요한 것들을 사고 짐을 옮기고 꼬박 한 달을 집 정리하는데만 썼던 것 같다. 정리하는 내내 유난히 피곤했는데 그냥 무리를 해서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그런데 추위를 잘 타지 않는 체질인데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한기를 느꼈고 정확한 생리주기가 늦어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결과는 두줄인데 아주 희미한 두줄. 임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 부부는 불량품이라고 생각해 휴지통에 버렸고 이틀 뒤 배가 뒤틀리는 고통과 함께 생리가 시작되었다. 몸을 움직일 수 조차 없는 고통에 산부인과를 찾았고 나는 그곳에서 화학적 유산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결혼식을 올리고 우리 부부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를 빨리 낳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방 임신이 될 것 같았고 매달 몸 상태에 유의하며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한 달 두 달 지나갔고 100% 확신했던 달 조차도 임신테스트기는 한 줄이었다. 급기야 임신테스트기를 하도 뚫어져라 쳐다보니 이게 한 줄인 지 두 줄인 지 헷갈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은 하지 못한 채 그저 우리의 노력이 부족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심리상담의 끝에 우리는 난임병원 방문을 결심했다.

 

사실 난임병원을 방문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리주기에 맞춰 예약이 가능해야 했고 회사 일정이 있으면 그마저도 안됐다. 걱정이 많은 편이라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자궁근종과 내가 마셨던 술과 회사에 충성하며 몸을 혹사시켰던 지난날들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나는 자궁근종 외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남편이었다. 의사선생님은 몇 개월 동안 각자 노력을 해보고 노력의 효과가 없다면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결과를 듣고 집에 돌아오는 길 인공수정도 시험관 시술도 나 혼자서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이기에 남편에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남편은 한참의 고민 끝에 "아이가 없어도 우리 둘은 행복하게 살겠지만, 나는 그래도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답했다.

 


난임병원을 다니는 임신이 어려운 부부입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의학의 도움을 받아 미래의 아이에게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다. 남편은 우리가 난임병원을 다니지만 난임부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의사선생님이 명시적으로 “당신은 난임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어쨌든 우리는 임신이 어려운(한자로 말하면 결국 난임) 부부이다. 


엄마는 내 생일 즈음에 언제나 아프다. 산후조리를 잘 못해서 그렇다는데, 그것보다도 이렇게 추운 날 나를 낳았으니 당연히 몸이 상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낳고 키운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언제나 말한다. 임신을 준비하기 전에는 그런 엄마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나를 위해 희생하는 삶이 아닌 엄마의 인생을 살길 바라는 자식으로서의 마음이 컸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지금은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엄마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행복이었을지 말이다. 


'작은 확률이라도 너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랴'


언젠가 나도 엄마가 경험한 그 감정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냉수 대신 온수를 마시고 좋아하지도 않는 쑥즙과 생강차를 마신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몸에 안 좋은 것 안 하고 제시간에 자고 틈틈이 운동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노력 중이다. 우리 부부가 바라는 것은 그저 미래의 아이가 더 멀리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만 있어주는 것이다. 하루빨리 그곳에 닿길 바라며 우리 부부는 오늘도 미래의 아이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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