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노는데,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2)
음식은 소스맛이지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뭐 해?"
"네? 뭐 하긴요. 그냥 집에 있지요."
"그러니까 그냥 집에서 뭐 하냐고?"
"아~ 그냥 책도 보고, 청소도 하고, TV도 보고, 가끔 게임도 하고..."
"혼자 있으면 안 심심해?"
"글쎄요. 워낙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심심한 건 모르겠고, 그냥 놀고먹으니..."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까지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 일을 하는 아버지, 엄마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아서 끝을 흐렸다.
"그래. 안 심심하면 됐다. 저녁 뭐 먹을래?"
"어... 늘 먹던 대로 먹으려고요. 오늘은 샐러드에 단백질로 두부 넣어 먹으려고요. 아버지가 주신 들기름 뿌리고 소금 조금 쳐서 먹으면 맛있어요"
"소스도 안 뿌리고 그걸 무슨 맛으로 먹어? 그러지 말고 집에 와서 밥 먹지? 갈치 구울 건데..."
"아~ 집에서 밥 먹으면 이상하게 몸이 아픈 거 아시면서..."
"아들 뭐 하고 사는지 근처 살면서 코빼기도 안 보인다고 아부지가 무척 궁금해하시는데... 아들 얼굴 좀 보자!"
막판에 효심자극 공격이라니... 앗! 방심했다. 다시 아파지면서 병원 다니고 내 몸 챙기느라 거의 집에 안 갔더니, 말상대가 필요해졌거나 아니면 둘이 싸우고 냉전 중인가 보다. 각각 팔순과 칠순을 넘겼지만 아직도 칼로 물 베기 같은 싸움을 종종 한다. 애도 아니고 둘이 그만 좀 싸우라고 신경질이라도 낼라치면,
"싸우는 거 아닌데, 대화하는 건데..."
아버지가 보청기를 끼게 되면서 별 것 아닌 일에도 큰소리를 내다보니 마치 싸우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아지기도 했다. 두 노인네가 사는데 소스 같이 이런 싸움이라도 안 하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내버려 두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다 그럴 때가 있다고..., 그렇지 않으면 집안에는 시끄러운 유튜브 소리밖에 안 난다고...
음식은 간간해야 맛있지
엘리베이터문이 열리고, 문 밖에서부터 생선 굽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식용유 잔뜩 둘러서 뼈까지 아작아작 씹힐 정도로 바싹 굽고, 아니 튀기고 있을 것이... 안 봐도 비디오다. '아들 왔어요~' 광고라도 하려고 초인종을 누를까 하다가 식사준비한다고 정신없는데 일거리 보태냐고 등짝 스매싱을 당할까 봐 그냥 비밀번호를 누른다. '띠띠띠~, 덜컹!' 안전고리가 초인종보다 더 요란하게 걸린다. 안쪽에서 엄마 소리가 들린다.
"아~ 잠깐잠깐 문 열어 줄게...! 잠깐잠깐"
문 안쪽에서 허둥지둥, 반가워하는 모습이 들린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누가 왔으면 좀 일어나 보라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아버지를 향한다. 아들 보고 싶어 한다던 아버지는 소파에 누워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 삼매경에 빠졌다. 아마도 시끄럽다는 잔소리에 소심하게 반항 중이었으리라.
"어~ 왔나?"
"예! 아부지... 저 보고 싶어 하셨다면서요?"
"그래, 난 건강하다! 괜찮다!"
아버지는 동문서답하며 주섬주섬 보청기를 찾아 낀다. 그러고는,
"아들! 오랜만이다. 그동안 우예 살았노~!"
"아부지! 저 보고 싶어 하셨다면서, 아들 왔는데... 유튜브만 보고 계세요?"
"......"
그냥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할 걸 그랬나? 내가 말문을 막았다. 말문만 막혔으면 그나마 나았는데, 엄마의 잔소리 융단폭격이 더해졌다.
"내가 그렇게 디비 누워서 유튜브만 보고 있지 말라고 노래를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한다. 내가 이러고 이 인간이랑 여태까지 살았다."
"......"
엄마의 날카로운 잔소리만큼이나 짠내가 코를 찌르는 밥상이 차려진다. 밑반찬은 대부분 절이고 숨죽여 뻘겋게 무쳐낸 음식이고, 김장김치는 젓갈 냄새가 진동한다. 오늘의 메인 요리인 갈치구이는 꼬리 부분이 앙상해질 정도로 과자처럼 바싹 튀겨져 있다. 엄마는 일부러 신경 써서 차린 밥상임을 강조한다.
"내가 너 먹는 부위는, 먹고 아플까 봐 일부러 소금도 안쳐서 가져왔다. 얼른 먹어봐~!"
갑자기 아버지가 급발진한다. 마치 며칠 굶은 사람처럼... 좋아하는 갈치구이를 보자 밥상으로 돌진한다. 엄마는 아버지의 이 무식해 보이는 테이블 매너를 제일 싫어했다. 아버지는 뭔가 성에 안 찬 듯,
"간장 좀 도~"
"당신 거는 이미 소금 간 다 된 거예요. 그냥 드세요. 이미 짜요."
"아이~ 그래도 간장 좀 도. 갈치는 외간장 뿌려서 간간하게 먹어야 제 맛이지... 그냥 맹탕을 무슨 맛으로 먹노?"
"혈압도 있는 양반이 짜게 먹지 말라는 데도..."
그러면서 엄마는 간장을 통째로 가져온다.
"자~! 니 맘대로 먹고 싶은 대로 해 드세요~!"
말에 가시가 있다. 하지만 갈치구이처럼 쉽게 바스러지는 가시다. 투닥투닥 이렇게 사는 모습이 면전에서는 싫은데... 되돌아 생각해 보면 정겹다. 미소도 지어지고...
제로슈가, MSG무첨가
갈치구이를 조금 떼어서 먹었다. 음... 혀가 아릴 정도로 짰다. 엄마는 전혀 안 짜게 만든 거라고... 소금 일도 안 친 거라며 먹어도 안 아플 거라고 먹어보라고 하지만, 사실 생선구이가 안 짤 수가 없다. 바닷물 자체가 짠데 그 안에서 잡힌 고기가 어떻게 안 짤 수가 있을까. 짜다는 말에, 엄마도 얼른 한 점 먹어보고 이 정도도 안 짜면 뭐 먹고 사냐고 조금 허탈해한다. 흐흐 결국 '소금 일도 안 쳤다'는 말에 어폐가 있음을 인정했다.
요즘은 저염식으로, 튀기거나 굽지 않고, 삶거나 쪄서 먹다 보니 양념에 민감해졌다. 채소도 최소량만 사서 그때그때 최대한 신선하게 샐러드로만 먹다 보니 절인 음식들은 많이 자극적이다. 사실 삶거나 찌는 음식도 최소한으로 하고, 거의 생으로 많이 먹어서 우리 집 냉장고는 쌀통이 되었다. 대신에 재료 자체의 맛을 더 잘 느끼게 됐다. 양념으로 뒤덮인 맛이 아닌 '본연의 맛'이라고 교양 있게 표현해 본다.
그래서인지 남의 눈에는 심심하다면 심심한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반대로 그들의 일상이 꽤 자극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웬만한 자극은 자극으로 느끼지 못하게 중독된 것처럼 보인다. 소금을 안 먹어 버릇하다 보면 한 톨의 소금이라도 굉장한 조미료가 된다. 그래서 샐러드에 한 꼬집도 안 되는 몇 톨의 소금을 넣어도 간이 딱 된다. 그리고 한 그릇 안에서 각각의 맛을 내고 있는 재료를 느낀다.
상추는 상추의 맛을 내고 있고, 아보카도는 아보카도의 맛을 내고 있다. 양파, 파프리카, 토마토, 아몬드, 건포도... 각자가 한 데 어우러져 서로 헤치지 않고 제 맛을 낸다. 누가 무슨 맛을 내든지 상관없다. 자기 맛을 잃지 않는 것이 내 요리 속 재료의 도리다. 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색깔을 더하는 것이 내 요리의 핵심이다. 요즘 제로슈가, MSG무첨가를 표방하는 음식이 많지만 종류만 다를 뿐 서로를 헤치는 자극적인 맛임에는 변함없다.
있을 땐 몰랐는데, 없을 땐 아쉬운 맛으로 먹어...