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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Oct 30. 2023

아는데 입 밖으로 그런 말이 나와?

간결해지기 (6)

辱, 가치가 없는 말


    기원, 어원, 연원, 근원... 을 생각하기 좋아한다. 단순히 악보처럼 발음기호를 표시한 것으로 보이던 낱말들이 '처음 만들어진 의도가 이런 거였겠구나'라며 한글이 표의문자라도 되는 것처럼 문득 그 의미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관용구들도 '제깟 게 뭐 특별한 게 있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쓰다가 '아~ 이런 상황을 이렇게 빗대어 묘사한 거구나... 와! 이런 식으로 표현하다니... 천젠데!'라며 감탄할 때가 있다.


    아무개 같던 낱말에 의미가 붙어 애착이 형성되면 '썸'을 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낱말을 듣거나, 읽거나, 보면 그 문장이나 대상과 사랑에 빠진다. 여기에 찬물을 확 끼얹는 것이 '욕'이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욕' 표현이 많다. 그만큼 민중의 삶이 고되고, '욕' 한 마디로 스트레스를 날리지 않으면 살기 힘들 정도로 녹록지 않았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욕'의 어원을 생각해 보면 '뜨악'할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때 유행처럼 친구들 사이에 '졸라'라는 말이 번졌다. 발음이 주는 미끌거림이 좋아서 말버릇처럼 썼다. 감정을 손쉽게, 효율적으로, 잘 표현해 주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자연히 집에서도 동생과 주고받았다. 어린애들이 욕을 섞어 쓰고 있으니 엄마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말하는 거니?"


 "네? 음... 엄청나게, 많이, 뭐 이런 뜻 아니에요? 무슨 뜻인데요?"


엄마는 차마 설명하지 못했다. 하여튼 앞으로 절대 쓰지 말라고 회초리를 몇 대 맞았다. 그땐 억울했는데 나중에 어원의 뜻을 알고는 진짜 '뜨악'했다.


    아직 영어를 배우기 전, 또 한 번 친구들 사이에 '빠큐'라는 말이 번졌다. 쌍자음 된소리와 거센소리로 구성된, 뭔가 오묘하게 폭발하는 듯한 거친 발음이 주는 쾌감 때문에 뜻도 모르고 친구가 뭔 얘기만 하면 '빠큐'라고 대답했다. 엄마도 영어욕까지는 알지 못해서 그냥 애들 사이에 유행어라고 생각했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하고 처음 영어를 배우는 날, '빠큐'가 영어욕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선생님이 칠판에 'FXXK'을 큰 글씨로 쓰고는 사전을 찾아보라고 했다. '성교하다. 음? 이게 무슨 욕이지?' 처음엔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진정한 뜻은 조금 더 크고 알게 됐다.


    숫자로 표현되는 우리나라 욕들도 어원을 알고는 '뜨악' 진짜 '뜨뜨뜨악'했다. 그 뒤로는 욕은 절대 안 쓴다. 정확한 뜻을 알게 되니 뭔가 사전검열이라도 하듯이 입에서 안 나온다. 물론 인간이니까... 정말 일 년에 한 번? 아니 5년에 한 번 정도의 빈도로 입에서 욕이 나오기도 한다. '가만... 음... 속으로는 욕을 하나? 속으로도 안 하는 것 같기도... 운전할 때도 절대 욕은... NO!' 그래 욕은 속으로도 안 한다.


욕을 안 하면 말을 못 하겠어요.


    말버릇은 무섭다. 한번 입에 붙어버리면 낙관 찍듯이 말끝마다 '욕'을 해야 뭔가 완료한 것 같다. 인성이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식빵언니'라면서 웃고 넘어가지 키가 190㎝가 넘는 모르는 누군가가 옆에서 말끝마다 '식빵, 식빵' 이러면 무서워서 근처에도 가기 싫어질 것 같다.


    제발 방송에서 '삐'처리해 줄 테니까 자연스럽게 '욕'해라...라는 식의 진행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도대체 언제부터 욕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게 된 건지... 부자연스럽더라도 욕을 안 하는 것이 나은 것 같은데... 욕은 사족 아닐까? 굳이 안 해도 되는 감정표현 같다. 오히려 말은 간결하게 하는 게 나은 것 아닌가?


    워워... 진정해야지... 욕을 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무섭다. 특히 점잖았던 영화는 이제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혈흔이 낭자하고 서슬 퍼런 흉기가 여과 없이 나온다. 뭐~ '하드보일드'인지, '누아르'인지, 나발인지... 그럴싸하게 이름까지 붙여줬다. '보고 싶은 사람만 보세요'라고 하겠지만, 이런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지... 너무 핑크빛 세상만 살아온 건지... 아니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알아요... 아는데...


    욕하는 사람치고 장황하지 않은 사람 별로 못 봤다. 아예 입을 안여는 수도 있겠지만, 일단 욕을 섞어 말을 하기 시작하면 한마디로 끝날 것이 꼭 두세 마디 더 간다. 그리고 싸움이 된다. 상대방이 기분 나쁘다며 걸고넘어지면 싸움의 주제가 '욕'으로 바뀐다. 술까지 마셨다면, 그럼 누군가가 출동해야 끝난다. 친구가 와서 말리든, 지나가는 사람이 신고를 하든 당사자끼리는 해결이 안 난다.


    일본에는 '욕'이라고 할 만한 단어가 '빠가야로~'가 전부라고 한다. 번역하면 '바보야~' 정도인데... 더 열받는 경우에는 '똥 같다'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는 면전에 대놓고 욕을 하지 않고 저주를 거는...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짚으로 만든 인형에 바늘 같은 거를 꽂아버리는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욕'의 순기능도 있어 보인다. 더 심각하게 발전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말로 해소해 주니까...


    그런데 '욕'이 많은 문화든, '욕'이 없는 문화든... 결국 스트레스 해소가 안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무언가 해소의 場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매주 뽑히나 보다. 술도 많이 마시고, 노래방은 어딜 가나 있고, 싸움도 많이 하고, 갑질도 많이 하고, 왕따도 많이 시키고, 색깔논쟁, 수저계급논쟁, 지역갈등, 세대갈등, 젠더갈등...


    그런데 이런 데서 상대방 욕하는 건 스트레스 푸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모전이며, 에너지 낭비다. 낱말의 뜻도 한번 생각해 보고... 불필요한 표현을 최대한 줄여보면... 어떨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별 뜻 없이 내뱉은 '욕'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지 않게... 정 해야겠다면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쳐보는 건 어떨까? 하굣길에 몰려다니는 초등학생들 사이에 '욕'으로 범벅된 대화를 들으면 충격이다. 악의 없는 천진난만한 '욕'이라서 더 그렇다.


어디서 저런 말을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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